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부를 정도로 대표적인 선비의 고장인 함양에도 현대화 물결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급격한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로 많은 마을 주민이 타지로 전출해 인구가 감소하고 옛 건물들은 퇴락하고 있다.
그래도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통 환경을 이 정도로 보존하고 있는 마을은 거의 없다. 아직도 이 마을에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를 포함해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 수는 200여 명에 이르며 이 마을에서 배출한 대학 교수만 150명이라고 한다. 600년이나 과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개평마을에 함께 가보자.
개평마을에 들어서면 좌우에 큰길이 있는데, 우측으로 향하면 제일 먼저 중요민속자료 186호인 ‘하동정씨 대종가’가 보인다. 그 아래로 ‘풍천노씨 대종가’와 ‘오담고택’, ‘노참판댁고가’ 등 한옥들이 흙담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옥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집들이 밀집돼 있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중요한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게 이 마을의 장점이다.
●성리학 대가의 흔적을 찾아서
선비와 문인의 고장, 함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일두 정여창이다. ‘일두’란 한 마리의 좀벌레란 뜻이다. 그는 조선조 5현이며 동국 18현으로 성균관을 비롯해 전국 234개 향교, 9개의 서원에서 모시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다.
하동정씨 대종가는 1570년 정여창 생가 자리에 지어진 뒤 후손들에 의해 여러 번 중건됐다. 이 집은 ‘정여창고택’이나 ‘일두고택’이나 ‘정병옥가옥’ 등으로도 불리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명칭은 문화재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인 ‘함양정병옥가옥(咸陽鄭炳鎬家屋)’이다.
풍수에서는 대문을 기(氣)의 출입구로 여겼으므로 건물에서 대문의 방위를 대단히 중시했다. 솟을대문 주위의 담장은 대문과 함께 풍수에서 말하는 사신사(四神砂) 역할 즉,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림집을 풍수로 풀 때 집의 주된 건물은 혈(穴), 마당은 명당(明堂)이 된다. 솟을대문 앞으로 하마비가 자리해 주인의 명망을 알린다.
솟을대문에는 다섯 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5개의 ‘정려’를 게시한 문패가 걸려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바로 정면에 보이는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충효절의’와 김정희 글씨라는 ‘백세청풍’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걸렸으나 고증은 안 된 상태다.
●동양의 신선사상 담은 정원 ‘석가산’
사랑채는 일두고택의 위세를 한껏 보여주며 이 앞에 조성된 ‘석가산(石假山)’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석가산은 자연석을 이용해 삼봉형의 주산을 높게 만들고 좌우에 주산보다 낮은 높이로 각각의 봉우리를 만든 후, 산봉 아래 깊은 석곡을 만들어 매화 등을 심은 조원이다. 중국 송나라 때 생겼으며, 한국에서는 백제·신라 때에 활발했고, 일본은 백제인에게 기술을 전수 받아 오늘날까지 일본 정원의 골격을 이루는 요소로 삼고 있다.
풍수적인 비보(裨補)로 쌓는 조산(造山)과 달리 석가산은 규모가 훨씬 작고 관념적이다. 그러나 작은 규모에도 산과 바위와 물과 나무가 모두 들어 있어 ‘동양 전통의 신선사상’을 조형물로 나타내고 있다. 일두고택은 석가산의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대체로 한국의 민가는 조원을 후원에 두고 있는데, 이 집의 석가산은 사랑마당 담장 옆에 조성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덕분에 이 고택에서는 사랑채 누마루에서 석가산을 잘 볼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남서향과 동남향으로 방향을 달리 하는데, 이는 바깥의 풍경을 석가산을 통해 빌린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참고로 한옥은 집 안에 큰 나무가 들어서는 것을 꺼렸다. 잘 자라는 나무를 마당에 심으면 뿌리에 돌을 박아 성장을 억제시켰을 정도다. 한국에서 마당은 그저 비워두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기본이었다. 이는 마당이 양기를 받아들이는 장소일 뿐 아니라 곡식을 거둬 보관하는 공간이자 작업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임원경제지’에서 마당 역할을 지적한 부분을 보자.
‘ㅁ’자형 집의 안은 안마당인데 마당이 협착한데다 지붕의 그늘이 서로 드리워진 까닭에 곡식이나 과실을 말리는데 모두 불편하다.
출처 : 風水地理(풍수지리) - blog.daum.net/choitj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