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는 조선 후기의 실학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이다. 기존의 지리서가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군현별로 만든 것을 모아 편집한 것이었다면, ‘택리지’는 한 개인의 일관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한 인문 지리적 특징을 설명한 책이다.
택리지는 필사되는 과정에서 50여 가지나 되는 다른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널리 애독된 보기 드문 저술이기도 하다. 풍류를 찾는 시인은 ‘진승유람(震維勝覽)’과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으로, 물산과 교통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으로, 또 풍수지리가는 ‘형가요람(形家要覽)’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애독해 왔다.
그러나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논하고 있는 가장 큰 관심과 주제는 문화적 교양을 지닌 사대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구성도, 사대부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한 ‘사민총론(四民總論)’, 우리나라의 인문지리적 환경을 설명한 ‘팔도총론(八道總論)’, 사대부가 살기에 좋은 지역의 기준을 설명한 ‘복거총론(卜居總論)’, 그리고 우리나라가 사대부가 살만한 땅이 되기 위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논한 ‘총론’의 체재로 되어있다.
‘사민총론’에서 이중환은, 사대부란 성인(聖人)의 법도를 지키는 일종의 문화인(文化人)의 명칭으로, 원칙적으로 벼슬을 하건 하지 않건 모든 사람이 사대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문화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대부의 행실을 닦기 위해서는 예(禮)가 필요한데 예는 부(富)가 아니면 실행될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팔도총론’에서 이중환은 우리나라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살만한 곳과 피해야 할 곳, 숨어살기에 좋은 곳, 복이 있는 땅 등을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복거총론’에서는 살기 좋은 땅에 대해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 가지 기준으로 자신의 독창적인 지리사상을 밝히고 있다. 지리는 지형적 조건을, 생리는 경제적 여건을, 인심은 문화적 풍토와 풍속을, 산수는 경치를 말하는데, 좋은 땅은 이 네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리(生利)를 논한 글에는 이중환의 경제관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사는 동안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자를 보내는데 모두 반드시 세상의 재물에 의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재물은 하늘이 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토지가 비옥한 곳이 으뜸이고, 배와 수레, 사람과 물질이 모여 들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무역하고 유통할 수 있는 곳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유교적인 농본적 사유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물자의 교역과 수운(水運)을 통한 운송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심(人心)에 관한 글에서는 당쟁의 폐해와 당색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누구보다 이중환 자신이 당쟁의 희생자였다. 그래서 이 부분에는 사대부 지식인이 겪은 회환과 시대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문화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대부와 교류하며 문화적 소양을 연마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어느 당색의 입장에 서서 편협한 인간관계를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중환은 “차라리 사대부가 없는 곳을 선택하여 문을 닫고 교제를 끊으며 자신의 몸을 홀로 선하게 하여 비록 농부가 되고 상인이 되어 즐겁게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라고 자탄하기도 한다.
문화인으로 살기에 적합한 땅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여 문화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찾을 수 없다면 살만한 곳을 만드는 길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택리지’를 통해 이중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대부가 살기 좋은 곳이란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력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언외의 뜻에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