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대의 꿈과 점
주례에 꿈을 점치는 법이 보인다.
春官 太卜이 三夢에 대한 법을 맡았다.
첫째는 致夢으로 하후씨가 지었고,
둘째는 觭夢으로 周人이 지었으며,
셋째는 咸陟으로 殷人이 지었으니 이는 모두 점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옛 사람은 간주한다.
점몽에 “일월성신으로 육몽을 점친다.”는 구절이 있다.
이곳의 육몽은 첫째, 正夢, 둘째 噩夢(놀랄 악), 셋째 思夢, 넷째 寤夢, 다섯째 喜夢, 여섯째, 懼夢이다. 이곳의 점몽에 대한 해석에 주석에서는 좌전 소공 31년 11월 초하루 신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전날 밤에 진나라 조간자가 꿈을 꾸었는데, 어린 아이 하나가 벌거숭이로 뒹굴면서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마침 일식이 있기에 史墨에게 점을 쳤다고 되어 있다.
꿈을 점치는 것에 관한 또 다른 기록에 보면 其經運十 其別九十이라고 하였다. 의미를 해석하면 법도로서 운용하는 수는 10이니 운용하는 방법은 90이라고 풀이함직하다. 그 본문 구절의 주석에 보면 運은 十煇이라는 훈자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밤에 꿈을 꾸면 낮에 햇빛 옆으로 나타난 기를 보아 길흉을 점치되 훈마다 아홉 번 변하는 것으로서, 지금은 이 술법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이는 먼저 침(祲)․상(象)․휴(鑴)․감(監)․암(闇)․몽(夢)․미(彌)․서(敍)․제(隮)․상(想) 이 열 가지부터 점친 다음, 밤 꿈이 이 점과 똑 같음에 따라 아홉이란 수를 얻어 각각 모두 점사가 나타나는데, 없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 점사라고 성호는 말한다.
덧붙인다.
사람의 생각은 온갖 형태의 꿈과 온갖 형태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를 자기 마음의 드러난 현상임을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그 꿈의 길흉 여부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인간의 정신 작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혹 꿈이 앞날에 대한 예시의 성격이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자기 자신이 주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주인 자리를 꿈의 현상 따위에 내주고 만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주인은 반드시 자기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누가 지난밤의 꿈 내용에 그토록 집착하겠는가. 꿈의 의미도 결국 자기 자신의 사고체계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매개일 뿐이어야 함을 여기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김계유/주역으로 보는 세상/http://blog.daum.net/munsuan/1164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