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학통과 전래
역학의 사상과 원리는 고대 단군시대 이래로 우리나라(동이족)의 사상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한역이라고 하는 역이 상고시대 때 동이족에 존재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중국에서 체계화된 주역보다 훨씬 앞선 연대로, 역의 사상과 이치가 동이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고대사의 실증적 연구는 그 자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이므로, 현재 우리나라의 역학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중국 역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 주역의 학통에 있어서 맥을 형성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들의 문헌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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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후한대, 127-200): 주역주
왕필(위진대, 226-249): 주역주
소강절(송대, 1011-1077): 황극경세(술부)
주돈이(송대, 1017-1073): 태극도설
정자(송대, 1033-1107): 이천역전(정전)
주자(송대, 1130-1200); 주역본위(원본, 별본), 역학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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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주역이 전래된 시기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대략 삼국시대 초기 이후로 여겨진다. 이에 관한 문헌을 보면 삼국사기는 '신라의국학에서 주역을 강의하였다.(주석: '교수지법 이주역상모시...'(삼국사기 권38 지7)'고 하고 고려사에도 '김부식으로 하여금 주역 건괘를 강의하도록 하였다.(주석: 김부식 강역건괘...(고려사 권14 용종)'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고려사열전에 의하면 '우탁(1263-1342)이 역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생도들에게 이를 전수하니 이학이 비로소 행해졌다.(주석: '탁통경사 우심어학이...' (고려사열전, 권22 우탁조)고 한다.
성리학으로서의 주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고려말에 우탁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가져오게 된데 연유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우탁의 다른 이름은 '우역동' 혹은 '오역동'이라 물리기도 한다. 그 후 권양촌(1352-1409, '입학도설', '주역천견록'), 유진일제(1452-1512 '칠서언해':언해의 효시임), 서화택(1489-1563, '이기설' '태허설'), 이퇴계(1501-1570, '계몽전의' '성학십도'),
이율곡(1536-1584, '천도책' '역수책'), 장려헌(1554-1637, '역학도설' '역괘총설'), 정다산(1762-1836, '주역사전' '역학서언'), 이야산(1889-1958, '선후천고정설' '강원력')선생 등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역학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주역의 현토(한문의 구절 끝에 붙여 읽는 우리말)는 유숭조(진일제)선생이 구결로 달고, 율곡선생이 참정하였다고 한다.
블로그 /소울스테이션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