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이드#1

작곡가 김성태 사주

Mr.대산 | 2017-10-03 13:27:38

조회수 : 1,965

김성태 작곡가 (1910.11.9 ~ 2012.4.21)
 
 
양 력: 1910년 12월 10일
음/평: 1910년 11월 9일 남자
 
시 일 월 년
@ 己 戊 庚
@ 酉 子 戌
 
戊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대운: 순행
戌 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丑
99 89 79 69 59 49 39 29 19 9.3
 
대운 시작: 9세 3월 14일
사망 나이: 103 세
 
 
김성태(金聖泰 1910.11.9.서울-,호:요석`樂石`, 일본명:金城聖泰)
 
김성태는 서양음악을 교회에서 접했다. 그는 18세(1927,경신중학교 2년)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편입학하여 일본 중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잠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축구 특기자로 다니면서 현제명과 채동선에게 작곡을 배웠다. 현제명과의 만남은 두 사람이 거의 인생의 동반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성태는 동경 고등음악학교 (현 구니다치 음악대학)를 입학하여 작곡을 공부하였고, 1935년에 졸업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김성태는 귀국과 동시에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작곡발표연주회에서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들, 홍난파(洪蘭坡), 현제명, 박경호, 채동선 등과 함께 작곡 발표를 한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찬송가를 들으며 자랐다. 중학교 때 최영호·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다니면서 독학으로 화성학을 공부했다. 1935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고등음악학원을 1939년에 졸업하고, 그해 귀국하여 경성보육학교 음악주임으로 일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진 1940년 이후에는 경성후생악단을 지휘했고, 이 실내악단을 통해 '국민음악정신대'를 내세우면서 각 공장·학교·광산 등에 국민음악을 보급했다. 해방직후 현제명이 조직한 고려교향악단과 서울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했고,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1976년 정년퇴직 때까지 30년 동안 재직했다. 6·25전쟁 때는 공군·해군의 정훈음악대를 지휘하기도 했고, 1955년에는 미국 국무부의 초청으로 미국의 인디애나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공부하면서 현대음악가 P. 힌데의 수제자 B. 하이든 교수에게 현대음악을 지도받고 귀국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 한국음악협회 고문과 (주)예음의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가곡으로 〈동심초〉(1945)·〈산유화〉(1945)·〈이별의 노래〉(1952), 기악곡으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1965)·〈동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1970), 해방가요로 〈독립행진곡〉(1945)·〈아침해 고을씨고〉(1945) 등이 있다.
 
 
출처 : 사주명리 - cafe.daum.net/sajusa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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