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팔자 뒤웅박이라는 제목을 적고는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어떠한 관점에서 뒤웅박이라는 말인지 정인의 시각에서 써야할지, 관성의 시각에서 표현되어야 할지, 식신의 시각에서 표현되어야 할지, 하여튼 여하튼 여자의 운명은 한마디로 귀결된다는 것이 넌센스입니다.
이성에게 인기많은 여자의 운명을 오행으로 표현하면 일단은 예뻐야 합니다. 음식맛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컨셉이나 디스플레이도 따지는 현실이고, 옷도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입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 들어가는 세상인데 여자가 예뻐야 남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여자가 예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지나치긴 하지만 그래도 표현하자면 비겁이 식상을 생하는 분들입니다. 육신은 어떠한 여건에서 살아가는 모양이나 남녀의 상호적인 역활을 보는 것이 더 적당하기는 한데 명리에서 육신이 차지하는 부분이 꽃과 같아 화려해 보이나 봅니다.
학인들간에 약속되어 공통된 언어로 공감대를 가지기는 쉬울수 있으나 그만큼 간과하기 쉬운 점도 있다는 것을 세월이 가다 보면 알게 되고 그러하다 보면 어디에서 부터 어디까지 해석되어져야 하는지를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 육신의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개 따분해질 수 있고, 모르는 것은 호기심이기는 한데 이도 세월이 지나고 보면 결국 하나로 귀결되어지는 맥이 있으니 넓은 시야로 명리관을 가져야 하고 그중에 육신의 운용은 꽃과 같아 철저히 현실과 부합하고 맞는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선에서 육신이 운용되고 해석되어야 하는데 2011년에 세상을 모르면 이미 육신 해석은 편협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세상이 재생관이라면 하루하루가 변화하는데 있어 떠오르는 별이 있고 유행이 생겨나기도, 이슈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 재생관입니다.
이러한 재생관이 관인상생에 이르면 떠오르는 별이 저물어 가기도 하고, 유행이 고착화되어 정서나 이념, 관념으로서의 여론이 공론이 되어 이념으로 고착화되기도 하는 과정을 말하니 변화 발전하는 삶속에 자신의 운명은 재생관하는지 관인상생하는지를 살펴 세상에 어찌 부합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육신의 정재가 철저히 자기가 주장하는 현실이지만 이도 신왕하면 주체로서 현실을 맞이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려는 것이지만 신쇠하면 객체로서 현실을 맞이하니 주어진 현실을 남 애기하듯 소극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정재가 재생관한다는 것은 이는 개개인의 사정을 통합하는 것과 같습니다.
간단한 재생관도 편재가 재생관하면 관이라는 주체에서 객체라는 편재를 설화하는 입장이니 유효한 포지션을 이미 선점하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과 같아 통합되어진 여론을 공론화하는 과정에 머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정재는 한개인의 정체성이라면 이미 편재는 전체의 정체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재생관을 뉴스미디어로 표현하면 편재가 한다면 아침에 전철역마다 있는 무료신문과 같아 출근길에 보는이가 있다면 이를 곧바로 수거하는 분도 계시는 것과 같아 찰라처럼 잠시 머물럿다 폐기처분되는 무료신문과 같고 정재가 한다면 아마도 주간지 내지는 월간지로 한달동안은 비치되려 할 것입니다.
인생사 찰라같이 머물다가는 무료신문도 있고 자그만치 한달동안 머물럿다가는 월간지도 있으니 재생관이라는 하나의 테마만 봐도 정편재가 다름이고 정편관이 다름으로 만약 편관이 되면 아마도 자극적인 문구로 광고마아케팅을 하여 독자의 관념을 강제로 때로는 자연스럽게 침투하려고도 합니다.
이러한 재생관은 늘 새로운 화재로 유행을 만들어가기도 선도하기도 하며 관인상생이라는 의식에 영향을 미치며 역사로 남겨지나 봅니다.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티브이 프로가 비식이 사는 세상이라면 식상생재는 가까운 재래시장사람들을 말하고 재생관은 가보고 싶은곳, 이제 막 따끈따끈해진곳인가 봅니다.
그럼 장소로 관인상생하면 경복궁과 같은 역사속에 유례가 있는 유적지 정도일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논리가 여자의 운명으로 해석되어질때 어떻게 해석되어야 져야 맞는지 보다는 틀리지 않는지에 대해서 기준을 잡다보면 이것이 논리이고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은 될 수 있다고 하나 봅니다.
이시대속에 여자가 명리에서 육신으로 아직까지는 아극자하는 재성을 여자로 지칭한다는 자체가 기회이고 뒤웅박 팔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관이라는 것이 이미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도 현실에 부합하고 적응되어 살라는 것이니 억울해하지도 기뻐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자의 운명에서 재성이 많거나 간여지동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뜬구름 잡는 기대를 하고 있으니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치고 깨지며 분수를 자각할때 결혼이 가능해지나 봅니다. 자신을 포기할줄 아는 지혜만이 세상과 부합한다는 말을 어렵게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출처 : 여자팔자는 뒤웅박이다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