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남편복을 모른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위해 담소를 하는 것이다.
보통 남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을 보는 것을 남편복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복이 좋으면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복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는 것이 음양이다.
여자에게 있어 직업복도 있고 돈복도 있고 자식복도 있고 부모복도 있고 여러가지 복이 있는 중에 그나마 남편복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남편복인지 부모가 보는데 있어 남편복인지 친구가 보는데 있어 남편복인지 그냥 이웃이 보는데 있어 남편복인지도 모호할 수 있다.
남편복이 있는 것은 무엇이고 남편복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한 남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타인이 부러움과 선망속에 살아가는 것이 남편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이 찌지리 궁상처럼 산다고 손가락질해도 여자의 입장에서 만족하고 행복하게 여기고 산다면 이것도 남편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이러한 많은 변수를 간단하게 사회적인 기준과 개인적인 기준으로 나누어 생각해 봐도 두가지 다 만족하고 산다는 것은 여자가 만들어 놓은 이상향이고 꿈일 것이다.
누구나 사주팔자는 고정되어 있지만 세월이라는 것은 흐르고 가는 것이니 행하는 것이다.
음양은 세월따라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좁고 넓을 수도 있고 기우는 것인데 어찌 고정되이 남편복을 논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남편복은 모른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두사람이 하나가 되어 알콩달콩인지 아옹다옹인지 살아가는 겉 모양의 남편복을 말하는 것인지, 두사람이 하나가 되려 노력하는 의지로 살다보니 남편복을 떠올리기 민망한 것이 속 셈의 남편복인지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굳이 남편복이 있다 없다를 전달하고자 하면 여자의 입장에서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니 상대적인 음양으로 지리멸렬한 답을 늘어 놓을 뿐이다.
운따라 세월따라 오락가락하는 남편복을 그냥 팔자에서만 남편복을 논하자면
재생관 관인상생하면 얼마나 좋을까?
꿈과 환상으로 태어나지 못한 나의 운명을 탓하지 남편을 탓하지 말것이며 아내를 탓하지 말지어다!
육신의 상생식 관점에서
재관이면
남편을 관이라 하고 재를 여자라고 하면 재생관은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이다.
재가 쇠하고 관왕하면 아내의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니 남편복있다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남편의 입장에서는 변변치 못한 아내의 내조를 받는 입장이니 손해이다.
재가 干에 있고 官이 支에 있다면 이미 손해보는 장사라고 여길 것이고,
년간에 재가 있고 월상에 관이 있어도 손해보는 장사라 여기기 쉬울 것이다.
두사람이 부부가 되어 살고자 하는데 손익을 따지는 장사라고 표현하는 형편없는 글쟁이도 있다.
하물며 재관의 관계에서 정재와 殺의 관계는 소박한 꿈을 빼앗아 갈 것 같은 불평등 조약과도 같다.
관인은 그져 상생이 잘되어야 일간에 이르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이 인성에 이르러 일간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관왕하고 인성이 쇠한 것을 생하면 잘난 남편이 나만 좋다 한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감당하기 버거운 남편을 대하기 황송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관쇠하고 왕한 인성을 생하면 허접한 남편이 나를 사랑하니 가소로울 수 있다.
관(정관)이 인성(정인)을 생하라 했지 殺이 인성을 생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殺은 일단 일간을 극하기 위해 태어난 놈이다.
이때 편인은 부질없는 남편에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나이니 이를 좋다하기는 그러하다.
재생관하고 관인상생하고 사는 모습이 좋다했는데 재가 투간하거나 재왕하면 재극인하기도 쉬운법이다.
재생관은 열심히 내조하는 아내로 살고자 하는 것인데 재극인하면 받자옵기 민망하니 재성만 하겠다는 것인지 남편의 권한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한탄하라는 것인지는 이또한 정편이 그때 그때 다름이다.
식신으로 제살을 하는 것은 내 입맛에 맞게 남편을 길들인 다는 것인데 좋은 것인가 나쁜것인가 모르겠다. 내 입맛에 길들여지면 남편복이 좋은 것이고 길들여 지지 않으면 남편복이 나쁘다고 해야할 모양이다.
자고로 머리털이 있는 짐승은 몸이 길들여 질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길들이고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라 했다. 하물며 식신도 아니고 상관으로 살을 대하였다는 것은 이것은 길들이기 힘든 야생마 같은 남편을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용도 변경해가며 맞추고 산다해야 할지 통변하기도 민망하다.
애인같은 남편인지 남에 편에 있는 남편에게 내편 되어 달라고 미모를 가지고 유혹해야 하는지 돈가지고 살랑거려야 하는지 거참 알수 없는 제스쳐인데 남편을 남의 남편으로 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 남의 남편을 내것으로 하고 살아가는 것인지는 살아봐야 아는 애기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귀신은 씨나랏이라도 잘 까먹는데 나같은 놈은 씨나락도 못까먹으니 하잘것 없는 육신 나부랑이나 이리 저리 훔치고 있으니 음양오행이 주는 진실은 언제 까먹으려 하는지 몰입이 되지 않아 혼이 실리지가 않는다.
목왕절은 목생화를 하고 화왕절은 화생목을 하는 것이다.
목왕절에 목생화하는데 금생수는 요령 피우지 말고 근본이 있는 인물로 살라는 것이다.
목왕절에 목생화하는데 수생목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견고히하고 살라는 것이다.
목왕절에 목생화하는데 화생토는 순박한 기대치를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목왕절에 목생화하는 것은 시대에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열정과 희망이다.
일간이 중요한지 월령이 중요한지 사주팔자가 중요한지 천간이 중요한지 지지가 중요한지 모를 일이다.
목생화를 하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모르고 금생수는 본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나 보다.
하여간 명리는 없는 것을 있다 우기는 학문인데 없는 실체를 말하려니 거짓말 쟁이가 되는 모양이다.
출처 : 남편복에 대하여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