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형제-비견(比肩)과 겁재(劫財)
유산분배 문제 때문에 발생한 형제간의 엽총난사 사건을 보면서, 돈과 형제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명리학에서는 형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따로 있다. ‘비견’(比肩)과 ‘겁재’(劫財)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비견은 ‘어깨를 나란히 한다’이고, 겁재는 ‘재물을 겁탈한다’로 풀이한다. 본인이 신약(身弱)일 때는 형제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도와주는 관계가 되지만, 신강(身强)일 때는 형제가 ‘재물을 겁탈해가는’ 라이벌 내지는 원수의 관계로 변한다.
신약인가, 신강인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여러 집안을 관찰해 보니까 가난한 집안의 형제들은 서로 의지하는 비견의 관계가 되지만, 돈이 많은 집안의 형제들은 겁재의 관계가 되기 쉽다. 문제는 돈이다. 불행하게도 이번의 엽총참극은 형제간의 관계가 겁재의 관계로 전락한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비견의 관계도 있다. 김제 서도리(西道里)의 장석보(張錫輔:1783~1844) 집안은 형제가 힘을 합쳐 재산을 모은 경우이다.
장석보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고, 이 네 아들이 재산을 모은 방법이 독특하였다. 매년 농사를 지을 때 로테이션으로 한 집씩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작년에 큰형 집의 농사를 나머지 세 동생이 집중 지원하였다면, 올해는 둘째의 집 농사에 나머지 세 형제가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노동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중한 결과 자본 축적에 가속도가 붙어 재산이 급증하였다. 이는 형제간의 철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방법이다. 한 명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끝이다.
그 신뢰의 밑바탕에는 어머니인 남양홍씨의 가르침이 크게 작용하였다. 남양홍씨가 네 며느리들에게 형제간에 신뢰를 지키면서 살도록 당부하는 문건을 남겼던 것이다. 1840년에 작성된 이 문건은 장씨 집안의 가보로 내려왔다. 4형제는 다시 8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8명의 손자들에게도 이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서 1900년 무렵에는 후손 30여가구가 모두 천석꾼이 되었다. 일제 때 중앙고보 설립과 ‘조선어학회’의 재정후원자였던 장현식(張鉉植:1896~납북)이 바로 이 집안 후손이었다. 비견인가, 겁재인가는 가풍도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