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세상을 여는 디지털 혁명
그러면 디지털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간의 언어와 숫자도 하나의 부호화된 정보입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못하고 경제 활동을 하는 셈을 할 수 없다면 참으로 답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자주 접하는 바코드는 주역의 괘를 전환한 그림입니다. 빨간 레이저 빛을 쏘일 때 빛이 반사하면 1, 흡수하면 0으로 코드화 되어 판매 즉시 각종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집계하여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줍니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정품인증, 신용카드 앞면의 은빛 그림 등에 적용되는 홀로그램 역시 3차원 입체정보를 디지털화 한 것입니다.
디지털을 사용하면 사물의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고, 부분들의 관계가 새로운 통합성을 발산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동향을 파악하기 쉬운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최근 아날로그 음악이 자연의 소리에 가깝다고도 하고, 디지털 음악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디지털은 관념의 산물이고 0과 1이 있을 뿐이라서, 끊임없이 흐르는 경험과 의식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하고 항상 <간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해상도를 높이고 간격을 줄인다 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디지털의 본질입니다.
좀더 깊이를 더하면, 양자역학의 대가 훨러는 ‘존재는 비트에서’ 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습니다. 이는 비트라는 무극과 태극을 바탕으로 만물의 존재가 일어난다는 우주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라디오나 TV의 신호를 옮기는 전파, 노트에 적은 글자,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0과 1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는 ‘예/아니오’의 대답이나, 동전 던지기에서 나오는 ‘앞면/뒷면’의 기록과 같은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나타냅니다. 마치 용광로에 각종 형태의 고철들이 들어갔다가 전혀 다른 형태로 탈바꿈되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세상을 설명하는 화두는 비트이며, 그것의 역할은 신속 정확한 정보의 전달입니다. 비트는 생명체에서 디지털 패턴을 이용하여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DNA와 같습니다. 유전자는 정확한 데이터가 필수이기 때문에 모호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종의 보존이 불가능하며, 다만 정보를 담는 그릇에 해당하는 세포는 아날로그 형식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디지털 혁명은 문명의 전반에 걸쳐서 사물의 명확한 이치를 규명하고 밝은 생활을 이끌고 있으며,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하나의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자연과 디지털 문명의 어울림
지금의 디지털 문명은 과도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미 세운의 앞서가는 기술자들은 기계의 속박을 벗어나 만사지(萬事知) 문화를 지향하고 상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필요에 의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투명한 미래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디지털은 불연속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무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상영된 <매트릭스> 영화에서 위기가 닥칠 때 전화를 받고서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광범위하게 열려있는 디지털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지금껏 공상과학의 영역으로만 여겼던 순간 이동이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현실을 가장 쉽게 잘 그려낸 영화가 매트릭스(Matrix, 板)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곳에는 인간과 컴퓨터가 연계되고, 기술이 인간을 진화시키고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원본 스미스와 똑같은 스미스 요원이 무한히 복사되고, 시공을 초월해서 어디든지 갑자기 나타나서 사라지기도 하며, 신의 조화권능을 사용한 듯이 날아오는 총알이 순간 정지하여 콩알탄이 되기도 합니다. 네오와 스미스의 한 판 승부는 인간과 기술의 승부를 상징하면서, 결국 네오라는 주인공을 통하여 인간은 컴퓨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최고의 CPU는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비록 영화라고 하지만 그 시사하는 바는 갑자기 떠오른 디지털 광명에 적응하지 못하여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고 사는 인간 의식의 병폐를 꼬집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디지털 문명이 나가야 할 방향과 어떻게 디지털을 우리 삶 속에서 끌어안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출처 : 장재혁(한국전자통신 연구원 / 태전 과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