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역학이야기

신용호와 교보빌딩

바른생활 | 2017-11-09 09: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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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신용호와 교보빌딩
 

이 세상 구경거리 중에서 가장 볼만한 구경은 사람구경이다. ‘동물의 왕국’보다 훨씬 재미있는 프로가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마주 앉은 사람의 관상을 찬찬히 뜯어보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재벌기업 총수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가장 흥미롭다. 어떤 신언서판을 지닌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인가에 대한 실전사례이기 때문이다. 대산(大山) 신용호(愼鏞虎:1917~2003). 그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교보생명, 교보빌딩, 교보문고를 창업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2002년 여름. 타계하기 1년 전인 85세 때였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순간적으로 금(金) 체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금 기운을 많이 타고난 사람은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사무라이들이다. 분명한 성격이다. 칼을 뽑으면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깎는다.
아니나 다를까 생년월시를 물어보니 신미(辛未)일(日), 경인(庚寅)시(時)에 태어났다. 신(辛)은 회칼이고, 경(庚)은 도끼를 상징한다. 이른바 ‘쌍칼사주’이다. 쌍칼을 든 검객과 이야기할 때는 서론을 생략하고 단도직입하는 것이 효과적인 화법이다. 그가 종로1번지에 교보빌딩을 지은 시기는 1979년. 22층 철골구조물이 이미 완성되었는데 청와대 경호실에서 갑자기 중지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경호실장은 차지철. 22층의 높은 건물은 청와대 보안에 위협이 되니까, 17층 이상은 잘라 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17층 이상을 허문다는 것은 다 지은 건물을 부수라는 이야기와 똑같았다. 대산이 한 달간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은 할복이었다. ‘결국 건물을 잘라야 한다면 그 대신에 제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배를 자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박통’에게 보냈던 것이다.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울 때도 반대가 극심하였다. 금싸라기 땅에 돈도 되지 않는 서점을 왜 세우느냐, 사무실로 임대를 내놓으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회사 임원진의 주장이었다. 서점에 비해 사무실로 임대를 내놓으면 3~4배의 수익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책에 한이 맺혔던 대산은 그래도 서점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 결단력이야말로 요즘 회자되는 ‘기업가정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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