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의 고전 금낭경(錦囊經)과 청오경(靑烏經)>
조선시대 베스트셀러가 어떤 책이었는지 판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필사본(筆寫本)이 몇 종인가를 조사해 보는 것이다.
삼국사기? 단 1종도 없었다. 구매력 제로인 텍스트였다.
육당 최남선이 민족의 성전(聖典)으로 추앙한 삼국유사. 그조차 필사본은 단 한 종도 없다. 따라서 삼국유사가 민족의 성전이라는 육당의 말은 이제부터 민족의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의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의도는 멋지게 성공했다. 지금은 다들 삼국유사가 정말로 민족의 성전일 줄 착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베스트셀러는 무엇이었을까?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명지대 교수는 자신에 찬 어조로 단연 택리지(擇里志)를 추천한다. 몰락한 양반, 당쟁에서 패배한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1690-1756)이 편찬한 그 택리지 말이다.
이 택리지는 많은 이가 지리지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근본은 풍수지리학서(風水地理學書)다. 이긍익(李肯翊)은 이 책을 '팔역복거지'(八域卜居志)라고 부르고 있는데 택리지보다 이 명칭이 그 성격을 훨씬 명료하게 설명한다.
팔역(八域)이란 조선 팔도(八道)를 말하며, 복거(卜居)란 살 만한 땅을 점을 쳐서 정한다는 뜻이다. 신비ㆍ예언적 참위설(讖緯說)에다 하늘과 땅이 내리는 복은 인간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그리고 영원한 즐거움만 있고, 영원불사(永遠不死)한다는 도교의 신선향(神仙鄕) 신앙이 어우러진 사상이다.
산세 등을 살펴 살 만한 곳을 정한다는 복거(卜居)의 사상은 북송(北宋) 초기에 집대성된 도교의 일체경(一切經)인 '운급칠첨'에 수록된 동천복지(洞天福地)에서 유래했다. 지리산 청학동(靑鶴洞)은 조선에서 동천복지의 대명사격인 존재였다.
이중환의 팔역복거지는 바로 조선 팔도 중 어느 곳이 동천복지인가를 가려내 뽑아낸 책이다. 주의할 것은 이런 풍수학설에서 농.공.상(農工商)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중환은 철두철미 사대부(士大夫)가 살 만한 땅을 추천했다.
한데 팔역복거지의 원전격으로 거론할 수 있는 동양풍수학 고전 중의 고전이 금낭경(錦囊經)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서진(西晉)-동진(東晉) 시대를 걸쳐 산 곽박(郭璞.276-324)이라는 사람으로 전한다.
곽박의 면모는 괴기스런 대목이 많다. 용이나 학을 타고 운중(雲中)을 노니는 신선의 풍모가 완연하다. 그가 주석(注釋)을 가한 유명한 책도 산해경(山海經)이니 초사(楚辭)니 하는 신선과 무당과 귀신이 한데 어우러진 것들이다. 그가 남긴 저명한 문학작품이 유선시(遊仙詩)라 해서 신선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런 그가 금낭경과 같은 풍수학서를 쓰기에는 적격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이 금낭경은 당대(唐代)에 갑자기, 그것도 혜성처럼 나타났다. 많은 책이 그렇듯이 아마도 이 금낭경은 당대 무렵에 곽박이 쓴 책으로 조작되었을 것이다.
어떻든 이 금낭경은 말 끝마다 '청오경'(靑烏經)이라는 책을 끌어다가 '경왈'(經曰)이라고 하면서 과연 어떤 곳이 풍수학적으로 좋은 곳인가를 설명한다. 한데 여기서 말하는 길지(吉地)란 예외없이 묘택(墓宅)이다.
현존본은 상하(上下) 2권에 8편이며 전체 글자도 2천자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5천언(五千言)이라는 노자도덕경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고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한 제1 요건이 간단명료함인데 금낭경은 이를 훌륭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묘자리를 중시한 까닭은 조상의 기(氣)가 후손의 부귀영달과 밀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금낭경 첫머리인 제1 기감편(氣感編) "사람은 부모에게 몸을 받고 본해(本骸.부모)가 기를 얻으면, 유체(遺體.자식)가 음덕을 받는다"(人受體於父母, 本骸得氣, 遺體受蔭)는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 맥락에서 묘자리를 택하는 데 금낭경이 가장 중시한 대목은 바람과 물.
이를 같은 기감편에서는 "풍수의 법은 물을 얻는 것을 가장 중시하고 바람을 갈무리 하는 일을 그 다음으로 친다"(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는 말로 표현된다.
금낭경이라는 이름은 양귀비와의 떠들썩한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이 이 책을 금낭(錦囊), 즉, 비단 보자기에 싸서 보관한 데서 유래했다 한다.
이 금낭경이 한반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다대한데 청오경(靑烏經) 등과 함께 술사(術士)가 되기 위한 잡과(雜科) 과거시험 필수과목이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여기서 말하는 청오경은 금낭경에 인용된 것과는 다른 것으로 한(漢)나라 때 출현한 것이라 하지만, 원나라 이후 작품이라는 설이 압도적이다. 총 875글자의 단문이다.
청오(靑烏)란 태양 속에 산다는 까마귀 일종인 소위 삼족오(三足烏)와 궤를 같이 하지만, 실은 곤륜산(崑崙山)이라는 신산(神山)에 상거(常居)하면서 하늘에서 강림하는 천제(天帝)와 짝을 이룬 지상의 최고 여신선인 서왕모(西王母)의 메신저다.
항용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풍수학설이 실은 도교의 일파임을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금낭경과 청오경을 한 데 묶은 번역본이 동양학전문출판사인 자유문고에서 신성은 씨의 손을 거쳐 출간됐다. 이 두 풍수학 고전은 최창조 교수가 역주본을 냄으로써 일반에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風水地理(풍수지리) - blog.daum.net/choitj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