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을 모르는 자는 군자가 아니다 (공자)
숙명 및 운명이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에 대하여 논자간에 이론이 많다 이
논쟁은 필경 숙명 및 운명의 정체가 뭣이냐에 귀착할 것이다
철학상의 숙명 및 운명의 정의는 뭣이든간에, 사주추명학상의 숙명 및 운명의
정의는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오행의 생극, 왕성, 휴수, 제화 등의 법칙에 의하여 유도되는 예언적인 인간의
길흉화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절대적 숙명은 가정할 필요도
없으며, 신만이 알고 좌우할 수 있는 숙명은 사주추명학과 같이 현실적인
방술에는 유도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주추명학상의 법칙에 의하여 유도되는 운명 및 숙명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이에 대하여 일본의 사주가 (다가기죠)는 그의 저서 (사주추명학)에서
(인간의 운명이란 전혀 그 사람의 출생년월일 여하에 의하는 것으로 우리
운명가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히 예약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그는
(어린아이가 자라나는데 있어 그 부모가 양육해주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양육당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생장하느냐, 아니하느냐의 예정적 법칙에
의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십칠세의 장남과, 대학졸업 직전의 차남을 잃고, 비탄과 번민 속에서 헤매다가
십여년간의 신문기자 생활마저 청산하고 운명학에 몰두한 그는 운명을 절대적
숙명으로 보고 인간생활의 일체를 사주추명학에 의하여 설명, 해석하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엄연히 예정된 것이라고 체념한다
과연 이와 같은 절대적 운명론이 타당할까?
생각하건대 이와 같은 절대론이 진실이라면 우리 인간은 운명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자기의 숙명 및 운명이 여하한 것인지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생활의 일체가 모두 숙명에 의하여 지배된다면
숙명에 대한 연구자체가 전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되는 까닭이다 즉 어떤
사람에게 요절한다는 숙명적 암시가 있을 때 이것이 절대적이라면 여떠한 섭생,
치료도 전혀 그효과가 없을 것이므로, 일체의 희망과 노력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갈 것이다 또 입신출세의 숙명적 암시가 있는 사람은 그것이 여하한
경우에도 절대적 사실로 나타난다면 그 사람에게는 노력 및 고심은 고사하고
때가 올 때까지 누어서 낮잠을 자거나 극단적으로 범죄를 해도 좋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으로부터 일체의 노력과 향상심을 빼앗고, 나아가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절대적 숙명론에는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
절대론자는 우리 인간이 그것을 원하든 아니하든 또 인간에게 유익하든
무익하든지간에 숙명이 절대적 사실로 나타나는 이상,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인간의 정신적 구제는 종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주추명학의 제법칙에 의하여 유도되는 숙병적 암시가 대개 사실로 나타나는
것은 저자도 부인하지 아니하나, 그것이 절대적이라고는 생각치 아니하며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변경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 인간은 출생시 어떤 우연에 의하여-적어도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는
알지도 못하고 따라서 그것을 좌우할 수도 없는 사정 속에서-남녀의 성별은 물론
빈부, 강약, 현우등 선천적 조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이 선천적
여러 가지 조건은 사람의 장래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출생 후의
추이에 따라서는 출생시의 조건을 배제 및 변경하여 빈천을 부귀로, 병약을
건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사주추명학의 제법칙에 의하여 유도되는 숙명 및
운명도 이 선천적 조건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데, 이것이 사람의 전생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망정 전혀 변경 및 전환 못시킬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숙명)도 출생시 정하여진 천명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출생시 주어진 숙명적
암시 내지 하나의 경향으로 볼 것이다
이와 같이 숙명을 하나의 숙명적 암시 내지 유인력으로 본다면 이에 대처할
방책은 저절로 생겨난다 즉 흉의 유인이 있으면 그 유인력보다 더 큰 힘 및
노력으로 그 흉을 없애고 일보 전진하여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일의 종류와 때의 여하에 의하여 여러 가지가 강구될 것이다
가령 병약하여 단명의 숙명이 있으면 그 사람은 우선 건강에 주의하여 섭생 및 운동에 유의하면
될 것이고, 숙명적으로 과부운을 타고난 여성은 무엇보다도 인정있고 온순한
남편을 택하여 성심껏 봉사하여 가정의 화목에 유의하면 될 것이다
모관상가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말을 하고 있다 (간문이 좋지 아니하면
부부궁이 나쁜데 소위 구시대의 인습속에 살아 왔다고 볼 수 있는 중년부인들은
어지간이 간문이 나뻐도 이혼까지는 아니한 여성이 대부분인데, 신사조에
젖었다고 볼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은 간문이 좀 나뻐도 대개 이혼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나도 사주감정을 통해 체험한 바 있는데, 이것은 숙명이
하나의 유인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경험을 존중하고 체험을 귀중히 여긴다 경험과 체험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 차질, 오산등 쓴 경험을 살려 장래의
선도에 유용하는데 처음으로 그 보람이 있는 것이다 사주추명학은 이와 같은
경험의 선용에 앞서, 실패, 차질, 오산등이 일어나기 전에 이를 미리 찰지하여
그 유인력을 저지하고 이를 선으로 전환시키는데 그 가치와 진가가 있는 것이다
또 여기에 우리 운명가의 참다운 사명이 있을 것이다
공자는 자기 명을 모르는 자는 군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인간들이
천명을 알고 분수를 지켜서 안심입명할 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부운 같은 욕망을 좇아 분마처럼 한 평생을 보내어, 나라에 패익하는 일 없이
허생낭사하는 것도 모두 자기 분수를 모르는 소치일 것이다 운명학은 비록
소도이나 세도인심을 교화하여 안심입명케 하여, 위로는 국가간에 전쟁을 없애고
밑으로는 개인간에 쟁탈을 없게 하여 각자의 천명과 분수를 지켜서 광명한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유위한 학문이며 또 여기에 그 사명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