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관을 보려면 상대적으로 인나식을 살펴야 한다.
인나식하고 재생관하는 경우를 흔히들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사주팔자는 미세한 변수가 그때 그때 다름으로 나타난다.
인나하고 재생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나식하고 재생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인나식 각각의 왕쇠에 따라 재생관의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재생관만 봐도 관보다 재가 왕하게 되면 재생관의 범주는 아니다.
재생관은 일단 관을 중심으로 재생관이 되어야 한다.
인나식은 일단 인성으로 신왕하고 재생관이 되어야 한다.
재생관을 말하는데 상대적인 인나식을 싸잡아 신왕 신약으로 구분하면,
신왕 재생관은 긍정적으로 좋은 것이고,
신약하면 재생살되어 부정적으로 나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오늘은 재생관을 표현하는데 있어
육신의 정편재를 나누지 않고 재생관을 논하지 말자는데 촛점을 두고 싶다.
정재+정관을 길신+길신의 재생관이니 재생관이라 하는 모양인데
정재는 양일간일 경우 이미 일간과 합이 되고 음일간일 경우도 음양이 교차하는 육신이다.
이미 정재의 재생관은 나중심적인 재생관이지 관중심적인 재생관은 아니다.
물론 이또한 일간의 왕쇠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관점은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일간중심적으로 보면 나중심적으로 관을 이용하여 나의 일용한 양식을 구하는
방식이 되니 이것을 윈윈전략이라 해야 할지 재생관이라 해야 할지 알아서 판단하시면 된다.
대개 직업적으로도 이마트에서 자기 코너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부류이고,
백화점에서 수수료 매장이 아닌 입점식 매장에서 근무하시는 부류들이다.
이들이 과연 관에 대한 충성도가 재생관하는 의미로 판단하기에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판단하기에도 곤란하다. 그냥 싸잡아 재생관이라면 할말은 없다.
정재의 재생관은 나중심적인 재생관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재는 상관을 救하는 특성으로 관에 대한 충성도는 이미 떨어진다는 의미다.
하물며 편재가 살을 생하는 것과 정재가 살을 생하는 재생살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정재가 살을 생하는데 신약한 것을 재생살하는 것이라 하는 모양이다.
재생살을 정리하면
정재가 정관을 생하는 것이 있고
정재가 편관을 생하는 것이 있고,
편재가 정관을 생하는 것이 있고,
편재가 편관을 생하는 것이 있다.
일간의 신왕 신약을 배제하고 재가 관을 만나는 형태에 따라 다름을 설명하는 것이다.
재생관의 형태로 직업적 형태나 부부간에 상호관계는 천태만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육신으로 정재와 살이 있다해서 생이라 말하는 분도 있으니 설명이 구차하기만 하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생하는 것도 각각 그 정도(양)가 있고 목생화와 금생수가 다름인데
이를 다 살피고 재생관과 재생살에 의미를 궁리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여튼 정재가 살을 생하는 것을 단지
정편재는 대체로 구분하지 않으니 싸잡아 재이고 정편관은 중요하다 여겨 살로 구분하여
재생살이라는 어렴풋한 단어로 나름대로의 재생살을 오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생살을 보는 것도 나중심인 일간중심으로 보는 것이 있고,
사회중심인 관중심으로 보는 방법이 있고 옆집아줌마 관점으로 볼때도 있다.
이를 일차적인 시각으로 재생살을 살피려 한다면 분명 자살에 대한 연유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여튼 여하튼 나는 정재가 살을 생하는 재생살은...
울며 겨자먹기로 버거운 체면을 지키며 자기 안위를 돌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직업적으로도 정재+살로 되어 있는 사람은 백화점에도 입점식이 아닌 수수료방식이다.
부부관계에서도 재생살은 여자가 재성이고 살이 남자라고 할때,
남자에게 맞춰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이미 불평등 조약이다.
재생관을 정경유착이라는 의미로 표현할때,
정재-편관은 5공화국때의 불평등 조약과 같은 것이다.
정재 정관이라해도 정경유착은 이미 나중심이지 관중심은 아니다.
물론 관중심에서 볼때는 국가 경제를 선도해가는 글로벌 삼성, 현대라는 회사이다.
정재가 살을 생하는 구조로 재생살하면 쓰리고 아픈것이다.
사사로운 변수에 맞춰 나의 안위가 늘 흔들 흔들하니 괴롭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
출처 : 재생관과 재생살의 차이점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