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박사
2017-09-30 08:02:58조회수 : 1,830
신년운세, 독이냐 거름이냐 비행기로 축지법을 구사하는 현대인을 위한 신 점집 매뉴얼 사주명리집도 신점집도 “물정 맞게 해석하면 인생의 일기예보"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sohee@hani.co.kr
회사 동료 김수현 기자와 신년운세를 보러 갔다(사주 보고 궁합 맞춰볼 짝이 없어서 둘이 같이 간 건 결코 아니다. 취재를 위해서다. 흠흠). 두 군데를 순례했다. 한 곳은 요즘 각광받는 사주명리를 보는 집이었고, 다른 한 곳은 전통적인 신점을 치는 곳이었다. 새해에는 우리 둘 다 무탈하다고 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부쩍 들볶였는데새해부터는 오랜만에 편한 시간을 보내고 김수현은 10대 후반부터 이짓 저짓 하며 쌓아온 뜻을 마침내 펼치기 시작한단다. 다만 둘 다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고 나왔다. 타고난 기운은 많지만 그 이상으로 많이 쓰기 때문이란다.
사주를 보니, 나는 돈을 잘 번다고 나왔고 김수현은 똑똑하다고 나왔다. 우리는 아주 다른 성격이었는데 김수현이 ‘꼼꼼하다’면 나는 ‘잘 지른다’. 그런 탓에 나는 돈이든 기운이든 뭉텅뭉텅 퍼주고 살 위험이 있고 김수현은 요모조모 재느라 피곤을 자초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동업을 하면 안 되고, 김수현은 너무 따지면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 둘의 ‘궁합’도 자연스레 나왔다. 나이나 근무연차나 내가 언니지만 실제 ‘대장’ 노릇을 하는 이는 김수현이란다(맞다. 말 많고 설치는 쪽은 나지만 중요한 결정은 주로 김수현이 한다). 대신 나는 김수현에게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주지는 않아도 돈 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흐뭇하다. 게다가 내 돈 드는 것도 아니니 다행이다). 그래서 둘이 ‘상호보완적’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부모·자식, 친구, 동료 사이에서도 상생하는 관계가 있고 뜯고 할퀴는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주상 아무리 나쁜 관계라도 좋은 게 하나쯤은 있다고 한다. 좋은 점을 최대한 가꾸고 살리면 다른 나쁜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단다.
운세 본 두 기자, 위로를 얻다
회사에 돌아오니 동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아무 관심 없는 사람, 큰 관심 보이는 사람, 자기 혼자 살짝 가보겠다는 사람, ‘야 다 같이 가보자’ 하는 사람,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질문하는 사람, ‘그래서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결론부터 묻는 사람… 평소 성격대로다. 김수현과 나의 태도도 달랐다. 내가 “난 남자랑 이별수가 있어서 그동안 액땜했던 거래” 하며 속없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동안 김수현은 인터넷으로 ‘만세력 입력기’를 찾아내 네이버 검색과 사주 기본서를 잡고 혼자 더 해석해보겠다고 용을 썼다.
해가 바뀌는 이맘때면 점집과 철학관의 문턱이 닳는다. 진로 때문에, 연애 때문에,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주제도 다양하다. 방식도 제각각이다. 사주를 보기도 하고, 신점을 치기도 한다. 타로점이나 별자리 운세를 짚기도 한다. 그러나 불변의 공통점은 내 운명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매개자’를 통해서 확인받고 싶어한다. 대체로 자기 마음속에 이미 답을 갖고 있지만, 겁도 나고 믿음도 안 서기 때문이다. 실제 평소 점을 잘 보지 않는 나와 김수현이 ‘건진 건’ 일종의 ‘위로’와 ‘충고’였다. 아, 그래서 내가 고단했구나. 이런저런 걸 조심해야겠구나. 그렇게 하면 새해에는 잘 풀린다는 거구나….
실제 점을 보는 사람들은 ‘재미’로도 보지만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거나 삶에 대한 ‘위로’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운수를 봐주는 사람들은 자신을 ‘카운셀러’라고 얘기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점집과 철학관에 들어와 한바탕 눈물바람을 하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월간 <코스모폴리탄>이 2005년 11월 20∼30대 여성 3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7%의 여성이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언제 점을 보는지 물었더니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42%), ‘일상이 지루할 때’(38%)가 가장 많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13%에 불과했다.
고리타분한 해석은 오히려 ‘독’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전국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운명 알리미’가 활동 중이고 점집과 철학관에 한 해 2조원가량(2005년 기준)의 돈이 흘러가는 이유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개인의 삶에도 ‘불확실한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20∼30대 층일수록 직장 등 진로 걱정이 제일 많다. 헤드헌팅 포털업체 커리어센터(www.careercenter.co.kr)가 2004년 9월 남녀 직장인 6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가량의 직장인(49.8%)이 이직 등의 직장 진로 문제를 점집에서 상담한다고 한다. 여성은 56.2%, 남성은 43.6%로 여성 쪽이 더 많이 찾는 것으로 나왔다. 이들이 많이 하는 질문은 △언제 이직을 하면 좋을까(84.7%)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으로 △언제 직급과 연봉이 오를까(6.8%) △ㄱ사와 ㄴ사 중 어느 회사에 가면 좋을까(3.6%) △우리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2.8%) 등이었다.
장철학 최장재희 원장은 “내 단골 고객인 여성들 가운데 용하다는 할아버지 점쟁이를 만나러 갔다가 ‘속이 터져서 돌아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봐주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또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해석은 자칫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직장인 김원정(31)씨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엄마처럼 남자친구를 돌봐온 큰누나의 염려로 계속 결혼을 미루고 있다. 이유인즉, “둘 다 돈복 일복 자식복도 타고났지만, 여자가 기가 세서 남자를 누른다”는 것이었다. 전문직인 김씨는 당연히 봉건시대 기준으로 보면 ‘남자를 누를 팔자’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 없던 팔자도 피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자 큰누나는 “‘여자가 남자를 잡아먹는 수가 있다’고 얘기하는 곳도 있었다”면서 몇 군데의 점집을 발품 팔아 계속 헤매고 다녔다. 그런 뒤 새로운 이유를 들이댔다. “한쪽에 이별수가 있다는데, 무리해서 결혼하면 다치거나 헤어지는 불상사가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10년 넘게 ‘주말부부’로 오순도순 지내는 선배도 봤고, 해외로 유학 떠나 몇 년씩 헤어져 지내는 커플도 봤다. 또 같이 살아도 현대화된 삶의 양식 속에 둘이 너무 바쁘면 그것 역시 ‘이별수’라는 해석도 있다. 둘이 좋아 정성껏 살아보기도 전에 ‘초치는’ 얘기를 들으니 김씨의 마음은 영 불편하다. 큰누나가 유독 부정적인 것 한 가지에 매달려서 여러 사람 마음고생시키기 때문이다.
신점을 치는 ‘송파 김선생’은 “사주에 자식이 줄줄이 있어도 여러 이유로 애를 둘 이상 안 낳는 시대이고, 자식을 갖기 어려워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애를 낳을 수 있는 세상이니, 곧이곧대로 사주에 따라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하고 체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충고한다. 예를 들어 서울 노원구에 사는 자식이 부모를 일본으로 여행 보내드리느라 인천공항에 배웅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일본에 도착했다는 부모의 전화를 받으면, 이는 곧 ‘현대판 축지법’이라는 것이다. 과거 삼재라는 것도 전쟁이 나서 무기로 인해 재난을 겪거나(도병재),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리거나(역려재), 기근이 걸려 굶어죽는 것(기근재) 등을 뜻했지만 현대적인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 또 진로나 직장 문제로 속앓이하는 젊은 여성에게 백날 ‘이런저런 남편감 만나면 팔자 핀다’는 얘길 해봤자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점집에서 말하는 ‘이런 점집 조심하라’
그렇다면 대체 어떤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우선은 다 같은 ‘운명 알리미’라도 가려봐야 할 사람이 있다. 송파 김선생은 “점을 봐주는 사람도 사람인 이상 저마다 한계가 있으니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김선생은 다섯 가지 경계할 점을 귀띔한다.
① 확언을 믿지 마라: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일도양단식 언사는 솔깃하지만 약보다는 독이 된다. 한창 자라는 아이에게 “똥물에 뒹굴 상”이라거나 가까스로 전셋집 마련한 사람에게 “지금 사는 곳을 떠나면 성공한다”거나 갓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산에서 도 닦아야 풀린다”는 말도 안 되는 극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 계속 겁만 주면 “예” 하고 당장 점집을 나와버리는 게 좋다.
② 신당이 화려한 데 넘어가지 마라: 부처님 신령님 줄줄이 모셔놓고 금붙이로 화려하게 장식해놓은 신당에 앉아 요상하게 차려입고서 신점을 쳐주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없어 그런 ‘후광’에 기대는 것이라 보면 된다. 신이 내렸다 하면 대체로 조상신인데 부처님과 신령님이 무슨 상관이랴. 괜히 그런 곳에 찾아가서 무서움 타고 주눅 들면 있던 기운도 빼앗긴다.
③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아기 신이 내렸다고 사탕 쪽쪽 빨고 앉아 있는 점쟁이도 있는데 아기가 세상 물정을 얼마나 알겠는가. 또 과거의 장군인들, 임금님인들, 요즘 세상사를 이해할 수 있나. 점은 서로 대화를 통해 보는 이와 보러 온 이가 지혜를 나눠갖는 일이다. 고리타분하거나 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면 아무리 용해도 내 삶의 ‘길잡이’가 돼줄 수 없다.
④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건 없다: 타고난 사주는 정해져 있지만 어떤 운이 들고 나느냐, 그걸 어떻게 소화하느냐,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은 바뀐다. 똑같은 사주라도 어떤 교육을 받고 교류하고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사주를 보고 신점에 기대는 것은 자기 성격, 건강, 직업, 가정의 특징을 파악해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서다.
⑤ 부적이나 굿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라: 특별히 아프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참고자료’로 1년에 한 번 정도 신수를 보는 게 맞춤하다. 별 탈 없으면 모르고 지내도 상관없다. 지나치게 비싼 부적을 남발하거나 굿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얼마짜리를 얼마로 깎아주겠다거나, 자주 와서 지도편달을 받으라는 요구에 따르지 말라. 그러다 패가망신한다.
“사주가 자동차라면 운은 고속도로”
대체 사주는 어디까지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것일까? 사주가 뭘까. 사주명리학자 이정호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 게놈지도의 출현으로 사람의 기질과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시대가 됐지만 이것 역시 네 가지 염기 배열에 대한 분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주도 연·월·일·시를 분석하는 학문인데, 대대로 내려오는 우주의 분석 틀을 사람에게 적용해 성격과 건강, 운의 흐름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주는 네 기둥 위아래 있는 여덟 글자의 배합으로 타고난 기질을 읽는 것이고, 명리는 그 결과 개인을 둘러싼 삶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흔히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말은 네 기둥 위아래 여덟 글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결정론적으로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 그래서 최장재희 원장은 “사주팔자가 아니라 여기에 마음을 더해 사주 구자라고 하는 게 옳다”고 얘기한다. 최장 원장은 또 “사주가 자동차라면 운은 고속도로이고, 살아가면서 바뀌는 무슨무슨 해(년)는 일종의 휴게소”라고도 덧붙인다. 같은 사주라도 나에게 들고 나는 운이 어떤 것인지, 그걸 어떻게 잡는지 혹은 잘 보내는지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다. 벤츠 타고 시골길 달리는 것보다 티코 타고 고속도로 달리는 게 훨씬 편할 수 있고, 쾌적한 휴게소를 만나 잘 쉬거나 기운을 보충하면 여행이 훨씬 즐거운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사주보다는 관상, 관상보다는 심성”(송파 김선생)이라고 말한다. 타고난 사주가 있어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고, 얼굴은 곧 마음에 기대어 바뀌기 때문이다. 꼭 점쟁이가 아니라 오래 살아와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인생 내공’ 깊은 어르신들이 늘상 하는 얘기도 이렇다.
그렇다면 타고난 사주는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바꿀 수는 없지만 극복하고 이겨낼 수는 있다. 혹은 예방하고 여파를 줄일 수는 있다.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것은 일종의 ‘일기예보’를 듣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똑같은 비가 와도 폭삭 젖어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 우산을 잘 챙긴 덕에 잘 피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비가 그친 뒤 길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바람이 불어도 땡볕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비와 바람과 땡볕은 땅을 비옥하게 해주기도 한다. 내가 내 사주를, 내 운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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