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와 풍류 그 리고 화랑」
단재 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난을 국풍파 대 한학파의 대결로 본 것에 실마리가 있다. 그리고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 고유한 현묘한 사상체계(현묘지도)로서 “풍류”가 있다고
했고, 이 풍류도는 화랑사상으로 현실화되었다.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 이 풍
류도의 주된 수련법이었음을 볼 때 이는 땅의 선택을 매우 중시하는 종교 혹은 사상체계라고
생각된다.
도선의 풍수에 대한 관심도 우리 땅에서 만들어진 자생적인 사상체계를 집대성 해 보려는 노
력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무속이니, 미신이니 하고 도외시한 풍교 혹은 풍류도는
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신명과 풍류를 통한 갈등의 해소와 에너지를 창출하는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신명은 곧 신바람으로 산천에 내재한 신의 기운 즉 땅기운이 사람에게 옮겨져서 나타나는
에너지인 것이다. 신명을 주는 땅에는 풍류의 향기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땅의 숨결은
바람으로 상징되고 있다. 풍수는 바람과 물의 과학이다. 풍류도와 풍수는 신명으로 하나될 수
있는 공통의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즉 좋은 땅은 사람을 신명나게 하는 땅인 것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에너지를 풍류를 기반으로 한 화랑사상에서 찾은 것처럼 왕건과 같은 왕들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에너지를 혹은 신명을 주는 풍류의 땅에서 찾으려 했고 그 방법론은 풍수였
던 것이다. 고려의 팔관회는 다섯군데의 산을 의미하는 오악과 명산대천을 숭배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전통사상이 불교와 융합된 것이다. 그런데 이 팔관회에서 춤을 추는 아이를 선랑
이라 불렀는데 이 선랑은 바로 신라의 화랑을 계승한 것이다. 이인로의 “파한집”에 화랑과 팔
관회와의 관계가 자세히 나와있다. 화랑과 팔관회의 핵심은 산천을 숭배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염원과 갈등을 풀고 이들을 녹여내어 통일된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중심에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니라 땅을 세웠다.
그리하여 땅이 한을 풀고 새로운 힘을 발휘하는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혹자는 똑똑한 임금들마다 풍수나 도참에 빠지자 이를 한탄하면서 하나의 약점이나 결점으로
보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리민족 자체가 미신에 얽매인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인
것처럼 자아비판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선진화나 세계화의 걸림돌로 지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고려의 문종, 숙종, 예종 등은 모두 풍수에 빠진 임금이었지만 소위
합리적이라고 하는 유학의 진흥에 관심이 컸다. 문종은 최충을 통해 사학의 발전에 힘썼고,
예종은 국학에 양현고를 설치하여 유학의 소양을 갖춘 인재양성에 힘썼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러한 유교사상의 합리주의를 중시했던 임금들이 비합리적인 풍수에
빠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합리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풍수에 관심을 갖게된 것
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효과란 다름아닌 땅을 매개로 하는 신명의 획득이다. 신라가
화랑의 힘으로 삼국을 통일했다. 그 힘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백성들의 힘을 묶어낼 수
있었던 도구는 바로 명산대천으로 상징되는 자연이었다. 자연이 사람에게 신명을 준다고 보는
것이 최치원이 이야기한 현묘한 이치인 풍류도의 핵심내용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풀고 자연과
하나되어 신명이라는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민심을 동원하는 계기가 바로 풍수였던
것이다. 지도자라면 대중의 사기와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도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임금들이 풍수에 빠지는 것은 너무도 현명한 통치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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