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 속에 이어져온 풍수지리에 대해 현대 과학 등에서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인정하여 약 20여년 전부터 자연 풍수지리의 관한 학문적 연구가 지속되고 있지만 과학이나 의학적 실험을 할 만큼의 업적을 만들어 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대 최 모 교수님의 책의 내용을 발취해보면 조경학, 건축학, 역사학, 동양철학, 환경과학, 인류학, 국문학, 민속학 등에서 풍수를 연구하고는 있으나 이들 또한 연구의 양적 축척을 충분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풍수사상 그 자체에 몰입하여 그것의 사상성과 이론적 배경 그리고 논리구조를 직접 대할 수 있는 분야는 지리학이라는데 의견이 없을 것 이라고 했다.
따라서 필자 또한 풍수지리라는 포괄적 의미를 떠나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천기에 의한 명당 또는 수맥 정도가 관심에 대상인 것을 볼 때 이는 지리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계인 토지의 풍수지리란 현대 과학이 찾아내지 못하거나 밝혀 내지 못한 분야는 실로 무지하다.
그렇다면 왜 오랜 역사가 흐른 지금에도 많은 학자나 풍수학회, 풍수전문가, 기역 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풍수에 관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과학계나 의학계는 물론 풍수지리 근본과 사상이 일원화 되지못하고 무책임하고 무질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필자는 정의를 내려 본다.
정교하게 오묘하게 구성 되어 돌아가고 있는 우주의 초자연 자동화 시스템이란 사진이나 그림으로 해석 된 책등을 보며 단순한 숫자의 맞춤법처럼 풀어지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욕심만으로는 더더욱 쉽게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천지창조인 우주공간인자연의 토지가 인간만이 주인이고 인간만이 생존해야 하는 것처럼 망각하여 많은 생명체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멸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자연속의 많은 생명체들과 공존할 수 있어야 인간도 영원 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구역정도는 이해하거나 인지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풍수지리학의 기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다는 인간의 생명도 거대한 대 우주의 시스템에서 바라다본다면 별것 아닌 어느 곤충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구상에 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벌들이 자연속의 수많은 꽃을 찾아 꿀을 따야만 하는 것이 꽃들을 수정시키기 위함일까, 누구도 그럴 것 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벌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꽃 속에 들어 있는 꿀을 먹어야 되는 것이다.
자연은 벌에게 꿀만을 먹고 살도록 생명을 주웠고 자연속의 식물과 나무의 꽃은 벌이 좋아하는 꿀이 꽃 속에 들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꽃 들은 벌에게 특별히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세를 지지 않고도 수정이 될 수 있기에 열매를 맺고 씨앗이 되어 스스로 번식하며 멸종되지 않고 대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하고 정교한 자동화 시스템인 것이며, 자연이란 이렇게 벌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많은 종류의 동 식물에게 각자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서로 다른 먹거리를 배분하였고 살아가는 토지와 영역도 평등하게 분할하여 주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은 인간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평등하고 정밀한 구성된 초자연의 자동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연을 훼손하고 동.식물의 영역까지 침범하며 자연계의 자동화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풍수지리의 근본과 사상이란 사람만이 아닌 동 식물이 공존하도록 배분된 영역을 먼저 이해하여야 하고 인간에게 배분된 영역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말하며 주장한다,
현시대에 유행하고 있는 풍수지리의 전반을 살펴보면 자연의 귀중함과 중요성이 무시되는 가운데 모두가 아닌 인간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땅 찾기에 급한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과학이나 의학의 실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들만을 인정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풍수지리의 비과학적 논리를 과학이나 의학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초 자연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풍수지리에 도전하며, 또한 필자는 그간에 만들어진 풍수에 관한 어려운 전문 용어 해석을 뒤로하고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한글의 표현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과 동 식물의 연관성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60여년전 일본사람들이 박아 놓았던 쇠말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놈의 일본 놈들은 정녕 무엇을 알고 있었기에 또한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작업하기조차 어려운 쇠말뚝을 전국 산천에 박았더란 말인가? 그리고 쇠말뚝을 박을 장소와 위치는 누가 지정했더란 말인가, 이러한 의구심을 같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의 풍수지리에 관한 관심은 여기서부터 시작 되었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아도 일본인들이 한국을 침범하여 통치하긴 했지만 일본풍수가들이 전국 산천의 지리 지형을 알아내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인데 명당인 생기 혈 자리까지 찾아낸다는 것은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추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쇠말뚝을 왜 박아야만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세월을 돌려 조선시대로 들어 가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세종에서 성종대에는 편제를 달리한 풍수학의 독자적인 지리서가 만들어지고 왕족이나 사대부의 일가들은 지금의 산부인과처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으로 지정 된 산모 실이 별도로 지정 되여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한국의 풍수는 일본보다 앞서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이것만이 아니라 왕족의 후손들은 명당이라 지정된 장소에서 아이를 분만하고 그 아이의 태는 생기 혈이 왕성한 최고의 명당자리를 찾아 태의 무덤인 태실을 만들었는데 이는 왕족들의 가족만이 할 수 있었던 왕권 이였다.
출처 : 風水地理(풍수지리) - blog.daum.net/choitj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