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입선(捨敎入禪))
중국 복주 교령사에 신찬선사(神贊禪師)가 있었다. 어려서 은사를 따라 경전공부를 어느 정도 마치고 어디론가 훌훌히 떠나 잠적했었다. 이윽고 10년 만에 헌 누더기의 옷을 걸치고 은사를 찾았을 때 은사는 여전히 경전만 읽고 있었다. 어느 봄날 선찬 선사는 은사 스님을 모시고 방에서 문을 열어놓은 채 앉아있었다. 그때 벌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요란스럽게 날아다니다가 문창에 탁탁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신찬 선사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는다.(한문생략)
열어 놓은 창으로는 나가지 않고
창에 머리를 부딪치니 어리석다마다
평생을 고지(古紙)를 뚫은 들
어느 때 밖으로 나가리오
이 시는 벌의 우둔함을 노래한 것이지만, 사실은 스승의 우둔함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게송이었다. 십년 백년 책만 본다 한들 깨치겠느냐. 아무리 책을 보아도 저 벌이 창을 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제 책 그만보고 기도와 선(禪)을 할 시기가 되었다는 충고다.
대체적으로 머리 좋은 사람들은 영기, 즉 직관력이 부족한 수가 많다. 분석적이기 때문이다. 매사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영기가 쇠퇴한다. 마치 모래시계의 양면과 같아서 논리가 강하면 반대쪽인 직관 쪽은 기능이 퇴화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직관이 강하면 논리가 약해진다. 산에서 ‘기도발’이 잘 받는 사람은 성격이 단순해서 깐깐하게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쉽게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인다. 반대로 대학에서 논문 많이 쓰는 교수들은 논리적이긴 한데 시원하게 터진 맛이 없다. 물증만 중시하고 심증은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기도만 많이 하고 학문을 하지 않으면 부황해지기 쉽고, 반대로 학문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성품이 속되게 변한다. 그래서 조선중기 서산대사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강조 하였다. 학문을 어느 정도 연마했으면 마지막에는 이를 버리고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라는 말이다. 세간에서 한몫 챙겨 산으로 튀는 사람이 도사이다.
조용헌 교수, 사주명리학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