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택풍수의 폐해」
97년 3월 어느 날 서울의 모대학 경영연구소에서 개설한 어떤 강좌에 외부강사로 초대되어 두어
시간에 걸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여러 곳에서 풍수를 얘기했지만 이날처럼 강의
를 끝낸 기분이 개운찮은 적이 없었다. 국영기업체의 간부들을 모아다가 위탁연수를 시키는 과
정이었는데 강의시간에 유독 눈에 띠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강의를 할 때 어떤 특정 사람들을
자주 쳐다보면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주로 강의를 열심히 듣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
의 표정을 기준으로 삼아 좀 지루해 하는 듯하면 강의분위기를 바꾸기도하고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보다 적극적으로 내 주장을 펴게된다. 그런데 이날은 부산 사투리를 심하게 쓰면서
조연 영화배우로 유명한 양택조씨를 닮은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로 눈이
자주 갔다. 이 사람은 강의 도중 미간을 찡그린 채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반항적으로 눈을 감고있는 그 모습에 나는 직감적으로 풍수를 싫어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이날 강의는 주로 음택풍수에 대한 비판과 땅과 사람이 공존해야하는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채원
정의 발미론에 나오는 땅을 보는 16가지 관점에 대한 해설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160분간의 강
의를 마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는데 이 눈감고 있던 양반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했다. 거두
절미하고 풍수는 묏자리 만들기 위한 명당이나 찾으려 하기 때문에 오늘날 와서 다시 풍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땅에 대한 건전한 개발이 아니라 투기적 이용만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고 질
문이 아닌 주장을 늘어놓았다. 나는 매우 난감했다. 그때까지 실컷 음택풍수에 대한 비판을 하
고 내가 주장하는 풍수사상은 땅과 사람과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엉뚱하
게도 그는 풍수가 음택풍수 묏자리 잡는 것이니 땅만 잘 잡으면 게으름 피우고 놀고먹어도 된
다는 식의 헛된 망상을 심어 줌으로 더 이상 풍수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어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음택풍수는 풍수도 아닌 것이며 사람의 생명이 땅에 의지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하는 방편으로써 땅의 이치를 설명하는 풍수는 땅과 인간을 서로 가깝게 연결해주고
그리하여 땅도 보전하고 사람의 삶도 건강하게 준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이것을 재론하는 의의
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역시 자기말만하고 내말은 듣지않고 있었다.
그리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 양반이 또 거기있었다. 애써 나를 외면하며 주변 동료들
에게 “일본은 양택풍수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심하게 음택풍수를 하고 있다. 일관된
논리가 없는 풍수가 학교에서 쫓겨 난 것은 잘된 일이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격앙된 목소리로
하고 있었다.
쫓겨난 것이 아니고 우리발로 나왔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풍
수에 대한 평소의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 경영관 건물을 빠져나와 규장각으로
향했다.
규장각에서 채성우(蔡成禹)의 명산론(明山論)을 복사하면서 음택풍수의 질곡을 벗어나는 것이
이토록 어 려운가 하는 자탄을 하며 마음이 우울했다.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풍수사상을 외쳐
보아도 음택풍수의 그늘은 너무도 짙은 것이었다.
「묏자리의 문제」
사람들에게 풍수를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택풍수를 풍수의 전부인 것
으로 알고 있었고 음택풍수에 대한 관심도 좋은 묏자리를 잡아서 후손들을 잘되게하겠다는 의
도보다는 혹시나 묏자리를 잘못 잡아서 겪게될 우환을 걱정하고 있었다. 보통 집안에 연달아
사람이 죽어 나간다든가 사업실패 등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주로 부인들이
점쟁이를 찾게된다. 실제로 미아리에 가면 대부분의 무당이나 점집에서 사주, 관상, 궁합과
더불어 풍수지리를 본다고 간판을 달고 있다. 미아리의 도사들은 십중팔구는 몇 대 조상의
묘자리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주로 물이 차 있다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이때 처방은 주로
묘를 이장하거나 시신을 화장하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부인들은 반신반의 하지만 워낙 닥친
상황이 절박한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묘를 파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죽은 사람
을 대하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미 매장된 사람의 시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니 이장하려고 묘를 파낸 사람들은 묘안에서 벌어진 광경에 충격을 받게 된다. 상상을 초
월하는 광경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그 참혹스런 모습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영혼의
존재를 믿지않는 사람이라해도 부패해가는 시신을 보면서 그 영혼이 편치 않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음을 느끼고 조상을 이렇게 모시고도 내가 잘되길 바랐다니 하는 자책감을 갖게 된다.
묘지에 문제가 생겨 일어난 일들은 보통 이와 같은 흐름으로 진행된다.
「묘 에 물이 차는 것은 자리나쁜가」
묏자리에 물이 차는 것은 좋다 나쁘다하는 가치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자연스런 자연의
현상이다. 지표면과 지하수면은 대략 수평을 이룬다. 지하수면이란 지하수가 차있는 높이를
수평으로 연결한 선을 말한다. 이 지하수면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지표 가까이로 올라오고
겨울철에 갈수기가 되면 다시 내려가는 식의 승강운동을 한다.
그래서 비록 산에 묘지를 만들어도 평지나 산이나 지표면에서 평행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하수면과 접하게된다. 산이 높다해도 지하수면도 같이 높아지므로 지하수의 영향에서 벗
어날 수는 없다. 지하수는 땅밑에 있는 거대한 암반의 틈 속에 차있는 물이다. 암석에는 수많은
틈과 절리가 발달되어 있으므로 지하수는 항상 우리 발밑에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지형에서 산야에 분포하는 무덤들은 여름철에 지하수면이 상승하면 직접 지
하수의 침범을 받거나 아니면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묏자리에 물이 드는 것은 그리 희
안한 일이 아니고 언제나 생길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상상도 하지않다가 막상 실제로 눈으로 보게되니 특별한 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항상 묘지를 파보는 사람은 집안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들뿐이다. 잘되는 집안에서는 묘를 파보지 않는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묘에
손대는 것을 매우 꺼리는 것이 묘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습이다. 그러므로 잘되는 집
안도 묘를 파보면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상 물이 나는 묘지가 많을 텐데 파보지 않기 때문에 매
번 묘지를 파헤치는, 불행이 겹치는 집안만 물구경을 하게된다. 그러다보니 물이 나는 묘지는
집안에 흉사를 일으킨다는 도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뼈가 시커멓게 변한다든가 나무뿌리가 시신을 휘감고 있
다든가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 땅속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생물의 활동 등으로 뼈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일부 지
관들은 수염이니 화염이니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경우가 많다. 땅속에서 뼈가 오히려 제 색깔
을 갖고있는 것이 더 부자연스런 일인데도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해서 지관과 무당들은 집안
이 금방이라도 망하는 것처럼 협박을 한다. 지관들은 알고 있다. 잘되는 집안은 절대로 묘를
파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든지 집안문제로 일단 묘를 파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
혐오스런 광경을 자극하여 마음껏 그 묘의 자손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런 땅
속의 일을 가지고서 이런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 지관들에게 더 이상 속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풍수강의를 하면 항상 이런 식의 논리로 음택풍수가들이 보통사람들에게
사기술을 펴고 있음을 알려왔다. 그리고 혼자서 뿌듯해했다. 이런 식으로 음택풍수를 격렬히
비난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만의 독창적 논리에 나 스스로 도취되곤 했다.
출처 : 풍수학 - blog.naver.com/ksks55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