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과 사주학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을, 그 원인 과 결과를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究明하고, 그 원인과 결과간의 필연적 관련성을 五官의 작용에 의하여 인식할 수 없을 때에는 이를 전부 미신으로 간주하여 배척하는 경향이 과학의 발달로 지배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계의 통설이 되다시피한 불확정성원리는 `현재의 가능한 관측수단으로는 세상 모든 것이 우연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어떠한 법칙 및 원리도 그것은 항상 확률적으로만 진실로 표현되는 것이므로 그것이 절대적 필연성을 가진 것이라고 말 할수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 인간들처럼 우연에 지배되고 있는 것도 드물다.
인간으 그 시작 즉 출생부터가 우연이다. 하고 많은 생물중 지구상의 인간으로 태어나고 위로는
고관대작의 맏아들로 부터 밑으로는 한 술 얻어먹기 힘든 비천한 집 막내로 태어나 기구한 인생
행로를 거쳐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사회에 있어 이 우연이라는 사실을 숙명(宿命) 또는 運命이라고 부른다.
이 우연, 숙명과 운명의 발견은 인간의 회의와 사색의 첫걸음이었다.
`오늘 살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어떻게 살아야 하며 또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거나 목적과는 엉뚱하게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고
어느 날 갑작스런 충격이나 좌절을 맛볼때, 물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의문 등 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거대한 운명의 작용력에 대하여 인간의 智力은 대항조차 할수없는 것인가?
숙명을 숙명으로만 諦念하고 그에 순응해야 할 것인가?
우연과 숙명이 물가피하더라도 그것은 너무나 중대하고 거창한 인간에 대한 압박이다.
이 압박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인간은, 숙명의 본질이 우리가 과학적 방법으로 감각하고 이를 처리할수있는 필연성 너머에 있는 우연성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미 현상화한 우연을 소급하여 이를 변환하게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와같은 우연을 낳게 한 誘因力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하여 그 정체를 파악하여, 이후에 닥쳐올 우연성을 인간생활에 이용하려고 하였다.
이런 기도는 우리 세대에 시작된게 아니라 아득한 예날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이런 운명에 대한 항거 즉 우연성에서 어떤 필연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연구의 중에서 가장 우연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출생이라는 사실을 그 대상으로 한 것이 사주추명학이다.
그럼 사주추명학상의 법칙에 의하여 유도되는 운명 및 숙명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과연 절대적 운명론이 타당한가?
절대론자는 우리 인간이 그것을 원하든 아니하든 또 인간에게 유익하든 무익하든지간에 숙명이 절대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인간의 정신적 구제는 종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절대론이 진실이라면 우리 인간은 운명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자기의 숙명 및 운명이 여하한 것인지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생활의 일체가 모두 숙명에 의해 지배된다면 숙명에 대한 연구자체가 전혀 무 가치하고 무의미하게 하는 까닭이다.
즉 어떤 사람에게 요절한다는 숙명적 암시가 있을때 이것이 절대적이라면 여하한 섭생과 치료도 전혀 그 효과가 없을 것이므로, 일체의 희망과 노력을 인간으로 부터 빼앗아 갈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으로부터 일체의 노력과 向上심을 빼앗고 나아가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절대적 숙명론에는 절대로 찬성할수없다.
우리 인간은 출생의 순간 어떤 우연에 의하여 남녀의 성별은 물론 빈부 강약 賢愚 등 선천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출생후의 추이에 따라서는 출생시점의 조건을 배제 내지 변경하여 빈천을 부귀로, 병약을 건장으로 전환시킬수 있다. 따라서 숙명도 출생시 정하여진 天命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출생시 주어진 숙명적 암시 내지 하나의 경향으로 볼 것이다.
이와 같이 숙명을 하나의 숙명적 암시 내지 유인력으로 본다면 이에 대처할 방책은 저절로 생겨난다. 즉 흉의 유인이 있으면 그 유인력보다 더 큰 힘 및 노력으로 그 흉을 없애고 일보 전진하여 길로 이끌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경험을 존중하고 체험을 귀중히 여긴다. 그 경험과 체험은 그 자체로 귀중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 차질, 오산 등 쓴 경험을 살려 장래에 유용하는데 그 보람이 있는 것이다.
사주추명학은 이와 같은 경험의 善用에 앞서 실패 차질 오산 등이 일어나기 전에 이를 미리 찰지(察知)하여 그 유인력을 저지하고 이를 善으로 전환시키는데 그 가치와 진가가 있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이유는 追吉 避凶 에 있다.
그런데 현대의 일부 지성인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중에는 무조건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妄斷을 내리거나 그저 혹세무민하는 점술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미신의 사전적 해설은 마음이 무엇에 홀려서 망령된 믿음에 집착하는 것,
종교적 과학적 견지에서 망령되다고 생각 되는 신앙을 말합니다.
일부 종교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절대적 숙명으로 여기고
오직 나를 믿으면 이다음 죽은후에는 영생을 얻어 또는 극락세계에서 잘산다는 식입니다
아울러 사주를 본다 던가 하는 것은 자신의 有一 神에 대한 권위하락, 신앙심하락을
우려하여 금기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주라는 것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신 라이프코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지혜로운 자들만이 이 비밀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