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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동기감응론 |
좋은생각
2017-09-28 (목)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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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풍수학의 본질은 생기과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다. 그 중에서 동기감응이란 조상의 유골이 자연의 생기에 감응받는 정도에 따라 복과 화가 후손에게 그대로 미친다는 이론이다. 조상을 길지에 매장하여 좋은 기를 발산하면 자손이 부귀를 누리고, 흉지에 묻혀 나쁜 기를 발산하며 재앙이 미친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 풍수 경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장경』은, <서촉(西蜀)에 있는 동산(銅山)이 붕괴되니, 한나라 동쪽의 미앙궁에 있던 종이 저절로 울렸다. 밤나무에 봄기운이 오르니, 창고 속에 넣어둔 밤에서 싹이 돋는다.(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 木華於春 粟芽於室〉라고 하였다. 종이 저절로 울리자, 황제가 동방삭(東方朔)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이 종은 동산에서 캐낸 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질의 기가 서로 감응을 일으켜서 저절로 울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황제는 '미천한 물질도 서로 감응을 일으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조상과 후손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응을 일으킬 것인가!'라고 말하고, 또 봄이 되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창고에 저장했던 곡식도 봄이 되면 발아한다. 이것은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 감응을 일으키는 결과로 보아 조상과 후손이 서로 뼈의 기로써 감응받음을 인정하였다.
또한 『청오경』에서는, 〈동산에서 더운 기운을 토해내면, 서산에서 구름이 일어난다.東山吐焰 西山起雲〉라고 동기감응론을 설명하고, 『장경』의 입장은 더욱 확고하다. <모든 생물은 기가 모여 응결된 결정체로, 생물은 기가 모여 응결되면 강력한 생명력을 발동하며 번창하지만, 기가 흩어지면 곧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 죽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생물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가 응결된 결정체이다. 특히 인간의 뼈는 도체로써 기를 잘 흡수하기 때문에 인체 가운데 가장 많은 기가 응결된다. 사람을 매장하면 피와 살은 곧 썩어 없어지지만 뼈만은 오랫동안 남아 있다. 따라서 남은 뼈는 같은 유전인자이며 같은 질자체를 가진 자손과 시공을 초월하여 좋고 나쁜 감응을 일으킨다.(蓋生者氣之聚 凝結者成骨 死而獨留)〉
<사진 : 종(한나라 동쪽 미앙궁에 있던 종이 서촉에 있는 동산이 붕괴되니 저절로 울렸다. 미앙궁의 종은 그 동산에서 캐낸 것이다. 이를 두고 동기가 감응하였다고 말했다.)>
| 풍수학적 해석 <사진 : 영릉>
풍수지리학의 본질인 동기감응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조선 시대에도 뜨거웠다. 『조성왕조실록』에서 풍수학에 관해 발췌한 글을 정리하면, 세종 대왕이 가장 동기감응론을 믿지 않으셨던 분이다. 본래 세종의 릉은 서울 내곡동의 헌릉(태종의 능) 옆에 점지(點地)했는데, 이 자리를 두고 지관들이 물이 찬다며 다른 곳을 추천하였다. 그러자 세종은, "다른 곳에 복지를 얻는 것이 선영 곁에 장사하는 것만 하겠느냐?"하며 묵살하고 결국 그 자리에 능을 마련했다. 그러나 묘 바람은 무서웠다.
예종 1년에 여주로 옮기려고 광중을 파니, 19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은 물론 삼베 옷 하나 썩지 않았다고 한다. 광중에 물이 차면 겨울에는 꽁꽁 얼고 여름에는 싸늘한 물 속에 시신이 잠겨 도무지 썩지 않는다. 심지어 물에 둥둥 떠다니던 시신이 엎어지는 경우도 있고, 혹은 떨어진 얼굴이 다리 사이에 꼬여 있기도 한다. 그럼 세종의 시신이 썩지 않는 19년 동안 후손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세종을 이어 등극한 문종은 재위 2년만에 종기로 승하하고, 단종은 재위 3년 후에 사약을 받고, 세조는 재위 13년만에 지병으로 죽고, 예종은 1년만에 승하했으니 19년 동안에 무려 4명의 임금이 바뀐 셈이다. 그러나 여주로 릉을 옮긴 뒤에 등극한 성종은 25년 간이나 집권하며 많은 치적을 남겼다.
또 여러 실학자들은 조상을 길지에 모시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사상의 신비성을 들어 동기감응론을 부정하였다. 그 중에서 정약용은, "살아계신 부모님이 자식 잘되라고 그 자식과 마주앉아 두 손 잡고 훈계해도 어긋나기가 쉬운데, 하물며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있는 아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가."라 했고, 홍대용은 "중형을 당하여 옥에 갇힌 죄수가 옥에서 당하는 고초가 뼈를 깎는 것일 터인데도, 그 죄수의 아들이 아비가 받는 악형 때문에 몸에 악질이 들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죽은 자의 혼백에 있어서랴. 어찌 죽은 아비가 산 아들에게 복을 내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학자들이 동기감응론을 비판한 배경에는 당시 그들이 처한 사회적 입장과 현실개혁 의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죄인과 야인의 입장에서 사회체제에 대해 심한 불만을 품고서 기존의 틀을 바꿔보자는 진보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 중에서 풍수학에 대한 견해는 풍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져서가 아니라 사대부에 대한 반감의 발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큰 공적도 없으면서 부귀영화에 빠진 권력자들이 지관을 들여 묘터를 잡는 꼴이 혁신적 사고를 가진 그들에게 곱게 보였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 현대적 해석 <사진 : 이장 시 수습한 유골>
평택 안중에 사는 수원 백씨(水原白氏)들은 태어나는 아이들마다 머리에 흰머리가 점처럼 박혀있었다. 이런 특이한 유전을 두고 원인을 알 수 없어 궁금해 하였다. 그런데 개발에 밀려 백씨의 선영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이다. 한 묘를 팠더니, 시신의 머리 뒤쪽이 닿는 부분에 흰 차돌이 박혀있었다. 장사지낼 때에 머리 부위에 박힌 차돌을 미쳐 파 내지 못한 것이다. 후손들은 그 차돌을 보고, 자기들의 머리 뒤퉁수에 박힌 흰 점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물론 묘를 이장한 다음부터는 후손 중에 흰 점박이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 과학문명에 비추어보면 동기감응론은 이해하기 힘든 현상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상기와 같이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동기감응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또 다른 과학일 수도 있다.
뼈를 구성하는 원소는 생체 에너지와 독특한 진동 파장을 가지는데, 시신의 유골이 산화될 때 발하는 전자 파장이 동일한 기를 가진 후손과 서로 감응을 일으켜 영향을 준다. 또 그 결과 길지에 매장하면 유골이 우주의 대생명력과 오기(五氣)의 상호작용으로 부식된 백골도 다시 살아나 황골이 되어 영원히 부식되지 않는다.
유골에서 발하는 방사선은 직계 자손의 방사선 파장과 합치되며, 혈에 가득찬 우주의 정기는 그 후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인간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풍수학에서는 말한다.
동기감응론의 초현실성 때문에 풍수학은 현대에 들어 미신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구의 과학과 합리라는 잣대 역시 많은 모순에 싸여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뉴톤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을 때 모두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자, 만유인력은 위력을 잃어버렸다.
동양 사상 중에 현대에 와 과학으로 인정받는 것이 있다. 침술학도 그중의 하나이다. 서양인은 약을 쓰지 않은 채 침으로 인체를 마취시키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취가 되니 어쩔 것인가? 따라서 동기감응론도 이 시대의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 뿐이지, 미래에 증명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동기감응론을 믿고 믿지 않는 것은 개인에 달려 있을 뿐이다. |
출처 : [풍수] 동기감응론 - cafe.daum.net/dur6f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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