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申]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이 닮은 모습,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등장하는 12지신상의 원숭이는 무덤의 호석이나 탑상(塔像), 부도(浮稻), 불구(佛具) 등에서, 머리는 원숭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몸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무기를 손에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2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를 담당하는 시간신(時間神)이며 방위신(方位神)으로, 이 시간과 이 방향으로 들어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자와 백자에서도 원숭이의 생생한 모습이 보인다. 인장의 꼭지, 연적, 수적, 서체(緖締), 작은 항아리, 걸상 등에서 그릇의 모양이 원숭이의 형상을 띠고 있거나 장식 문양으로 원숭이가 나온다. 청자나 청동으로 만든 원숭이꼭지도장[猿形印章]은 쭈그리고 앉거나, 긴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혹은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를 하고 있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 동물로 갖가지 만능의 재주꾼이기도 하지만, 부모 자식간의 극진한 사랑이나 부부 지간의 애정은 사람을 뺨칠 정도로 셈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원숭이의 이러한 母子 간의 지극한 유대의 정을 표현한 청자원형모자상(靑磁猿形母子像)은 연적(硯滴)이나 서체(緖締), 장식품 등에서 어미가 새끼를 고이 품안에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백자 항아리에서는 원숭이가 부귀 다산을 의미하는 탐스런 포도 알을 따먹거나 포도 가지 사이로 다니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여기서 부귀 다산의 의미를 지닌 포도 알을 따먹은 원숭이는 바로 부귀 다산의 상징이요 그 기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그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십장생들과 등장하면서 천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인 원숭이,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관련하여 스님을 보좌하는 원숭이, 숲 속에서 사는 자연 상태의 원숭이 등이 그것이다.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원숭이는 그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천도복숭아는 열매를 한 번 맺는데 3000년이 걸리고, 그 열매가 익는데 다시 3000년이 걸리는 나무로 장수의 상징이다. 이런 천도를 먹거나 손에 잡고 있는 원숭이도 바로 장수의 상징이며 기원으로써 그려진 것이다.
구비 전승에서는 꾀 많은, 재주 있는,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자기의 잔재주와 잔꾀를 너무 믿어 제 발등 찍는 이야기가 많다. 원숭이는 실제로 우리 나라에 없는 동물이지만, 십이지신상이나 청자, 백자, 회화 등에 나타난 원숭이는 우리 나라에 실존하는 어느 동물보다도 그 형태가 잘 묘사되어 있고 그것을 통하여 원숭이가 지닌 여러 가지 상징성 암시성 등을 나타내려고 했다.
德 田 의 문 화 일 기. | bhjang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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