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찻잎 점
인간은 일이 잘 풀릴 때보다는, 일이 안 풀릴 때 점을 치기 마련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번에 열린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신호를 기다리고 찻잎을 읽는 데 지쳤다’는 은유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보도가 되었다.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찻잎을 읽는다’는 것은 ‘찻잎 점’을 의미한다. 서양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잔에 남은 찻잎 모양을 보고 앞일을 점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게 바로 찻잎 점이다.
터키에 가니까 ‘커피 점’이라는 게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에 커피 잔에 남은 얼룩의 형태를 보고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를 알려주는 점이었다. 의상이나 음식과 마찬가지로 점(占)도 역시 그 나라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엽전 몇 개를 던지거나 좁쌀을 이용해서 점을 치곤 하였다. 모양은 둥글고 가운데는 네모진 구멍이 나 있는 상평통보(常平通寶) 같은 엽전 3~5개를 상 위에 던져서, 그 흩어지는 형태를 보고 앞일을 예측한다. 2개의 엽전이 겹치거나 아니면 서로 멀리 떨어지는 정도에 따라 점괘가 달리 나타난다.
좁쌀도 마찬가지이다. 점쟁이가 주문을 외우고 나서 쌀을 점상(占床) 위에 뿌린 다음에, 그 모양을 보고 앞일을 예측한다. 촛불 점이라는 것도 있다. 초에 불을 켠 다음에 촛농이 초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은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흘러내린 촛농의 모양이 어떤가를 보고 점을 치는 것이 촛불 점이다. 담배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점을 칠 때 담배를 피워서 내뿜는 연기의 모양을 본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사진 점도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물 속에 집어넣는다.
주로 밥사발에다 물을 받아서 거기에 의뢰인의 증명사진이나, 또는 얼굴이 나온 가족사진을 집어넣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물에 그 사람의 전생이 비친다고 한다. 적중도는 물론 혹중(或中:어떤 때는 적중하고), 혹부중(或不中:어떤 때는 적중하지 않음)이다. 보통 사람은 찻잎이나 커피의 얼룩, 좁쌀, 엽전,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단지 좁쌀이고 엽전일 뿐이다. 찻잎 점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