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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로 보는 집과 가족묘
좋은생각 2017-09-29 (금) 14:53 조회 : 2246

 
풍수지리로 보는  집과 가족묘

風水地理는 陰宅과 陽宅으로 陰宅은 죽은사람, 陽宅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2가지 모두 언덕위의 그림같은 집으로여기면 될 것이다. 墓는잔디가 자라고, 뱀이나 쥐구멍이 없고, 나무 뿌리가 墓地로 파고들지 않으면 이보다 더 좋은墓는 없다하여 水脈을 보아 물이 고여있지 않으면 옮겨서는 아니되며, 집터는 대문이 동남남남향이면 좋고, 競買당한 집들은 대부분이 서쪽이나 북쪽으로 세입자들이 富者되는 집들이다. 競買당한 집들은 재수가 없다하여 구입하지 않는게 정석이다.
 
墓地 앞에는 물이나 길이 보이지 않아야 좋으며, 道路 옆인 경우는 나무을 심어 道路가 어떤 경우라도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墓地 앞에는 田畓이 있어야 노적봉으로 富者가 되는 것이며, 墓地 앞 몇백미터 앞에는 낮은 山이,멀리 4-6km정도에 높은 山과 山 바로 앞에는 보일락 말락하는 강이 흐르면 가장 좋다, 이 글을 쓴 사람의 家族墓(曾祖父母,祖父母,父母)는 이러한 위치에 있으며, 故鄕집에서 15분이면 도달이 가능하며, 家族墓 주위 150미터 근처에 낚시터 藥水攄 登山路입구 遊園地 公園으로 이 보다 더 좋은 家族墓는 없다 여기며, 용이 나는 勇進山 주위에는 北쪽으로는 백양사와 내장사가, 앞에는 어둥산, 동쪽으로는 무둥산이 있으며, 집터는 光州에서 가장 높은 내장산 무둥산 어둥산 용진산의 한 가운데에 집이 있으며, 집은 3면이 道路에 접해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떼어서 팔아라 하지만 매도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先山과 집터는 가보로 여기고 있으며, 집터는 祖父母님이, 土地는 父母님이 물려주신 土地로 宗中財産으로 하기 위하여 어려운 시기에도 賣渡하지 않고 保有한 財産으로 5녀을 둔 家長으로 養子까지 했으며, 養子는 全南大, 며누리는 000000님이시다. 다 키워서 자식을 주는 경우는 大韓民國서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좋은 집터와 墓을 좋은 위치에 안장했기 때문이라 여기며, 墓는 明堂이라 하면서 全國에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집터는 風水地理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매수하지 못해 안달이다. 陽氣는 都邑地와 群賢, 聚落地을, 陽宅은個人의 집터로 墓地나 집터을 잡을때 風水地理상 같이 사용하며, 陰宅이든 陽宅이든 租山 來龍過峽起 頂과 靑龍 白龍 祖山 案山 羅城 水口등에, 陽宅은 血漿이 넓어야 하고, 陰宅의 경우는 血漿이 좁아야 하며, 陽地는 面이고, 陰地는 線이라한다. 血漿이 넓으면 都邑地, 그 보다 작으면 州邑, 더 작으면 鄕村, 더 작으면 住宅이, 더작으면 務덤인 墓다. 양택은 땅의 生氣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의 형태와 位置.方向을 더 중요하며, 집의 大門.안방. 부엌 등을 陽宅三要訣이다.
 
보유한 집은 광주 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250,251,252번지로 광산구 진곡동 산 15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팔랑산은 진곡마을의 주봉으로 아름다울 휘(徽)자, 진(鎭)자로 충주부사를 지낸 분인데 문장이 뛰어나 영조대왕이 특별히 여겨 여린 손을 잡고 다른 사람은 그 손도 못 만지게 했을 정도였으며, 팔랑산에 정자를 지어놓고 노년을 보내셨으며, 현판을 보면 푸를 창자  뫼 산자  집 재자의 창산재 (蒼山齋)라고 명명하셨다. 팔랑산은 여덟팔자 임금왕자 팔왕산(八王山)이 아니라 푸르다 해서 파랑산이 되었다. 팔왕산 옆으로 왕삼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바위가 푸르다 해서 푸를 창자 바위 암자 창암이라 불렀고,  왕삼봉 아래의 마을을 창암이라고 했고, 행정구역상 고룡동 왕삼봉 아래 벽파정의 서북편에 있는 마을을 창암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으며, 근방에서는 왕삼봉에 있는 청암을파라매라 부른다. 파랑산이 팔왕산이 된 것은 왕삼봉의 바위를 부르는 파라매와 왕삼봉에서 한자씩 따서 부르며, 왕삼봉의 정상에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고,왕삼봉 동쪽으로진곡저수지가, 그 옆의 산이 파람산으로 불리고 있고 실제 이름은 팔랑산이다..
 
두정저수지 진곡저수지 진성저수지 연동저수지 신촌저수지등이 있으며, 진곡저수지 옆에 표시 안 된 산이 파람산으로 불리는 산이되겠고 그 옆의 파란산은 파람산보다 훨씬 낮은산이며,  진곡저수지와 두정저수지 연동저수지의삼각점에 표시된 창암마을 뒷산이 팔랑산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왕신봉으로 부르고 있다.  왕삼봉이라고 말한산은지역에서 부르는 왕신봉이, 팔랑산은 왕신봉(121m)으로 진곡저수지 옆에 표시 안 된 낮은 산을 팔랑산(114m)으이다. 지도에 표시가 안 된 산을 팔랑산으로 볼 때 장성군 남면 검정마을과 불정마을 사이의 산을 옥녀봉이라고 하는데, 한임봉은 검정마을 동쪽에 각시봉은 남쪽에 있다.
 
나주목사로 부임을 하던 이서구가 장성 못재에서 쉬는 중에 남쪽 풍경(지금의 장성 남면)을 보더니 "청양산수가 서출동류수"라고 하며 가히 먹고 살 만한 고장이고 건너다 보이는 가마봉에 옥녀의 명당이 있는데 무등산이 보이지 않으면 6대가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했다. 가마봉의 옥녀가 세수동에서 세수하고 치마골에서 옷을 입고 하님과 각시가 옥녀를 모시고 가마를 타고 가는데 팔랑산의 8명의 사내가 쳐다보지도 않으니 옥녀가 그만 무등산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가마를 메고가는 앞에서 소리를 하는 소리생키들이 있는데, 가마봉 남쪽에 치마골 팔랑산 소리생키 하님봉이 있다.
 
팔랑산은 호남정맥 중에서 병풍지맥으로 연결되는 가지를 둘러보면 호남터널에서 시작된 병풍지맥이 옥녀봉( )을 지나 팔랑산(114m)을 거쳐 왕심봉(121m)을 지나 어등산(389m)과 금봉산에서 황룡강으로 이어진다.(팔랑산을 주위하여 자세하게 봄)실제로 병풍지맥은 도장봉→가덕 분기점→백골재→도마산→능재→바심재→용구산→병풍산→대치→병장산→잿막재→불태산→초라치→호남고속도로→판사등산→팔랑산→어등산→황룡강에서 끝이 난다. 임곡면.산막동과 원산막 동쪽에 장성 남면과 파람산의 경계지역에 옥녀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옥녀승계 탈승자 가마 계자 옥녀가 가마를 타고 가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풍수설에 의한다.옥녀가 가마를 타고 갈 때 시중을 드는 (여자가 시집갈 때 여자종을 데리고 감)  여자 종을 손언으로 한임이다.
 
옥녀가 가마를 타고 가면서 좌우에 쌍으로 한임을 세우고 갔다 해서 옥녀봉 옆에 한임봉이 둘이 있게되고, 예쁜 옥녀가 가마를 타고 가니깐 옥녀를 구경하기 위해 여덟 사내가 쳐다본다고 해서 팔왕산을 여덟팔자 사내랑자 팔랑산이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설은 푸르다 해서 파랑산인데 나중에 풍수설에 의해서 팔랑산이 됐거나 왕심봉 파라매와 연관돼서 팔랑산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병풍지맥을 따라 담양 월평의 옥녀단좌형, 삼인산과 병풍산에서도 3혈이 결혈되었고, 남면 옥녀봉에 옥녀단좌형이 결혈되었고 팔랑산에 학비등공형이 결혈되었으며, 어등산에도 비룡심수형이 결혈 되었다.,병풍지맥은 도장봉에서 시작하여 황룡강에 이를 때 까지 많은 결혈이 많아 풍수설을 믿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만 산경표에 따라 우리 산하의 대간과 정맥과 지맥을 찾아서 지나가기는 쉽지 않다.
           
팔랑산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광산i/c에서 또는 국도 1번에서 비아동을 거쳐 816번 지방도로나 하남산단 9번도로 끝에서 816번지방 도로와 다시 만나게 되고 가는 방향은 임곡방향이 된다. 이곳에 폐교된 하남북초등학교가 있고 학교에서 250m를 지나면 오른쪽에 진성저수지가 보이고 100m정도가면 진곡마을이 있고 진곡마을에서 뒤로 보이는 산이 팔랑산이다.진곡마을 못 미쳐 진성마을과 검정마을 안내판이 있는데 씨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약1km정도 들어가면 진곡저수지가 있고 서쪽에 왕신봉이 있고 동쪽의 산이 팔랑산이다.
 
광주 왕동저수지는 본량들 적시는 생명수 왕동저수지는 시민쉼터로도 각광광주 광산구 왕동 용진산 서쪽 왕동저수지(旺洞貯水地)는 높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넓은 못이다. 우리나라지형(地形)을 닮은 호숫가에 아늑한 마을과 전원(田園)이 펼쳐지고 이곳 유명산인 용진산이다. 1928년 수리사업으로 준공된 광주 광산구 왕동저수지는 본량들 200ha의 논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광주 광산구 본량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용진산 방향으로 43번 광역시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왕동저수지가 보인다.가뭄이 들 경우 동네 사람들은 용진산 석봉과 태봉에 올라 제를 지냈으며,이를 '무제'라고 일컫으며, 여자를 제외한 동네사람들이 올라가 제를 지냈다. 제를 지낸 후에는 산 주위의 생솔가지를 모아 불을 놓으면 시커먼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 먹구름이 되도록 했다. 이 검은연기를 따라 비구름이 몰려왔고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고 제를 지낼 당시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삼일안에 꼭 비가 내렸다고 전했다.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을 뒷산의 묘를 팠다는 속설도 전해지고 있다.베스 등 어종이 서식하고 있는 광주 광산구 왕동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즐겨찾는 명소다.
 
용진정사 등 문화유적 풍성하며, 왕동저수지 주변은 용진산 등은 조선시대 개국공신은 물론 한말의병 활동의 본지로도 유명하다. 이 일대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산재해 있다.한말의병들의 전적지로 꼽힌 용진산은 본량과임곡을 나누는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은 산이다. 동굴과 폭포가 있고 조선조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이 전국을두루 돌면서 이산의 빼어난 경치에 빠져서 산사(지금의 용진정사)에서 며칠을 머물고 갔다하니 그윽하고 아름다운풍광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이 산은 일제강점기 때 전국에서도 이름있는 금광이 있다.
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학정(駕鶴亭)가는 길목의 깎아지른 암벽에 새겨진 미소 짖는 자비로운 얼굴의 석가모니여래상도 인상 깊다.
 
소금강(小金剛), 불당일월(佛堂日月), 용진수석(聳珍水石) 등 일필휘지에서 선인들의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용진정사는 용진산 남쪽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후석 오준선이 후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유적이다.중국매화, 치자나무, 벚나무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이 산의 남쪽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조선 말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인 후석 오준선이 국난과 속세를 떠나 후진을 양성했다.기암괴석이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곳은 광산, 나주 출신의 한말 의병들의 근거지로, 면암 최익현과 전해산, 김태원, 오상렬, 오성술 장군등 쟁쟁한 의병장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오준선과 항일전략을 세우고 의논했던 곳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진산(聳珍山)은 산 정상에 있는 뾰족한 암석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모습에서 유래된지명이다. 용진산은 속칭 ‘송곳산’이라 불릴 만큼 먼 데에서 바라볼 경우 흔히 보는 산과는 다르게 산의 꼭대기가매우 뾰족하게 생겼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산의 정상이 뾰족한 암석 덩어리로 이루어져 수천년을 지나면서도 빗물에흙이 흘러내려 정상이 두리뭉실하게 변하지 않고 뽀족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용진산(聳珍山)은 솟을용자와 돌진자의 의미처럼 뾰족한 암석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기 때문에 솟돌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용진산(349m)은 겹겹으로 포개져있는 높은 산으로 그 안에는 동굴과 아름다운 풍광을 짐작할 수 있다.
 
용진산은 기묘한 대비를 이루는 남쪽 석봉(石峰)과 북쪽 흙봉[土峰] 등 2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이어 있다. 용진산주봉의 하나인 석봉(石峰)은 이름 그대로 온산이 큰 바위로 이루어져 그 정상은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지만, 또 하나의 주봉인 토봉(土峰)은 겉으로 보기에는 바위하나 없는 미끈한 흙과 우거지 짙푸른 숲으로 되어있다. 이 두 주봉을 둘러싼 크고 작은 연봉(連峰)들은 흡사 바위에 부딪치는 거센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임곡면 사호동에서시작되어 본량면 내왕산 마을로 끝나는 용진산 일대의 산과 물을 고루 갖춘 빼어난 풍경은 광주시민공원으로 지정되는 등 각광을 받고 있다.  용진산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값진 문화유산이 많은데 여래석불은 4백년의 오랜 역사를간직한 가학정으로 가는 길목에 깍아지른 듯한 높은 암벽에 미소를 짓는 자비로운 얼굴의 석가모니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용진산 북쪽 산허리에 자리한 가학정(駕鶴亭)은 임진왜란때 벼슬도 없이 선조임금을 모시고 북행에 따라가 공을세운 박경에게 선조 임금이 죽림처사(竹林處士)라는 시호와 지팡이를 내리고 나라 돈으로 짓게 한 정자로 황룡강 맑은 물이 정자 밑을 흐르고 그곳에 이르는 길목에는 백년 묵은 노송을 비롯하여 비자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산비장이등 갖가지 잡목이 우거진 푸른 숲을 이루며 곳곳에 층암절벽이 솟아있어 마치 소금강을 방불케 한다. 조선초기 정도전이 산의 자태에 반했다는 이야기,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용진정사에 칩거한 애국지사 후석 오준선과최익현, 전해산 등 쟁쟁한 의병장들의 활약상 등 용진산에 얽힌 일화다. 동학 지도자 전봉준, 손화중 등의 통한이 서린 역사 현장으로 산행의 묘미 뿐 아니라 생생한 근대사의 일단(一端)을 웅변해주는 산이 용진산이다.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학정(駕鶴亭) 가는 길목의 깎아지른 높은 암벽에 새겨진 미소 짖는 자비로운 얼굴의 석가모니상이 무척 인상 깊다. 소금강(小金剛), 불당일월(佛堂日月), 용진수석(聳珍水石) 등 일필휘지는 선인들의 멋진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수량 많은 한여름에는  열길 낭떠러지 계곡을 흐르는 해맑은 물소리가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주고, 학에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가학정에서 황룡강을 굽어보며 자연의 풍취에 취해 시 한 수 읊조렸을 선비들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용진산의 두 봉우리 중 철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듯 용을 쓰고 올라야하는 서쪽의 석봉(石峰)은 큰 바위가 겹겹이 쌓인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 문필봉(文筆峰), 또는 기운차게 솟아오른 용출봉(湧出峰) 같다. 동쪽 봉우리는 석봉과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토봉(土峰)으로 불리고 있으나, 암릉과 낙락장송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지는 절경이 자꾸만 억울함을 호소한다. 서봉과 동봉, 아니면 형제봉으로 두 암봉을 둘러싼 크고 작은 연봉들이 마치 바위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장관이다.용진정사에서 석봉과 토봉에 수량과 풍광이 빼어나다.
 
왜정 때 전국에서 이름 있는 금광이 있었던 곳으로,용진산 서쪽 왕동제는 우리나라 지형을 닮은 호숫가에 아늑한마을과 전원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 530m봉에서 가지를 친 영산기맥 상의 구황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수련산, 동구산을 거쳐 용진산을 빚는다. 동쪽 산줄기는 호남정맥 도장봉 앞에서 갈래 친 산줄기가 어등산에서 황룡강에 숨어들고, 서쪽 산줄기는 영산기맥 태청산에서 갈려나온산줄기가 나주의 제신산에 이르러 영산강에 잦아든다. 물줄기는 모두 황룡강에 살을 섞은 뒤 봉황산 앞에서 영산강을 이루다가 목포 앞 서해의 품에 안긴다.
 
왕동의 유래로 왕동(旺洞)이란 명칭도 용진산을 비롯한 이 지역의 산봉우리가 용처럼 솟아나며 왕동저수지 주변을 떠받들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빛이나고 번성할 마을'이란 뜻을 갖고 있다.이 마을은 조선후기나주군 적량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0년 함평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당리, 왕산리, 내동리 등의 일부을 합해 본량면 왕동리가 되었다. 1949년 광산군에 편입된 뒤 1988년 광산구가 신설되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으로, 95년에는 광주 광산구 왕동이 된 후 왕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본량동 관할하에 있다.동 이름은 왕산리와 내동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광산구 용진산 약수터 새 명소로  광주 광산구가 새롭게 정비한 용진산 약수터가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의 명소다.용진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관정을 새롭게 시공하는 등 약수터 정비를 마쳤다.24시간 급수가 가능해이용하는 등산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불편도 해소했다. 수질 또한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의 검사를 통해 아주 우수한 것으로 판정됐다. 물탱크 주변에 조경수를 심고 화장실도 보수했으며, 편의시설 확충 및 보수에 만전을 기해 용진산이 시민의 명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풍수지상 좋은 집터, 부자되는 좋은 집터는 사람 숫자에 맞는 크기로 언덕위의 그림같은 집으로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여야 할 것이다.집이 들어 설 경우 포근한 감이 들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성인이나 미성년자도 밖으로 돌기 마련이다. 햇볕만이 아니라 바람이 잘 통해야 곰팡이니 이끼가 끼지 않으며,나무는 지붕보다 높지 않아야 할 것이며,대문이 집 보다 너무 높은 경우 3대가 가지 않으나 사람들은 대문부터 높게하여 웅장함을 과시하려 한다. 방향은 동쪽이 10%정도 치우친  좋고, 대문도 집터와 같이 동쪽이 10%정도 치우친 동남남향이 좋다.
 
햇볕이 많이 든다는 것은 살아움직이고 생기가 돌기 때문으로 북쪽은 약간 높은 언덕이 있으면 바람막이가 되고,북쪽으로 눈에 보이는 산이 있으면 더욱 좋으며,집안에서 물이나 도로는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특히 집안에 웅덩이나 수영장이 있으면 더더욱 아니좋다. 도로도 풍수지리학적으로 물로 보며,물은 음침하며,우울증이나 불면증과 피부병 등 질병에 약하기 때문이다.집에서 보면 앞이 트여 전망이 좋을수록 좋다는 것은 그림같은 언덕위의 집은 경사도가 있어야 물의 배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나쁜집은 막다른집은 아니 좋다.비가 올때 막다른 집은 물이 고이는 이치와 같다. 집터는 매립지보다는 자연적으로 단단하여야 할 것이며,매립지는 기가 살아있지 않은 토지로 풍수지상 여긴다.경매 등으로 망한 집은 쳐다보지도 않아야 하며,경매의 집은 재수없는 집이라 하며,경매 좋아한 사람은 경매 당하기 마련이며, 시장에 살면 장사을 배우게 되고, 좋은 대학 근처에 살면 공부 잘하게 된다. 주위 환경이나 친구 친척 이웃집도 중요하다. 대문이 2개이거나 2집을 울타리 없애는 경우는 대문 1개는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은 주인이 2개가 될 것이며, 부부가 다른 문 사용시는 가정의 불화가 오기 때문이다.
 
형제간에 이웃하여 살면 풍수지리상 기을 나누어 갖게되고,묘도 합장 보다는 따로 함이 좋고,가족묘가 유행이지만 가능한 형제가 많으면 전국 곳곳은 아닐지언정 시군구 정도는 떼어서 이장함이 좋다.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어디서 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문에서 안방이나 부엌이 보이면 은밀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 여자가 바람을 피우게 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열번찍어 아니 넘어간 사람 없다 하듯 여자가 좋은 걸 자주보면 자신의 것 약점 투성이을 씷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좋은 걸 선호하고,멋진 남자나 여자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곰팡이 끼거나 벽틈으로 물이새거나 하면 질병의 위험이 따르게 되니 빨리 수리함이 좋다.항상 즐거운 마음,네탓이 아닌 내탓,긍정적 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드는 집에서 살고 생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출처 : 風水地理(풍수지리) - blog.daum.net/choitj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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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의 중요성 한국역학의 계보
자강 이석영 선생(1920-1983)
1920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
청주대 법대 졸업
사주첩경의 저자
한국역학교육학원의 창립자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벽천 김석환 선생(1933-2016)
1933년 출생
중앙대 법대 졸업
故 자강 이석영선생님의 계승자
한국역학교육학원 원장
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원제 임정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벽천 김석환 선생 사사
한국역학교육학원 강사역임
MBC 문화센터 강사 역임
한국역학인총회 사무총장
前 동방대학원 박사과정 교수
기억에 남는 상담 에피소드
역학인, 그 거짓과 진실 [348495] (4)
사주를 상담하여 줄 수는 있으나 교훈은 줄 수 없는 경우 [340085] (2)
사이비 역술인의 폐해 [234638]
사주를 무조건 부정하던 경우 [343990] (1)
사주를 보면서 해줄 말이 없는 경우 [349528] (2)
사주가 맞지 않는 경우들 [347534] (2)
아들의 외고합격 [364753] (2)
젊은 여성의 임신 [300656] (1)
재벌 회장의 사주 [356325] (2)
유명가수의 사주 [351915] (1)
보험설계사 [35383]
이혼상담(마인드가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381183] (4)
결혼(역학을 배우면 운명이 바뀐다.) [370063] (4)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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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노인점복전서
전2권 세트


제대로보는
적천수천미
전4권 세트


제대로보는
명리약언
전1권


제대로보는
궁통보감
전2권


제대로보는
자평진전
전2권

동영상강의

사주초급반

사주중급반

사주전문가반

육효반

신수작괘반

성명학반
잘못 알고있는 역학상식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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