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판 베벌리힐스’ 성북동 이야기 |
초인
2017-09-28 (목) 14:58
조회 : 3237
|
|
‘한국판 베벌리힐스’ 성북동 이야기
성북동이 대한민국 최고 부촌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0년대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성북동은 청와대와 가까워 권부의 실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성북동에는 차지철 경호실장, 양택식 서울시장, 이후락·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 정권 실세들이 대거 모여 살았다. 이 때문에 북악산 길은 문민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의 보행이 금지됐었다.
그러던 성북동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부터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등이 성북동으로 이사 오면서 이곳은 ‘회장님’들이 모여 사는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장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성북동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김각중 경방 회장, 임충헌 한국화장품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윤덕병 한국아쿠르트 회장, 박용성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모두 성북동 주민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북동에는 AIG, HSBC, 나이키, DHL코리아 등 주한 외국계 기업 사장들과 주한 외교사절들이 모여 산다. 개그맨 신동엽, 영화배우 정보석 씨 등 연예인들도 성북동에 둥지를 틀고 산다.
남의 이목을 피해 모임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성북동 대 저택은 영빈관으로 애용되고 있으며 현대, 포스코, SK그룹이 현재 이곳에 그룹 영빈관을 마련해 뒀다. 현대그룹 영빈관은 일본 대사관저 맞은편 330-303 일대에 있으며 SK그룹은 15-127 일대, 포스코는 산 10-3에 영빈관을 소유하고 있다.
LG그룹은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살던 산 10-15 연곡원을 그동안 영빈관으로 사용해 왔으나 지난해 7월 38억 원을 받고 모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매각했다. 이 집은 건평 660㎡(200평), 임야와 대지 면적은 약 2710㎡(820평)이며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집은 관리상의 이유로 LG그룹이 지난 2~3년 전부터 비밀리에 매각을 추진해 왔으나 집이 너무 커 그동안 적당한 매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LG그룹은 연곡원을 그룹 내 공익사업재단인 LG연암재단에 매각해 문화원 등의 용도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매각 전까지 이 집은 LG그룹의 디자인, 정보기술(IT) 태스크포스 팀이 주로 이용해 보안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홍채 인식 시스템 등 최첨단 보안 장치들이 설치돼 있어 매수자와 함께 매물을 보러 갈 때도 사전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했고 집 안으로는 LG그룹 관계자와 매수자 단 둘이 들어갔어요. 나도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모르고 소문만 들었을 뿐입니다.”(A부동산 관계자)
올 초 SK그룹이 30억 원에 매입한 영빈관은 대지 면적이 660~990㎡(200~300평)다. 성북동은 전통적으로 부동산 거래가 뜸한 곳이다. 한 부동산 사무실에서 1년에 계약을 체결하는 케이스가 채 10건이 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북동은 부동산 경기와 상관없이 늘 매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성북동에 들어와 살면 다른 데가 절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요즘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에 싫증을 느낀 강남 사람들과 IT 등 중견기업 회장들이 매수자로 적극 나서는 분위기입니다.”(B부동산 관계자)
그렇다면 성북동 고급 주택의 집값은 과연 얼마일까.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곳의 집값은 30억~50억 원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집 크기가 대략 660㎡(200평)인 걸 감안하면 ㎡당 매매값은 758만 원선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409㎡(124평)는 매매값이 54억 원 선으로 ㎡당 매매값으로 환산하면 1320만 원이다. 강남에 비해 집값은 비싸지 않다.
성북동 집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강남 아파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성북동에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 최상류층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성북동에 살지는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북동에 사는 회장님들은 주방 도우미, 가사 도우미, 정원 관리사, 운전사 2명, 경비 요원 등 6~7명을 고용합니다. 이 때문에 한 달에 나가는 인건비만 1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죠.” 성북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강남과의 주거 문화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북동은 늘 조용한 곳이다. 이웃끼리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성북동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영화계에서는 영화 촬영장소로 가장 섭외하기 어려운 곳으로 성북동을 꼽는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으면 사설 경호원들에게 촬영을 제지당하기 일쑤다. 자신의 집이 대중에 노출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은 이곳 주민들의 공통된 성향이다.
지난해 말 성북동에서는 꽤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코오롱그룹 노조원들이 이웅렬 회장 자택 앞에서 교대로 1인 피켓 시위를 벌였는데, 이것만으로도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성북동에서 10여 년째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K 씨는 지난해 집을 매수하려는 유명 코미디언을 대동하고 모 회장 집을 찾아갔을 때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매수자가 유명 연예인이라서 계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도자가 ‘유명 연예인이 집을 사면 성북동 사람들의 삶이 다 노출되기 때문에 절대로 팔 수 없다’고 해 그 유명 연예인은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처럼 성북동에서는 매수자가 누구인지를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성북동은 풍수지리로 볼 때 재물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부자들이 성북동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성북동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재물 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7일 법원 경매시장에서는 보기 드물게 성북동 고급 주택이 입찰에 부쳐졌다. 성북동 330-226에 있는 이 집은 한때 국내 콜라 시장의 15%를 차지했던 ‘콜라독립 8·15’를 만든 범양식품 박승주 회장이 살던 집. 코카콜라가 설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범양식품은 재무 구조가 튼튼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경영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결국 지난 2005년 파산 절차를 밟았다. 이 집은 대지 1193㎡(360평), 건물 476㎡(144평)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6월 7일 법원 경매 입찰에 나왔으나 변경 처리돼 추후 재입찰될 예정이다.
또 영화배우 Y 씨의 경우 2년 전 평창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으나 그가 투자한 코스닥 기업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살던 집을 급히 처분하고 평창동으로 다시 이사했다는 일화도 있다.
성북동에는 일반 주거지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성북동은 북악산 자락을 끼고 동네가 형성됐기 때문에 온도가 서울 도심에 비해 평균 2도가량 낮다. 또 성북동에는 거주자 전용 주차 구역이 없어 아무 곳에나 차를 주차해도 견인되지 않는다. 집 앞 대문에 문패 하나 걸려 있지 않고 번지수가 적힌 번호판만 걸려 있다. 5~6집 건너마다 사설 경비초소가 있으며 대사관저가 곳곳에 있어 경찰 초소도 많다. 여기에 24시간 보안 요원 차량이 동네 곳곳을 순찰하고 있어 도둑 걱정이 없다는 것도 성북동의 자랑이다.
부동산 거래에도 성북동 만의 원칙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세금 한두 푼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다운계약서니 호가니 하는 것들은 성북동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이죠. 매스컴을 통해 정부 규제 때문에 매물을 내놨느니 거둬들였느니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 성북동 사람들은 혀를 찹니다.”(C공인중개사 관계자)
대신 성북동 사람들은 대체로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부동산 거래 시 지관을 대동하는 것은 보편적인 모습이다. 나무, 조각품, 샹들리에 등도 부동산 거래 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집안에는 헬스장, 가라오케, 와인셀러, 벽난로 등이 마련돼 있다.
이런 성북동 집들 중에도 차이가 있다. 최고 중의 최고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성가정 입양원~호주 대사관 사이 △성락원(사적 378호) 부근 △길상사 삼거리 일대 △일본 대사관저 부근이다.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사용했던 별궁인 성락원 부근에는 박용오 두산그룹 전 회장, 조석래 전경련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집이 있고 일본 대사관저 부근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이 산다. 길상사 부근에는 정몽윤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김성민 서경대 이사장 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촌은 북악산 자락을 끼고 형성돼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해 모 회장 집을 거래했는데, 계약서에는 분명 방이 4개였는데, 나중에 이사를 해 집을 수리하다 보니 지하에서 방이 3개나 더 나오는 겁니다. 일종의 벙커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집을 지은 회장 선친이 6·25 전쟁을 경험했던 터라 지하 벙커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지하 벙커에는 15일 정도를 지낼 수 있도록 주방과 세면시설이 모두 비치돼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한 개의 방에 비밀 통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비밀통로를 따라가 보니 북악산이 나오더군요. 전쟁이 나면 도주하기 위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집을 판 회장도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최근 성북동에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영향으로 보유세가 늘어난 데다 자녀 대부분이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어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두 채씩 매물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TIP
외국인들이 살고 싶은 곳 ‘0순위’
국내에 진출한 대형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
(CEO)들에게 성북동은 최적의 주거지다. 북악산과 가까워 주거 환경이 쾌적하며 회사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다. 현재 성북동은 외국인 임대 사업이 활성화돼 있다.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이른바 ‘깔세’가 보편화돼 있으며 임대료는 연 2억4000만 원선이다. 대부분 3년 계약을 해 집주인들은 집을 빌려주고 3년 치 임대료로 7억2000만 원을 받는다.
성북동에 사는 한국인들에 비해 외국인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성북동 주변에서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거리 정화 사업 등 사회 봉사활동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주한 외국 사절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국제부인회(SIWA)가 대표적인 단체다.
풍수지리로 본 성북동
성북동은 성곽을 쌓은 남쪽 능선이 백호가 되고, 북악 스카이웨이 능선이 청룡이 돼 부지를 감싸는 전형적인 명당이다. 중심 지맥은 마전터를 향해 동남방으로 뻗었는데 마전터 가까이에는 선잠단(先蠶壇)이 있었다. 선잠단은 누에 치는 것을 처음 시작한 중국의 서릉씨(西陵氏)를 모셔놓고 제사 지내던 제단이다. 풍수지리에선 성북동을 전형적인 완사명월형 명당이라고 부른다. 완사명월이란 ‘밝은 달빛 아래에 비단을 펼쳐 놓은 형세’로, 비단은 높은 벼슬아치나 부자만이 입을 수 있는 귀한 옷감이다. 또 성북동은 마을 입구가 닫힌 듯 보이지만 그 안쪽에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어 대를 이어 부를 누릴 수 있다고 풍수지리학자들은 주장한다.
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출처 :서라벌의 별 원문보기▶ 글쓴이 : STERN
|
관련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