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흐르는 물은 기(氣)를 휩쓸어 간다. 밤낮으로 센바람이 휘몰아 쳐 기를 갈무리할 새가 없다. 그러나 사행천(蛇行川)에선 바람이 곧장 흐르지 못한다. 강 둔치를 따라 산들거리며 분다. 이런 물이 있는 지세에서만이 생기가 모이고 명당이 형성된다.
좋은 땅에 살면 건강이 좋아진다. 그러면 일도 의욕에 차서 하니 잘 풀릴 거고…. 한마디로 부귀(富貴)가 약속된다. 물이 지현(之玄)자로 흘러야 하는 이치가 바로 이거다.
물은 산보다 그 역할이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것으로 풍수에선 본다. 활동성을 기준으로 보면 물이 양(陽)이 되고 산이 음(陰)이 된다. 흔히들 사신사(四神砂)만 잘 갖춰지면 명당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풍수고전에 ‘풍수의 법술(法術)은 득수(得水)가 으뜸이요, 장풍(藏風)이 그 다음이다’ 라고 했다. 주위 사방에 산이 없어도 터의 앞쪽에 물의 조응이 알맞다면 명당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풍수에서 가장 이상적인 물의 형태는 활모양으로 굽이쳐 돌아가는 물이다. 즉 궁수(弓水)다. 이런 땅에선 물이 곡선으로 돌아가는 안쪽 부분에 기가 모인다. 물이 잔잔하고 지기(地氣)가 모여 좋은 터가 된다. 하회마을이 대표적이다.
두 개의 물이 합쳐지는 부분, 즉 합수(合水)지역도 명당 가능성이 높다. 두 개의 물이 합쳐지면서 양쪽의 기운도 모이기 때문이다.
산과 물이 나란히 가는, 즉 산줄기 양편으로 물이 흐르는 ‘산수동거(山水同居)’ 지세선 물이 터 앞에서 직선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안산(案山)이 가로막지 못해 물이 산의 양쪽으로 흐를 수도 있다. 이것을 풍수에선 양파(兩破)라 한다. 이런 곳은 땅의 기운도 분산되어 가족과 재물이 흩어진다.
풍수고전에 또 이런 말도 있다. ‘물이 무정하게 곧바로 흘러가면 기도 함께 흘러가는 셈이 되고, 뱀이 풀숲을 기어가 듯 굴곡 하여 흐르면 고관대작이 약속된다. 물이 무정하게 쏘는 듯 흘러가 버리면 비록 왕후(王侯)의 지위에 이르렀다 해도 결국은 파멸되고 만다.’
답산(踏山)을 하다보면 유명인사들의 조상산소나 생가(生家) 등에서 이런 경우를 가끔씩 보게 된다. 비록 한 시절 떵떵거리며 살았던 인사들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부분 좋지 않은 결말을 가져왔었다. 단순히 풍수만으로 따져 본다면 물이 받쳐주지 못해 그만큼만 영달했다는 것으로 풀이 할 수도 있다.
하나 한순간이나마 그런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우리 서민들이야 꿈이나 한번 제대로 꿔 볼 수 있겠나. 내일 당장 죽더라도 한번 누려봤으면 하는 바람 아닌 바람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답답한 세상일수록 풍수가 잘 팔리는 이유, 여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힘없는 서민의 넋두리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직류수가 문제였을 수가 있다.
요즘 곡류하천의 직선화가 대세인 듯하다. 홍수조절용으로 말이다. 하천의 둔치는 시멘트 천지다. 물론 이점도 많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도 귀가 솔깃하다. 우선 보기에 시원하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이나 운동코스로도 그만이다. 농촌선 관개수로 정비로 물대기도 편하다.
하지만 생기가 돌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낙동강 하구뚝이나 시화호를 보라.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가 최상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장미엔 가시가 있고, 강한 독(毒)을 품은 동식물일수록 더 아름답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것도 자연이 우선되는 조화가 필요하다. 풍수를 떠나서라도 말이다.
이 세상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다.
2005. 4. 매일신문 연재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