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풍수학 대가였던 격암 남사고(格庵 南師古) 선생의 풍수에 관한 전설 한 토막.
격암 선생이 여덟 번째 이장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유택(幽宅)을 정한 곳이 처음 보기엔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이었단다. 흐뭇한 마음으로 마지막 작업을 하고 내려올 즈음, 웬 청년이 지나가면서 이런 노래를 부르더란다. ‘아홉번 이장하고 열 번째 장사지낸 남사고야, 비룡상천 좋아마라. 죽은 뱀이 나무에 걸쳐있는 고사괘목(枯蛇掛木) 아니더냐.’ 깜짝 놀란 격암선생 다시 산형(山形)을 살펴보니 사룡(死龍)이 틀림없더란다. 급히 그 청년을 쫓아갔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이에 격암선생 ‘큰 자리는 임자가 따로 있구나’라며 탄식하였단다.
일반인에게도 널리 회자되는 ‘구천십장(九遷十葬)’의 전설이다.
이장은 무덤자리를 옮기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만 일이 꼬여도 ‘조상 탓’으로 여겨, 이장부터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반성부터 먼저 할 일이다. 무난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이장을 피해가진 못한다. 자기의 체면이나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물을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예컨대 일제시대 때 조성한 공동묘지에 조상을 모신 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곳은 의외로 명당이 많다. 움직이면 되레 손해를 본다.
이장을 하고 난 후 일이 잘 풀린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흉지에 있던 조상의 시신이 좋은 땅으로 옮겨졌다면 조상, 후손 모두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명당에, 아니 명당이 아니었다해도 해(害)도 득(得)도 없었던 평범한 땅에 모셔져 있던 유골이 그곳보다 나쁜 땅으로 옮겨졌다면 문제가 된다. 후손으로 안정되게 전해지던 유골의 기(氣)가 흔들려 돌변한단 얘기다. 갖은 질병, 파산에 절손(絶孫)도 무시 못한다.
이장을 생각하기 이전에 묘소 주변에 쓸데없이 큰 석물을 설치하진 않았는지, 아름드리 나무는 없는지, 봉분이 허물어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물론 묘소 조성 후 파산(破産)과 실직(失職) 등이 잇따를 때나 흉사(凶死)가 겹칠 때, 각종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럴 경우에도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애초에 장사지낼 땅이 아닌 곳이었을 수 있거나, 아니면 세월이 지나 묘소의 환경이 변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즉 충렴(蟲廉 ; 관속에 벌레가 생기는 것)이나 수렴(水廉 ; 물이 차는 것), 목렴(木廉 ; 시신을 나무뿌리가 감는 것. 이 경우 후손에겐 그 부분에 신체이상이 온다고 본다), 풍렴(風廉 ; 시신이 뒤집혀 지는 것), 모렴(毛廉 ; 가느다란 털이 자라는 것) 등의 폐해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때도 후손들 중 한, 두사람에 국한될 경우는 제외된다.
풍수 옛 책에서는 아예 5가지로 제한해 이장을 경계하고 있기도 하다. 무덤이 까닭 없이 가라앉을 때, 무덤의 잔디가 말라죽을 때, 집안에 음탕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소년이 죽고 고아나 과부가 잇따라 생길 때, 산사태로 유지가 불가능 할 때 등이다.
윤달(閏月)이다. 2~3년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공달․덤달, 말 그대로 거저 생긴 달이다. 천상천하의 모든 신(神)들이 쉬는 달, 인간에 대한 감시도 쉬는 달이라 한다. 어떤 일을 해도 해가 없고 재앙이 없다고 믿는다.
‘윤달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속담도 이 속설(俗說)이 원천이다. 윤달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수의(壽衣)장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장 등을 계획하고 있을 게다. 하지만 이장은 섣불리 결정되어져선 안된다. 특히 자신의 사욕(私慾)을 위해 조상을 욕보이는 행동은 생각조차 말일이다. 집안을 망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출처 : 風따라 水따라 - blog.naver.com/chonjj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