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풍수(風水)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우리나라 여러 집안들의 선산(先山)을 답사할 기회가 많았다. 그 집안 조상들의 묘들을 둘러보다 보면, 묘비(墓碑)에 쓰인 한문도 배우고, 주변 산세가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가, 과거에 그 집안의 선조들이 위기 상황에서 보여주었던 결단력과 인내력 등을 공부하게 된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광평대군(廣平大君) 묘역은 이런 공부를 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을 비롯하여 그 후손들의 묘 700여 기(基)가 있다. 묘역의 넓이는 13만 평. 다른 집안들의 선산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광평대군의 묘역은 한 집안의 묘 700여 기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효율적으로 묘지를 조성한 셈이다.
이곳은 전국에서 예장(禮葬)이 잘 된 묘역으로 손꼽힌다. 그 사람의 신분에 맞게 묘의 규모가 교과서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대군에서부터 판서, 참판, 한성판윤, 승지, 군수, 진사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따라 묘의 규모와 석물(石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왕자인 광평대군의 묘역에는 돌로 만든 장명등(長明燈) 2기가 좌우에 있고, 우측에 신도비(神道碑), 그 아래에 문인석(文人石) 2구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영의정을 지낸 녹천(鹿川) 이유(李濡)의 묘에는 장명등이 없다. 영의정의 묘에도 장명등은 설치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대신 신도비는 규모가 아주 크다. 사각형의 형태로서 높이가 387cm에 달한다. 또 묘를 둘러싼 둘레석은 영의정만 있고 참판은 없다. 둘레석은 정1품 이상만 쓰도록 되어 있었다. 문무석은 참판도 있지만, 그 규모와 복식이 영의정에 비해 간단하다. 참판은 문인석이 있지만, 군수는 문인석이 없다.
현재 이 묘역을 관리하는 사람은 녹천 이유의 11대 종손인 이병무(64)씨이다. 필경재(必敬齋)의 주인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면 혹시 묘가 유실될까 봐 새벽 2~3시라도 비닐천막을 들고 묘역에 달려간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상 묘에 가서 하소연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화장(火葬)이 대세인 요즘에 광평대군 묘역은 조선시대 묘지 풍습을 알려주는 ‘묘지 박물관’이 되었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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