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사주에서 재극인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여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보다는 의무를 우선시하라는 말입니다. 물론 인성이라는 육신이 사주마다 하는 역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습니다.
육신이라는 재극인을 여자에게 한마디로 권리나 의무로 귀결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랑받을 권리나 인격적으로 존중하던지, 최소한 꾸어다 놓은 궤짝취급하지 말고 알아만 달라는 말입니다.
여자의 사주에서 재극인이 되어 있으면 그의 남편은 타인에게는 신사, 호인, 다정한 사람인데 정작 아내에게는 의무만을 거론하며 애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 등을 원하거나 소홀하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그의 남편이 남에게는 잘해보이고 나에게는 못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왈 남(넘,놈)들에게 하는 것 나에게 반만 해도 내가 이런말 하지 않는다 하소연 합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정말 그의 남편이 넘들에게는 과한 친절을 보이고 나한데는 의무만 요구하거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보듯 무심했을까요? 그분이 느끼는 감정이니 거짓은 아닐 것입니다.
여자분의 팔자가 그러하니 남편이 그러한 것인지, 남편이 원래 그런사람이 아닌데 그러한 역활을 하려고 옆에 있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으니 결국 자신의 운명에 원한과 원망을 만들고 삽니다.
여자의 권리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저 인간이 사랑은 애 몇을 낳았으니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가끔은 눈길은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합니다.
그윽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한번만이라도 보아 준다면 닫히고 응어리진 마음이 봄눈에 눈녹듯 녹아내릴 텐데 건성으로 지나다 못볼걸 본것마냥 외면하니 남편이 아니고 왠수가 다름이 없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속에 타인에게는 최소한 지켜야할 예의와 범절이 있으니 매너라는 것을 지키며 어려운 듯 대하는 것이 아내가 보기에는 그윽하고 정성을 다하는 눈빛으로 보여졌나 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타인에게 진심어린 눈빛으로 대하면서 늘 자신에게는 성의없이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아니라 저런 왠수를 믿고 한 생전 살아가자니 앞길이 머나멀기만 합니다.
재수가 옴팡지게 없어 왠수의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주렁주렁 둘도 많은데 셋씩이나 낳아 키우다 보니 남산만했던 가슴은 어느새 깍이고 패여 절벽이 되었으니 한스럽고 분통이 터져 살수가 없습니다.
그놈에 화병이란 것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기 시작하더니 몸까지 파고 들어 이마에 열꽃이 나다가 이제는 머리칼도 한줌씩 빠지더니 휑한 머리가 자신이 봐도 애처롭고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네 어머니는 강건하시어 참는데는 이골이 나신듯 다부진 입매가 삐치신게 분명하십니다. 참고 또 참고 살았는데 꼬~오래! 바람피는 냄새도 나니 더이상은 못참겠다는 의지를 보이십니다.
긴 머리칼 한올을 와이셔츠에 묻어 온 것을 보고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는 영명한 힌트이니 이놈에 못된 왠수 드디어 못된 버르장머리 뜯어 고칠 때가 된 신호로 생각합니다.
단물 빠진 가슴을 생각하니 왠수의 가슴팍에 손톱자국을 깊게 새기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고, 휑한 머리칼이 숭숭하여 민머리가된 헤어를 생각하니 머리칼을 다 잡아채도 시원치 않습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을 자신은 이 정도에서 용서하고 사는 넓은 아량이 있는 사람이고 인간이 아닌 늑대 동물로 취급해 버리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맞는지 누가 틀린지를 가려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정답이 없는 것이 남녀사이라 둘만이 아는 것이고 둘만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일밴드를 어디다 붙어야 할지 묻고자 합니다.
팔자가 그러니 팔자 탓, 아내 탓, 남편 탓, 시간과 때가 그러하니 시간 탓 현대인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좀더 확고한 원인과 과정과 결과로 이어지는 병에 문제점을 알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출처 : 여자에게 재극인이란?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