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태극과 음양]
주역은 ‘주(周)나라의 역(易)’을 가리키지만 천체(天體) 공간을 운행하는 일월의 시간적 교대를 의미하기도 한다.4) 그 토대는 복희씨가 그린 선천팔괘(先天八卦)와 문왕이 팔괘를 재배치한 후천팔괘(後天八卦)인데, 음양과 오행의 측면에서 시간의 변동과 주기적인 흐름을 각기 표현하고 있다.
선천팔괘 방위도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즉 한번은 靜하여 음이 되고 한번은 動하여 양이 되는 이치로서 음이 줄어들면 양이 늘어나고 양이 줄어들면 음이 늘어나는 음양의 소장(消長)을 나타낸다.5)
상대적 음양관계를 보이는 선천팔괘 방위도와 달리 후천팔괘 방위도에는 음양에 의해서 생성된 오행작용 즉 오행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유행(流行)하는 이치를 보여준다.6)
주역은 8괘[소성괘]를 중첩하여 여섯 효(爻)의 자리를 이룬 64괘[대성괘]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성괘의 육위(六位: 初位 二位 三位 四位 五位 上位)에 의해 상하사방의 六合 공간과 12時의 운행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를 육위시성(六位時成)이라고 하며, 이 육위에 음효와 양효가 왕래승강함에 따라서 12시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시간적 주기(週期)가 생성전개된다.7)
이러한 시간의 전개과정은 연속적으로 쌓여 나아간다. 즉 12시가 모여서 하루, 30일이 모여서 한달, 12월이 모여서 한해, 30해가 모여서 한 세대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시간의 주기를 선천과 후천으로 대별하여, 대개 봄과 여름의 과정을 선천이라 하고 가을과 겨울의 과정을 후천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엄밀히 살피면 하루의 오전(午前) 과정은 선천이고 오후(午後) 과정은 후천에 속하며, 한해의 동지(冬至)로부터 하지(夏至) 직전까지는 선천이고 하지로부터 동지 직전까지는 후천이 된다.
주역에 내재된 시간적 전개원리를 극명하게 연구하고 후세에 전한 이는 宋의 소강절(邵康節) 선생이다. 그는 「황극경세도(皇極經世圖)」를 그려서 1歲 12月 360日 4320辰의 이치를 1元 12會 360運 4320世로 대연(大衍: 크게 펼침)하여 천도의 운행을 설명하였는데, 30歲가 쌓여 1世를 이루고 12世가 쌓여 1運(360歲)을 이루고 다시 30運이 쌓여 1會(10800歲)를 이루고 12會가 쌓여 1元(129600歲)을 이룬다고 하였다. 대개 주역에서 말하는 선천과 후천은 이 1元을 지칭한다.8)
천도운행을 나눔에 있어서는 이분법과 삼분법이 있다. 이분법이란 천도를 양분하여 자정[동지]과 정오[하지]를 기점으로 해서 오전과 오후를 가르는 방법을 말하는 반면 삼분법이란 인사를 중시하여 세갈래로 나누는 방법을 이른다. 즉 하루로는 새벽인 寅時半 무렵에 만물이 문을 열고나오며 늦저녁인 戌時半 무렵에 만물이 문을 닫고쉬며, 한해로는 이른 봄에 해당하는 寅月半(雨水절기 전후) 부터 만물이 해동(解凍)되고 늦가을에 해당하는 戌月半(霜降절기 전후) 부터는 만물이 조락(凋落)한다.
소강절 선생은 寅會半으로부터 戌會半 직전까지의 86400歲를 만물이 활동하는 개물기(開物期)이고 戌半으로부터 다시 寅半 직전까지의 43200歲를 만물이 휴식하는 폐장기(閉藏期)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인사적으로는 寅會半에서 午會半 직전, 午會半에서 戌會半 직전, 戌會半에서 다시 寅會半까지의 기간이 각기 43200歲를 이루게 된다.9)
1) 출전(出典): 주역을 체계적으로 종합정리하기 위해서 공자는 주역의 도가 시방(十方)으로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날개 역할을 하는 열가지 해설전 즉 십익(十翼)을 찬술하였다고 전한다. 태극(太極)이라는 용어는 십익 가운데 하나인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역유태극(易有太極)’이라는 문구에서 처음 나온다. 이 태극이 양의(兩儀: 즉 음양)를 낳고 사상(四象: 태양 태음 소양 소음)과 팔괘(八卦: 건태리진손감간곤)를 계속 낳음으로써 길흉(吉凶)이 정해지며, 나아가 대업(大業)을 낳는다고 공자는 말씀하였다.
2) 宋의 역학자인 주렴계(周濂溪) 선생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정의하였는데, 대개 일체만유를 주재하는 한가지 근원이라는 측면에서는 태극으로 표명하지만 태극에 내포된 무한무궁한 시공의 측면을 강조할 때에는 무극(無極)이라 지칭한다.
3) 우리나라 천부경(天符經)의 ‘일묘연만왕만래(一妙衍萬往萬來)’, 불교 법성게(法性偈)의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과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등과도 같다.
4) ‘두루 주(周)’와 ‘바꿀 역(易)’은 공간적인 바깥 테두리[둘레]와 시간적인 일월의 교대운행을 나타낸다. 주역 64괘(卦)의 머릿괘로써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를 놓고, 60번째 괘에 수택절(水澤節)을 두어서 60간지(干支)로써 천지도수의 절용(節用)을 설명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고대 동양사회에서는 해는 양의 정화이고 달은 음의 정화로 보았으며, 역법(曆法) 또한 달과 해의 운행주기를 조화시킨 태음태양력(달력)을 썼다. 달력을 태음태양력이라 일컬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주역 속에는 태극의 음양조화에 따른 시간적 관념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5) 주역에서는 양이 늘어나는 오전[선천]의 과정을 ‘변(變)’이라 하고 음이 늘어나는 오후[후천]의 과정을 ‘화(化)’라고 한다.
6) 춘하추동 사시(四時]의 운행변화 속에는 오왕(五旺)의 절기 즉 木旺한 봄철, 火旺한 여름철, 金旺한 가을철, 水旺한 겨울철, 그리고 사철을 중재조절하는 土旺이 있다. 오행이 생성되는 과정은 수화목금토라고 이르지만, 생성 이후 서로 生하는 과정은 목화토금수(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로 일컫는다.
7) 12시: 한밤중 또는 동지에 해당하는 子는 음들 밑에서 처음 양 하나가 생겨 꿈틀대는 때이고 丑은 양이 둘로, 寅은 양이 셋으로, 卯는 양이 넷으로, 辰은 양이 다섯으로, 巳는 마침내 양이 여섯으로 꽉찬 때를 말한다. 양이 극성한 뒤에는 다시 음이 자라기 시작하게 되는데, 한낮 또는 하지에 해당하는 午는 처음 음 하나가 양들 밑에 생기기 시작하는 때이고 未는 음이 둘로, 申은 음이 셋으로, 酉는 음이 넷으로 戌은 음이 다섯으로, 亥는 마침내 음이 여섯으로 꽉찬 때를 말한다. 이 열두가지를 12지지(地支)라고도 일컫는다.
8) 元(129600歲)의 주기가 다하면 다시 또 새로운 주기의 元이 시작되어 종즉유시(終則有始)하게 된다. 주역의 괘로써 살피면 이미 지나간 과거를 수화기제(水火旣濟)로 표명하고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를 화수미제(火水未濟)로 지칭하는데, 주역의 마지막 괘에다 화수미제(火水未濟)를 둔 것은 우주시공의 세계가 종말로써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미완성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인생살이 또한 영원한 미완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9) 경세도에서는 자회초부터 사회말까지가 선천을 나타내고 오회초부터 해회말까지가 후천을 나타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子半에 해당하는 子正을 전후로 하루의 終始가 나뉘고 午半에 해당하는 正午에 기준하여 오전과 오후가 대별되므로, 시간의 전후(선후)를 재는 기본척도(經)는 子午의 半이다. 따라서 천도의 1元 주기를 정확하게 반분하면 자회반부터 오회반 직전까지 선천(6會: 64,800歲)이고 오회반부터 자회반 직전까지 후천(6會: 64,800歲)이다. 즉 황극 64,800년(자회초-사회말)에서 5,400년(午會초에서 午會半직전)이 더 지난 황극 70,200년 다음해(70,201년)부터 경세상으로 후천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강절 선생은 요(堯) 임금이 등극한 해를 경세도의 연표(年表)의 척도를 세웠는데, 올 경진년(서기 2,000년)은 황극 69,017년에 해당한다. 경세년표상으로는 후천까지 아직 1184년이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대연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