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살아 있다. 풍수의 땅에 대한 근본사상도 생명체로서의 땅이다. 지모사상(地母思想)이 근간이론이다. 좋은 땅에 집을 짓거나 조상의 시신을 모시면 그 땅이 생성하는 좋은 기운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풍수의 본질이다. 서점에 즐비한 산서(山書)중의 명당도(明堂圖)를 보라. 땅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우리가 태어났던 모체(母體)를 닮았다. 어쩌면 나약한 인간들은 풍수를 통해 ‘자궁(마음의 안식처)으로의 회귀’를 꿈꾸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라는 이론이 있다. 풍수의 핵심은 생기(生氣)를 취득하는 것이고 생기를 만드는 기본 조건이 바람과 물, 곧 장풍과 득수라는 이론이다. 천기는 지상에 흐르는 생기로 양택의 기본 요소이고, 지기는 땅속에 흐르는 생기로 음택의 기본 요소가 된다.
풍수 고서에 이러한 글이 있다. ‘기(氣)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 이 흩어지기 쉬운 기를 잘 보존하고 있는 땅은 직접 바람을 맞지 않고 물이 잘 감싸고 있는 땅이다. 이러한 땅이 풍수에서의 이상적인 땅인 명당이다.
바람을 잘 갈무리하고 있는 땅을 어떤 곳인가. 사방의 산들이 어느 한 중심(明堂)을 보듬고 있는 땅이다. 그것도 등을 보이지 않고 가슴으로 감싸야 한다. 이러한 산이라야 좋은 기운이 나온다. 인간의 몸을 생각해 보라. 얼굴, 가슴, 생식기 등 중요한 부분은 모두 몸의 앞쪽에 있다.
산의 앞과 뒤는 어떻게 구별하는가. 누구나 음습한 곳, 급경사진 곳 등에선 오래 있기가 싫을 것이다. 나쁜 기운이 흘러 나와 포근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곳이 산의 뒷덜미다.
모름지기 산의 앞면은 돌이 적으며 완만하다.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아니 쳐다보기만 해도 편안하다. 전국의 명문 고택, 유명 묘소를 답산(踏山)해 보면 명확해진다. 하지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나쁜 사람’들의 조상 묘나 생가(生家)를 보면 땅의 뒷덜미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농촌의 빈집들도 대개 이러한 곳에 위치한다.
양택에서 중요한 지상에서의 기는 바람을 따라 이동한다. 거센 바람이 아닌 산들바람을 탄다. 바람은 물길을 따라 이동하므로 결국 기는 물을 따라 흐른다고 할 수 있다. 물길을 따라온 기가 머물도록 하기 위해선 물살이 거세지 않고 흘러가 듯 마는 듯 한 곳이 유리하다.
도심의 경우 도로가 물길을 대신한다. 큰 길 따라 사무실이나 식당을 낸다면, 달리는 차들에 의해 바람이 광풍으로 변해 기를 쓸어 간다. 따라서 깊숙하게 인테리어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깊은 구조는 기가 모여 편안한 기분을 준다.
발복(發福)은 있는가. 한국의 경우만 보자. 신라 초기 ‘석탈해와 반월성 설화’ 이후 대략 2000년. 풍수지리에 그 어떤 진리가 없었다면 그 긴 2000년 세월동안 풍수란 단어는 이어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시대 묘청의 난, 조선의 한양도읍지 선정 때의 일화 등 역사상 굵직한 사건들은 풍수지리의 발복사상을 말해 주는 예들이다. 아니 멀리서 구할 필요도 없다. 대선, 총선 때의 신문, 잡지를 뒤적여 보라. 곳곳에 후보들의 부모 묘 이장이나 생가 터를 분석한 기사들이 늘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양택과 음택의 발복 차이점은 뭘까. 양택의 경우 산 사람이 직접 그 땅의 기를 흡수하므로 길흉(吉凶)의 시작기간이 짧다. 반면 음택은 ‘동기감응(同氣感應)’에 의해 시신에서 후손에게 기가 이동되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양택의 경우보다 늦다.
요컨데 양택은 빠르면 입주 때부터, 음택은 한 세대가 지나야 본격적으로 길흉이 나타난다. 특히 양택의 경우엔 태어나서 자랄때(보통 15~16세)까지의 환경, 즉 생가의 기가 죽을 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환경의 동물이다. 따라서 주위의 자연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른 아파트 단지나 납골당의 등장 등이 좋은 예이다.
특히 요즘엔 건물의 입지선정이나 사무실의 배치에 있어 편리성, 경제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어떻게 보면 전통 ‘터잡기 문화’인 풍수가 서구식 물질 우선 논리에 밀려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야 없겠지만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통과 현대, 쾌적한 환경여건과 편리성, 경제성을 함께 고려해 터를 장만해야, 그 터에 사는 사람들이 지속적인 발전을 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2004. 6. 매일신문 연재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