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국(保局)
비유해서 말하면 큰그릇이 어느 한쪽이 께져있지 않아야만 이 물을 가득히 담을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이 깨어져 떨어져 나가 있으면 물이 얼마 담기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게 놓고 물을 부어도 얼마 담기지를 않습니다.
양택지 보국이란 집의 담장처럼 어떤 곳의 명당을 보호해주는, 주위에 보이는 산들의 모향을 말하는 것으로써, 명당 지와 균형이 알맞고 보국이 분지지형으로 아늑한 분지지형을 말합니다.
자연도 주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평하며 명당 지를 중심으로 감싸고 있는 분지지형이 좋은 보국입니다.
한쪽이 균형이 맞지를 않고 기울어져 있거나 터져 있으면 좋은 보국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서울의 4대문안이 비교적 보국이 괜찬은 곳이고, 대구나 대전이나 춘천 진천이 분지지형으로 보국이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사람들이 명당으로 너무 많이 모여 만원이라 좁은 보국을 벋어나서, 더 넓은 보국에서 쾌적한 곳을 만들어 사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1) 보국의 적지(명당) 2) 보국의 부적지(흉지)
1. 산세들이 감싸주어 안정감이 있고 좋은 곳 1. 보국이 흘러가거나 흩어지는 곳
2. 배산임수(背山臨水)된 곳 2. 경사지 산등성이 산골짜기
3. 주택지나 상업지는 낮은 곳 3. 물이 메마르거나 넓게 빠져나가는 곳
4. 큰물이나 많은 물이 모여들고 풍부한 곳 4. 풍수해나 한해가 잦은 척박한 땅
옛날이나 지금이나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이 많이불어 매우 춥습니다.
땅이란 기(氣)가 왕하며 산들이 곱고 순하게 풀리어 포근하며 아름답고, 주변 산들이 모여들어 멈추고 물 역시 모여들고, 기(氣)역시 모여들고 교통이 편리한 보국이 좋은 명당(明堂)의 터가 있습니다.
반면에 산의 뼈대가 앙상하여 기가 살(殺)을 띠고있는 곳도 있고, 산세가 무기력하거나 노쇠한 곳도 있고, 산수동거(山水同去)로 산도 가고 물도 흘러가고 기역시도 쇠잔하여 흩어지거나 흘러가는 곳도 있고, 또 교통이 불편한 곳이 반드시 있습니다.
● 서울 4대문 안이 보국이 좋습니다.
● 춘천이 보국이 좋은 곳입니다.
● 대구가 보국이 좋습니다.
● 구미가 보국이 좋습니다.
● 대전이 보국이 좋습니다.
● 경주가 국세나 보국이 좋습니다.
● 진천이 보국이 좋습니다.
● 진주가 보국이 좋습니다.
● 거창이 보국이 좋습니다.
● 남원이 보국이 좋습니다.
● 구례가 보국이 좋습니다.
● 홍천이 보국이 좋습니다.
● 강원도 양구군 현리는 보국은 좋은데 천옥과 같습니다.
2, 양택 보국이 좋은 서울 4 대문 안
서울은 삼각산을 비롯하여 도봉산 만경봉이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 주어 좋고, 북악산이 우뚝 솟아 정좌하였습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한 서울 중심의 보국은 서북쪽과 북쪽 남쪽은 좋지만, 남대문 쪽과 동대문 쪽이 조금 터져 있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청룡의 낙산인 삼청동이나 가회동 쪽으로 뻗어있는 산세는 지맥은 많지만, 백호 방의 인왕산보다 그 세와 기가 약한 것이 흠으로, 비보로 동대문을 만들었는데 청룡 쪽인 동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해서 장손들도 흥하라고 했고,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으로 위에서 아래로 현판을 썼습니다.
조선개국 초기에 이 태조께서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하기로 하여 궁궐을 짓고 도성을 축조하는데, 그 경계선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에 눈이 내렸는데 현재 남아있는 도성의 안쪽은 눈이 녹아있고, 도성 밖은 눈이 남아있어 하늘에서 정하여준 징조라 하여, 눈이 녹아있는 경계선을 따라 도성을 축조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은 백호가 왕한 백호 작국입니다.
그래서 조선에 역사에서 보면 장손보다 지 차손들이 왕권을 많이 이어갔고, 가끔가다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드세었는데, 오늘날도 가끔가다가 세계무대에서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좋은 우먼파워를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청룡이 좋고 감싸 도는 곳은 장손들이 좋고, 백호 방이 좋으면 지 차손이나 여자들이, 자연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곳이라는 것이 증명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의 터가 조선역사에서 증명하듯이 공공기관은 주산이나 청룡 백호가 치우침이 없는 바른 곳에 지어야 만하고, 학교를 세울 때에도 남자학교는 청룡 쪽이 좋은 곳을, 여자학교는 백호 쪽이 좋은 곳에 지어야, 자연환경의 혜택을 많이 볼 수가 있고, 사업체도 마찬가지로 지형지세에 알맞게 지어야 좋습니다.
인왕산자락 끝의 서울역 부근이 경복궁 방향에서 보면 낮다고 하나, 현대 공해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그곳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오지 않으면, 맑고 건조한 공기의 순환이 매우 어렵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의 남산은 명당기운을 모으며, 크게는 한강의 대강수(大江水)를 역수로 감싸 돌고 있으며, 강남 쪽에서 보면 남산은 마치 누에처럼 좋게 보이지만, 경복궁 쪽에서 보면 뒤 북악산보다도 약간 높아 마땅하지가 않고, 앞에 남산은 골이 져있고 케이블카 옆에 바위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흉한 상이므로, 하극상 하는 곳으로 조선역사에서도 그랬고 현시대의 역사도 그러했습니다.
독사는 크기가 크지 않지만, 이빨에서 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명당수인 청계천의 물은 한국에 대다수의 물은 동출서류나 북출 남류하는데, 유일하게 서출 동류하여 현재 한양대학교 터에 있는 바위들이 일월한문(물이 나가는 곳에 해와 달같이 둥근 바위)을 이루고 그 뒤를 돌아 중랑천과 만나서 내파구를 만들고, 다시 흘러 응봉동에서 대강수인 한강 물과 합수가 됩니다.
앞에 대강수인 한강은 온전한 서울의 기를 가두어 주고 청계천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서울의 사격은 한강 물을 역(逆)으로 뜨는 형국인 득수국(得水局)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에서 내당수인 청계천을 복개를 해버려서, 서울의 중심복판에 명당의 자연의 조화를 깨버렸으나, 청계천을 다시 복원한다니 다행이고 서울의 도심이 살기 좋은 대 명당으로 다시 테여 날 것입니다.
옛날에는 서울의 사대문안에서 장사를 크게 하는 부자들이 성북동이나 남산 밑에 장충동에 많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남산을 뒤로하고 한강을 바라다본 한남동 지역에 재계의 큰 부자들의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 이제는 서울도 너무커저서 옛날의 보국이론도 수정을하여 크게 봐야 할 판입니다.
즉 해방이후 광주군의 땅인 송파구나 용인군의 땅인 강남구나 서초구가 서울이 되었고,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이곳이 신흥부자들이 더 많고, 집값이 더비쌉니다.
3. 음택 보국이 좋은 대구 서씨 광탄리 명당
대구 서씨 서거정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형인 서거광 하면 잘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약봉 서 성의 고조되시는 분인데, 파주시 광탄면 소재지에 있는데 용세가 장원하고 보국이 아담하며 아주 좋습니다.
이분의 후손들이 선조로부터 고종 대에 까지 3백년동안 숫한 인물을 배출했는데, 숙종 때는 정승이하 고위직에만 3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43번국도변 소흘읍 은설리에 해룡산하에 있는 서 약봉의 부모묘소도 좋고, 서 약봉의 묘소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좋은 명당을 썼는데도 서 약봉의 아버지가 일찍 죽자 눈을 못 본 약봉의 어머니가, 현재 만리동 고개 아래 약현에서 약주와 약과를 만들어서 팔아서 서 약봉을 공부를 시켯다고 합니다.
서 약봉의 후손 중에 3부자 정승에 3부자 대제학이 나왔습니다
이 밖에도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 백사 이항복 선생님의 묘지도 보국이 평온하여 아주 좋은 곳입니다.
음택지 명당은 보국이 아주 중요합니다.
4. 모든 명당은 상대성입니다.
춘천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보면 금곡을거처 가평을 가다가 보면, 건너편 산들이 비교적 유순하게 풀려 있습니다.
가편군청 자리는 비교적 좋고 그 아래 강촌 쪽으로 가다가보면, 험한 바위산들이 하늘높이 솟아있는데 춘성공원묘지로 들어가는 길목의 주변산들은 비교적 식목을 잘해놓고 유순한 산들이 있습니다.
그 산속에 청풍김씨 우의정을 지낸 김석주공의 묘소가 아름답습니다.
비교적 좋은 주룡을 타고 내려온 유혈인데 청룡이 좋은 것을 볼때에 그 후손들이 좋을 것입니다.
명당이란 주변 산세가 높으면 높게 낮으면 낮게 균형이 맞는 곳이고, 바위가 험하고 있는 곳은 상대성으로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이고, 흙이 많은 곳은 바위가 있는 곳이 명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