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풍수 조각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지난번 필자는「풍수는 모자이크(mosaic)다 ①」편에서 풍수에 대한 현대인들의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것이 하나의 풍수가 아닌 다양한 풍수 조각들의 모음인 풍수모자이크일수 있음을 우선 자생풍수와 중국 이론풍수(비보풍수와 명당풍수)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이번에는 풍수와 관련된 인간 요소에 주목하여 풍수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와 관련해 ‘공동체 풍수’와 ‘엘리트 풍수’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공동체 풍수와 엘리트 풍수가 무엇인지 그 개념 구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굳이 이렇듯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을 통해 풍수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현상 또는 그 현상의 특성에 대해 주로 어떤 수단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말이나 글, 몸짓언어와 같은 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가 관심 갖는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여러 현상 또는 그 현상들의 특성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다름 아닌 개념이라고 한다면, 왜 우리가 개념에 대해 관심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과 관련된 언어적 표현 모두가 개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철수, 영희, 돌쇠 등의 사람 이름을 볼 때, 그것은 그렇게 불리는 실재 사람들을 지칭하는 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개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성별과 관련해 ‘여자,’ ‘남자’라거나 또는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의 ‘동물’들과 구분하여 ‘인간’이라고 하는 것 등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개념이라는 것은 현상들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묶은 ‘범주(category)’와 관련된 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다양한 범주로 묶여지는 현상들 간의 관계는 개념들 간의 관계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림 1)
공동체와 엘리트 풍수, 사용 목적에 따른 구분
그렇다면 공동체 풍수와 엘리트 풍수가 왜 풍수와 관련된 인간들의 사용 목적을 기준으로 구분된 개념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몇 해 전 필자는 금산군으로부터 금산군 지역의 풍수에 대해 조사,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의 일 년여에 걸쳐 금산 지역의 여러 마을을 답사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방문했던 마을치고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나 경관들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풍수가 확인되지 않는 마을도 기실 풍수가 실제 없었다기보다는 그동안 마을에 전해지던 풍수 관련 이야기가 어느 때 부터인가 마을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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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행주형 형국의 돛대인 탑선이탑 | 그런데 이들 자연마을 단위에서 확인되는 풍수의 모습은 그동안 지리학을 전공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 접해왔던 이론 중심의 풍수와는 사뭇 달랐다. 특히 두 가지 점이 부각되었는데, 하나는 자연마을단위에서 확인되는 풍수는 마을공동체 전체적 차원의 안위를 위한 공간 구성을 위해 풍수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풍수는 모자이크다 ①’편에서 구분한 중국의 이론풍수, 즉 명당풍수보다는 비보풍수가 일상적이었다는 점이다. 이점은 마을의 민속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온 지인의 한 마디 “민속조차도 풍수 빼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 친구가 민속을 조사하며 접했던 풍수는 풍수모자이크를 구성하는 다양한 풍수 조각 중 비보풍수였을 것이다. 금산읍 중도리의 탑선이 마을 사례를 보자. 마을 북쪽에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는 마을의 풍수 형국과 관련된 촌락민들의 풍수적 대응의 결과물이라고 전해진다. 즉,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지세가 ‘떠나가는 배(행주형 行舟形)’의 모양이기 때문에 탑은 다름 아닌 배의 순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돛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그림 2) 공동체 풍수, 마을 전체의 안위에 주목
또한 이러한 행주형 지세에서는 마을 안에서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 격이 되어 마을에 화가 미친다고 하여 우물을 파지 않고 마을 앞 시냇물을 식수로 사용해 왔다는 공통의 풍수 이야기가 전해진다. 심지어 무거운 바위나 석재(돌)를 이용한 마을길 ․ 주택의 건축도 제한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도 배의 순항에 지장이 없도록 뱃짐의 양을 조절한다는 의미에서이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와 같은 마을공동체의 풍수적 대응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미신적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인지 미신적인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미신적, 비과학적이라고 성급히 몰아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현대인들이 집밖을 나설 때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교통규칙이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이러한 공통의 약속들이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풍수적 대응을 통해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목적은 무엇인가? 보통 위의 사례처럼 마을 입지를 행주형의 지세로 파악하고 그에 대한 풍수적 대응을 취하는 것은 공동체 차원에서의 물 관리 문제가 마을의 유지,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흔히 행주형의 형국이 관련된 마을 입지는 대개 큰 하천 연안의 충적지이거나 또는 여러 물길이 만나는 합수처일 경우가 많다. 마을의 유지 존속을 위한 풍수적 대응
언뜻 생각하기에 이런 조건을 가진 마을은 마을 내 어느 곳을 파더라도 쉽게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용수를 얻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물은 거의 빗물(雨水, 하천수)일 가능성이 높고, 또 지하 수맥이 마을의 존폐를 결정지었던 수인성 전염병의 주된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을 공동체 차원의 물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주형 지세로 마을의 형국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여러 풍수적 대응조치를 취하는 것은 마을의 유지, 존속을 위해 필요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금기나 생활방식을 조절하고 견제할 목적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마을 공동체 차원의 안위를 목적으로 풍수가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목적으로 개입된 풍수를 ‘공동체 풍수’라고 구분하고자 한다. 그럴 때 ‘엘리트 풍수’는 이러한 공동체 풍수와 대비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관련되는 풍수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는 소위 엘리트(elite)라는 말이 특수한 자격을 지닌 개인들 혹은 개인들의 집단을 일컫는데서 비롯된다. 물론 특정의 개인 또는 집단인 엘리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공동체라는 말이 적절할지의 여부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풍수와 관련된 인간 요소에 주목하여 풍수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러한 공동체 풍수에 대비되는 엘리트 풍수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엘리트 풍수, 개인과 특정 집단의 목적에 초점다음 풍수 이야기는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현재의 융릉)를 수원 근처로 이장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풍수 논의 중 하나이다. “지사(地師)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극히 길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다. 화산(花山)이 왼쪽으로 돌아 건방(乾方)으로 떨어져서 주봉(主峯)이 되고 건방의 주산(主山)이 해방(亥方)으로 내려오다가 계방(癸方)으로 돌고 다시 축방(丑方)으로 뻗어오다가 간방(艮方)으로 바뀌면서 입수(入首)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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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융릉 | 앞에 쌍봉(雙峯)이 있는데 두 봉우리 사이가 공(空)이 되고, 안에 작은 돈(墩)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구슬 같다. 계좌 정향(癸坐丁向)으로 안장(安葬)하면 그 구슬은 턱밑의 구슬이라 할 수 있고 공은 빈 곳을 안대하는 공이라 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건방에서 득수(得水)하고 왼쪽으로 을방에서 득수하며 또 신방(申方)의 물이 오방(午方)에서 파(破)하니, 수법(水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청룡 네 겹과 백호 네 겹이 에워싸 국세(局勢)가 만들어졌는데, 혈(穴)이 맺힌 곳이 마치 자리를 깐 것처럼 펑퍼짐하니 혈 자리가 분명하다. 뻗어온 용의 기세가 7백 리를 내려왔는데 용을 보호는 물이 모두 뒤에 모였으며, 현무(玄武)로 입수(入首)하였으니 천지와 함께 영원할 수 있는 더없는 대지(大地)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정조실록』, 13년 7월 13일 丁酉) 이렇듯 마을공동체 차원의 공동체 풍수와 엘리트 풍수의 사용 목적이나 그 활용 범위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풍수는 전통적 생태지혜 또는 생태중심적 환경철학, 공간구성의 원리 등으로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풍수모자이크를 구성하는 다양한 풍수 조각들 중 어느 것에 주목할지에 대한 논의가 도시계획이나 의미 있는 공간구성, 인테리어 등 풍수의 실제적 활용에 대한 관심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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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정 :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지리학 전공(교육학박사). 현재 한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저서로 '풍수 그 삶의 지리, 생명의 지리'(공동), '대덕의 풍수', '풍수로 금산을 읽는다' 등이 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