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 야간산행을 해본 적이 있는가. 호젓한 산길, ‘잠 반 걸음 반’ 무아지경으로 가는 길에 ‘소복 입은 여인’ 으로 인해 소름끼친 일은 또 없는가. 아니 밤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깊은 산중이라면 대낮이라도 놀랄 터이니 말이다. 묘 앞 마구잡이로 설치해 놓은 석물 얘기다. 더욱이 흰색은 ‘숙살지기(肅殺之氣)’, 죽이는 기운이다.
필자가 아는 어떤 이는 이 흰 돌 때문에 골치란다. 이유인즉 집 바로 옆에 묘가 있는데, 이 묘의 후손이 묘를 손보면서 축대를 높디높게 쌓아올렸단다. 집 높이와 거의 맞먹게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집안에 있는 묘’ 쯤으로 생각하고…. 동네 초입부터 보이는 이 숙살지기에 자신의 집조차 섬뜩하단다.
이쯤되면 ‘막무가내식 이기주의 효도법’ 이라 할만하다. 땅속의 망인(亡人)이 좋아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왜냐, 잡석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비보(裨補)가 필요하다. 사철 푸른 활엽수로 그 살기(殺氣)를 차단하는 방법….
풍수에선 아무 묘에나 석물을 세우지 않는다. 비록 속설(俗說)이긴 하지만 돌을 피할 자리를 엄연히 구별한다는 말이다.
패철의 4번째 동심원은 24방위를 표시한다고 했다. 이 24방위엔 각 방위마다 뜻하는 동물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子:쥐)․축(丑:소)․인(寅:범)․묘(卯:토끼)…’다. 임(壬)을 보자. 임좌(壬坐:정북쪽에서 서쪽으로 15도)인 묘는 석물을 기피한다. 임은 24방위로 제비가 된다. 제비는 알을 낳는다. 이 묘에 석물을 세우면 돌이 알을 깨는 형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서쪽에서 내려오는 맥(脈)은 유(酉)다. 유는 닭이다. 닭도 알을 낳는다.
간(艮:북동쪽)은 게를 뜻한다. 간좌인 묘에 돌을 놓는다면 게의 다리가 다치는 격이다. 신병불구자가 생긴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남동쪽(정확히 말하면 남동에서 남으로 15도)의 맥은 사(巳)다. 뱀이다. 이 맥에 쓰는 묘에 망주석을 세운다면 뱀의 머리를 돌로 누르는 형상이 된다. 사(蛇)가 사(死)가 된다. 발복은커녕 흉이 두렵다.
이런 예는 물형론(物形論:산의 형태를 사람이나 동물, 식물에 비유한 것)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사두혈(蛇頭穴)은 뱀의 형태다. 뱀처럼 가는 둔덕이 갈지자(之)로 기는 모습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뱀이 들의 쥐를 노리는 형상이다. 이때의 뱀은 머리에 온 신경이 쏠린다. 따라서 머리에 혈(穴)이 맺힌다고 본다. 이런 곳에 쓴 묘도 비석을 피한다. 굳이 세우려 한다면 그 아래에 세워야 한다.
입석(立石)은 삼합(三合)을 주로 응용한다. 우리가 속칭 ‘돼지띠는 토끼․양띠와 궁합이 맞다’고 할 때의 그 삼합이다. 4살, 8살, 띠동갑이다. 묘가 자좌(子坐:묘의 뒤쪽이 정북)라면 비석은 진방(辰方:남동에서 동쪽으로 15도)과 신방(申方:남서에서 서쪽으로 15도)에 세워야 길하다. 해묘미(亥卯未), 인오술(寅午戌), 사유축(巳酉丑)도 삼합이다.
이번엔 상극(相剋)을 보자. ‘범띠(寅)와 원숭이띠(申)는 맞지 않다’는 식의 속설이 예가 된다. 즉 인좌인 묘에 신방위의 비석은 상극이 되어 득보다 실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이 띠 궁합은 절대 믿을 게 못된다. 이해가 쉽도록 예로 들었을 뿐이다. 궁합은 남녀 당사자간 오행의 중화(中和)와 성격 등을 우선으로 따져야 한다)
호화 석물로 산하가 신음하고 있다. 그것도 국산이 아닌 외국산인 바에야 더 말하여 뭣하리. 특히 요즘은 납골묘까지 가세, 중병을 앓고 있다. 망자(亡者)에 용상을 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모두가 자기네 체면치레나 과시용일 뿐이다. ‘살아 불효, 사후 효도’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2006. 7. 매일신문 연재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