◇우다이 후세인(39)
사담 후세인의 5남매중 첫째지만 권력순위에서는 차남 쿠사이에 밀린다. 이라크 주둔 연합군의 전범 수배자 명단에서도 사담 후세인, 쿠사이에 이은 3순위에 올라있다. 페다인 민병대의 대장으로 아버지 사담 후세인이 반대자들을 제거하고 철권통치를 지속하는데 일조했다. 이라크 국내 최대 일간지"바빌"과 주간지인 "알-자우라", `유스TV"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라크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축구협회 회장 등 도 맡고 있다. 그러나 살인, 고문을 일삼고 경호원들을 시켜 길거리의 여성을 붙잡아온 뒤 성폭행하는가 하면 롤스로이스 20대를 포함해 100대가 넘는 고급승용차를 수집하는 잔인하고 방탕한 생활로 악명 높았다.
자신도 스스로의 악명에 만족하며 아랍어로 늑대를 가리키는 "아부 사르한"이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그의 기행은 아버지 사담 후세인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으며 특히 88년 사담 후세인은 우다이가 자신이 아끼던 보디가드를 살해하자 스위스로 쫓아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사담 후세인의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지난 96년 바그다드 시내에서 빨간색 포르쉐 승용차를 몰고가다 총을 맞아 총알이 척추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한 후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됐으며 그 후 동생 쿠사이의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이 확인됐다.
친척과 결혼했으나 95년 아내가 우다이가 폭행을 한다며 이혼했고 친척 한 명을 살해하는 등 가정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그의 자택을 점령했을 때 저택에는 사자와 치타들 이 있는 개인 동물원이 있었고 지하주차장에는 고급승용차들이 즐비했으며 그의 이름을 새긴 쿠바산 시가, 100만달러짜리 와인, 술, 심지어 헤로인까지 발견됐다.
미군의 우다이와 쿠사이 후세인 형제 공격 사건
2003년 7월 22일. 이라크 북부 모술 시에 한 빌라 주위에 일단의 미군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그 빌라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2002년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군이 잠적한 독재자 후세인과 그 일당을 체포하기 위해서 조직한 제 20 특임대와 미 육군 101 공정 사단의 합동 작전 이었다.
20 특임대는 모두 그린 베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잠적 후세인 일당 의 제 2인자 와 제3인자로 수배 된 인물들과 그들의 아들이 한 빌라에 숨어있다는 극비 정보가 입수되었던 것이다. 악명 높은 후세인의, 역시 그 만큼이나 악명 높은 첫째 아들 우다이와 둘째 아들 쿠사이,그리고 열 네살 나이의 쿠사이 아들 무스타파였다. 우다이는 자기 아버지 사담 이상의 악명을 드날렸었다.
공공파티에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는가 하면 어린 소녀를 납치해서 강간하는 정도는 그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중의 일부였다. 우다이와 동생 쿠사이는 군과 정보 언론등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자기 아버지이자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도왔었다.
미군 101 공정 사단이 주변 포위와 경계를 담당하고 20 특임대가 체포에 나섰다. 대원은 주택 내부 인물들이 제공된 정보와 일치 하는가 확인하기 위해서 주택 주차장에 잠입해 주차된 람브로기니 스포츠 카의 시동을 걸었다. 그 차는 우다이의 것이었다.
낯익은 자기 차의 시동 소리에 놀란 우다이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를 중처럼 밀고 수염을 더부룩하게 길러 변장했지만 후세인의 말썽 많은 아들 우다이가 틀림없었다. 그는 미군들이 포위한 것을 보고 즉시 AK-47 소총으로 사격을 가해왔다. 동시에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20 특임대원들은 집안 일층으로 뛰어 들었지만 일층에는 아무도 없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각종 가재도구로 막아서 봉쇄 해놓은 상태였다. 20특임대원들은 일단 밖으로 대피해서 200여명의 101 공정사단 대원들과 작전을 짜고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이들에게 OH-58 카이오와 핼리콥터와 A-10기가 지원을 했다. 우다이 형제의 응사는 대단히 격심했다. 미군들은 토우 미사일까지 동원해서 그들이 응사하는 빌라 2층을 공격했다. 전투적 대결 상황은 네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드디어 주택 이층의 응사가 없어지자 20 특임단의 대원들이 다시 뛰어 들었다.
깨진 유리창을 포함한 건물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 부서진 그 곳에는 우다이와 쿠사이, 그의 아들, 그리고 경호원의 사체 4구가 있었다. 사체는 즉시 운반 되어서 검시되었다. 우다이 사체의 치열은 미군 기관이 미리 확보해둔 치과 엑스레이 사진의 그 것과 정확히 일치함이 발견되었다.
이들의 사체는 장의사에 의해서 처리된 후 촬영 되었다. 이 들의 죽음이 계속 저항하는 사담의 잔당들에게 충격을 주어서 사기 저하의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령부의 판단에 의해서 공개되었지만 이런 사체에 손을 대는 것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우다이와 쿠사이, 그리고 그 아들의 사체는 사담 후세인의 고향 티그리트의 한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다. 죽은 우다이와 쿠사이 부자는 그 전날 밤 이 집에 찾아 와서 밤을 보냈었다. 주인인 나와프 아즈- 자이단은 사담 가족의 먼 친척이 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는 미군에 이들을 신고했다.
엄청난 현상금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날로 모술을 떠나서 모처의 미군 기지에서 보호 되었다가 미국으로 향했다. 그들은 나중에 시민권을 받았다. 그 뿐만은 아니었다. 두 형제에게 걸린 현상금은 무려 3000만 달라라는 거금이었다.
미군은 그 거금을 주저없이 지불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횡재에 댓가가 따랐다. 후세인의 추종자들이 아직도 많은 이라크에서 그들의 배신자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다음 해인 2004년 6월, 신고자 나와프의 형 사라하 나와프 자이단이 암살당했다.
얼마 뒤에는 그와 친척 되는 세 명의 남성들이[8살 아동 포함] 차를 타고 가다가 습격을 받고 모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출처 : 사주명리 - cafe.daum.net/sajusa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