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바꾸기#2

12간지 동물 분석 - 양(未)

고은 | 2017-10-07 12:27:47

조회수 : 1,416

양(未)
 
 
양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 생활을 하면서도 동료간의 우위 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 또한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서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기도 하다. 목양(牧羊)이 깊이 토착화되지 못한 우리 나라에서는 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한(三韓)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고, 일본의《日本書紀》에 기록에 보면 "법왕(法王) 1년(599년) 7월에 백제에서 낙타 한마리, 나귀 한마리, 양 두마리, 흰꿩 한마리를, 헌덕왕(憲德王) 12년(820년)에는 신라에서 검은 수양 두마리, 흰양 네마리, 산양 두마리, 거위 한 마리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나라에 흔하지 않던 양이 삼한 시대부터 국가간 외교에서 중요한 공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해 들어 첫 양날을 상미일(上未日)이라고 한다. 첫 양날에 특기할 만한 민속은 찾기 힘드나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양이 방정맞고 경솔하여 해안 지방에서는 이날 출항을 삼가는 곳도 있다. 경거망동하면 바다에 나가 해난을 만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도 약을 먹지 않는다. 이날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외하고는 양은 온순한 짐승이기 때문에 이날 무슨 일을 해도 해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정월에 하는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이 바로 양에 해당한다.
 
 
천성이 약한 탓에(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쫓기고 희생되어야 하는 양은 설화, 꿈, 속담 등에서도 언제나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통한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에 양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꿈을 깨었다. 이 꿈 이야기를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하리라는 해몽을 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곤 '?'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되어 곧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이태조(李太祖)가 조선을 건국하매 양꿈은 길몽으로 해석되었다. 지금까지도 양꿈에 대한 해몽은 희생, 제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으로 해석한다. 이런 연유는 목축 민족에게는 양이 재산의 척도가 되고, 제단에 바치는 희생물이었고 양의 성품이 티없이 온순해 착한 사람으로 의미하게 되고, 기독교 문화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양과 관련하여 종교인의 상징이 된다.
 
 
우리 민족은 양과 염소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염소의 수컷에는 턱수염이 있다. 수염이라는 것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고, 염소의 성격이 또한 온화하고 온순하여 옛날이야기나 동화 속에서 염소는 주로 인심 좋은 할아버지로 묘사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양이 늑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잡아먹히는 대상이 대거나, 이들 동물과 대조를 이루어 착한 동물로 이야기된다.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었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贖罪羊) 일 것이다. 성격이 순박하여 양하면 평화를 연상한다. 겁먹은 듯한 순한 눈망울과 복슬복슬한 털에 덮인 양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안락의 상징으로 충분하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교 : 음력 봄 2월과 가을 8월의 첫 丁日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대제에서 조(俎;도마) 위에 담는 희생으로 양머리[羊腥]를 사용한다. 양머리는 유교의 대표적인 희생물이다. 동양에서 양은 일찍부터 영험스러운 동물[靈獸]로 알려졌다.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여왔고 고기의 맛이나 질도 그만큼 좋은 상위권의 동물이었다.
 
 
고대 동양에서는 소는 소의 솥[牛鼎], 돼지는 돼지의 솥[豕鼎], 양은 양의 솥[羊鼎]에 각각 삶아서 제물(희생)로 썼으며, 각 솥은 독특한 장식이 있었다. 양을 중히 여기는 생각은 세월에 따라 聖獸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으며 먹고 버린 뼈까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시하는 영물로 간주되었고 고이고이 간직하기도 했다.양의 가죽 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만 입을 수 있는데 논어의 이른바 염소 가죽옷에 검은 관을 썼다는 '羔裳玄冠'이 바로 그것이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양의 모습에서 효를 상징하기도 한다.
 
 
상형 문자인 양(羊)이 생기게 되자, 羊은 인간의 모든 기쁨을 포괄하는 글자가 되어 '좋은 것' 또는 '상서로운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양의 생김새에서 딴 상형 문자인 양(羊)은 맛있음,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등의 의미로 이어진다. 즉 큰양[大羊]이란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 자가 된다. 양이란 상형문자에서도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던 것이다.
 
 
'크게 좋고 상서롭다'는 것을 요즘처럼 '大吉祥'이라 쓰지 않고 '大吉羊'이라 썼으며, '모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의 '壁除不祥'을 '壁除不羊'으로 썼던 기록이 《博古圖漢十二辰鑑》이나 《漢元嘉刀銘》 등에 남아 있다.
 
 
양은 서양의 정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동물이다. 초원 위에 흰 구름의 형상을 수놓으며 몰려가는 양떼의 풍경은 가장 서양적인 전원의 목가를 낳았고,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받쳐 온 성경에서 양이야기는 무려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고대 이스라엘인의 생활에서 양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의(祭儀)의 필수품이었고, 양의 머릿수가 곧 재산을 뜻했다. 또한 양고기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이 동방박사들에게 인도했다는 것도 양의 상징적 기능을 말해 준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이스라엘이나 서양에서 양을 제물로 삼는 번제(燔祭)가 없어진 것은 예수와 양이 동일시된 성서의 유산이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에서 양은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를 상징해 왔으며, 일상생활에서 소나 말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고대의 수메르인이나 이집트인들을 비롯 그리스, 로마, 게르만 민족도 양을 신의 신성수(神聖獸)로 생각했으며, 유목민족에게 양은 특히 뇌우(雷雨)의 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사용 동물로 여겨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양은 미래를 점치는 동물로 활용했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양을 가리켜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양피(羊皮)는 고급 피혁으로 장갑, 구두, 잠바, 책표지 등에 쓰이고 양모(羊毛)는 보온력이 높고 질겨 고급 양복지, 솜 대용으로 두루 쓰이는 모직물의 주원료가 된다. 양유(羊乳)는 우유에 비해 단백질, 지방, 회분이 풍부해 허약 체질인 사람에게 좋다. 이처럼 양은 털, 고기, 뼈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일상생활에 이용되는 유익한 동물이다.
 
 
회화에서는 공민왕(恭愍王)의 {二羊}과 작자 미상의 {山羊} 그림이 있고 도자기로는 원주 법천리고분서 출토된 '靑瓷羊' 등이 있다. 우리의 옛 조각이나 그림에서 양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그러나 일단 우리 앞에 나타난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은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와 정의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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