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이 후세인(1966-2003) - 둘째 아들
양 력: 1966년 5월 17일
음/윤: 1966년 3월 27일 남자
시 일 월 년
壬 丙 癸 丙
辰 子 巳 午
壬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대운: 순행
寅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86 76 66 56 46 36 26 16 6.10
대운 시작: 6세 10월 9일
출생시는 필자가 임진시로 추정함.
사망일시: 2003년(38세, 癸未년) 7월 22일
쿠사이 후세인 Qusay Hussein (아랍어: قصي صدام حسين 쿠사이 사담 후세인 알-티크리티[*], 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은 사담 후세인과 그의 첫번째 아내 사지다 탈파의 차남이다. 또한 그는 우다이 후세인의 동생이다. 형과는 달리 온건파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군 사령관의 딸과 결혼했고 세 아들이 있는데 그 중 무스타파 후세인(1989년 1월 3일 ~ 2003년 7월 22일)은 미군과 총격전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다. 다른 두 아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쿠사이 후세인(37)
작은 아들이지만 형 우다이를 제치고 사담 후세인의 후계자로 지목된 황태자. 조용하고도 아버지 못지않은 잔인한 성격때문에 이라크인들 이 "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연합군이 작성한 55명의 전쟁범죄수배자 명단에서도 아버지 사담 후세인에 이어 2순위로 올라있다.
작달막한 체구에 콧수염을 기른 그는 이번 전쟁 초기에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 와 수도 바그다드 등 4개 요지의 수비를 맡았고, 사담 후세인 개인 경호병력과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는 8만 정예군인 공화국 수비대를 이끌었다.
또 악명높은 이라크 정보기관의 우두머리면서 잔인한 방식의 사형으로 악명높은 수용소들을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전쟁전에도 이미 최고 정보회의나 군사회의때면 잘 재단된 정장을 입고 아버지 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적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 해 여러번 방송돼 권력 2인자임이 확인됐다.
이라크에서 추방된 반체제 인사 한명은 사담 후세인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쿠사 이와 지난 6월 체포된 후세인의 비서 아비드 하미드 마흐무드 알-티크리티만 알고 있었고 큰 아들 우다이는 배제돼왔다고 전하고 있다.
쿠사이는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전후 시아파 봉기를 잠재우기 위한 잔혹한 고문과 대규모 숙청 등 국내 갈등 해결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90년대 시아파 들이 은신장소와 집단거주지로 삼던 남부지방의 대규모 늪 지를 파괴하기 위해 강의 물길을 돌리는 대규모 공사에도 조력했다.
그때까지만해도 권력승계여부는 불투명했으나 지난 96년 형 우다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 급부상, 2000년에는 집권 바트당 군사조직까지 맡아 입지를 굳혔다. 지난 84년 티크리트 군사령관 마헤르 압델 라시드 장군의 딸과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나 몇 년뒤 별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 : 사주명리 - cafe.daum.net/sajusa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