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제목만 걸어놓고 내용없는 글이 쓰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식신이 살을 제하는 것은 미래와 안전에 대한 대비를 말하는 것이다.
살을 식신이 제하는 것은 먼저는 힘들고 나중에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식신이 살을 대하는 것은 위험을 자각하고 위험을 대비하여 안전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살이라는 것이 말대로 위험인지, 위협인지, 물건인지, 사람인지가 다른것은,
살의 모양에 따라서 다른데 살이 근으로 왕하면 독립된 주체로서의 인물이 된다.
살이 재생살로 왕하면 위협적인 것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것이다.
이는 이대적인 이슈를 만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물건에 가까운 것이다.
단지 천간에 있으면 두려움을 만들고 단지 지지에 있으면 고단한 환경이 도래하고,
시상에 살이면 자다가 경기를 하게 되는 것이고 월상에 있으면 차단과 단절을 할 것이다.
년상에 살이면 하늘에 징벌과도 같으니 천재지변이고 예고치 않은 혼돈이니 위험이다.
위치에 따라 모양에 따라 다른 살을 식신이 제하는 것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식신도 모양따라 생김따라 제살하는 형태가 다름이니
양간은 스스로 생하여 살을 제하는 것이고, 음간은 타를 끌여 역공을 하려 할 것이다.
간으로 제하는 것은 의지가 그러하고 支로 制하는 것은 여건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간지로 있으면 의지와 여건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이또한 정인으로 합이나 극된 식이라는 것은 학습되어진 선택적인 방법론일 것이고,
편인으로 극되면 만사가 무용할 것이나 정답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칼질을 하는 것과 같다.
비겁의 생이 식신을 생하는 것이라면 단체나 대타를 끌어들인 것과 같으니 동조자가 있다는 것이고,
제살하는데 재성이 개입되면 서로의 여건에 걸림돌이 생긴것과 같으니 중재자가 필요한 것이다.
식신제살하면 단순히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또한 왕쇠가 존재하니 시간과 공간적인 설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식신의 입장에서 제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가치를 개인적인 편의용도로 바꾸는 것과 같고,
편관의 입장에서 식신이 제살하는 것은 일준화하고 통일시켜 가는데 개인적의 편의를 봐주는 것과 같으니
아파트를 지면 타와 다른 이미지를 주어야 하고, 편의시설을 제공해줘야 하고, 공공의 적으로 하여 더욱
편의롭고,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의식을 일깨우려 하는 것과 같으니 좋은 것은 없고 나쁜 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누구의 입장만 존재하는 것이니 희기를 나누려 하는 무모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자연의 존재로서 아름다운 것이고,
인간은 인간의 존재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려야 하는지는 알수는 없으나 모든것이 나이가 들면 알게 되니
이를 경륜이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불안전하고 불안하나 세월을 겪으며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식신제살하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결정이기도 하다.
밥값을 못하는 노인네가 있다고 하여 이를 제거한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젊은세대가 늙은 세대를 제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식상이 태과한 팔자가 편관운에 도착하여 닳고 닳아서 쓰던 물건을 교체하는 것도 편하게 사는 것인가?
편관이 태과한 팔자가 식상운에 와서 해방되었다고는 하나 벼랑 끝을 걷는 기분을 이해는 하는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달관되면 소탈하게 비영리단체에서 사람의 인권을 찾으려 하는
의지는 인간은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적인 상생이 논리가 앞서는 것인데...
상생하도록 돕는 것은 무모한 것이고 상극하는 것은 유명세를 쫓는 것인가 보다.
식신제살이라는 것이 이미 속전속결하려는 것이고, 안간힘 쓰는 것이고,
개발을 하는 곳에는 소외된 이들도 생겨지는 것이다.
점쟁이가 모두가 평등하게 살기를 주장한다면 이또한 미친짓인가?
가난은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불쌍한 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고속전철이 생겨지는 이세상은 모두가 식신제살의 환상에서 산다.
점쟁이만이라도 도식하며 꿋꿋하게 한땀한땀 인간의 참된 도리를 일깨우는 것은 월권인가 싶다.
헝크러지고 어지러진 속에서도 음양은 존재하고 그 질서는 너무도 질서정연하기만 한데,
자신의 기준으로 질서인양 하는 것이 이미 편견이고 질타를 받을 만한 짓인가 싶다.
도식하는 것은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하고 확인하다 보면 사물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갈길은 천리길인데 가진것이 없고 체력은 한계에 도달하니 허망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다.
숨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알겠는데 모두를 불쌍히 보고자 했으면
가는길에 쉬어가도록 덕담이라도 잘할 것이지 사사로움을 개입시킨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가?
도식이라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이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식신제살은 비행기를 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명분을 주는 것과 같다.
자신이 잘났는지도 못났는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상생이고,
생화되어 개구리 올챙이 적을 기억못하는 것이 인간사인 모양이다.
이를 제하고 살았다 하여 잘난 줄 알고, 극되어 원통하고 분하다 하는 모양이다.
산다는 것은 역시나 자기만족을 하는 가운데 행복인 것이다.
자기 만족을 모르니 이를 자각시켜 일깨우려는 것이 과연 허망한 짓을까?
官은 평등한 것이다. 食은 인권의 소중함이다.
무엇을 위하고 살아야 할지는 미지수나 오늘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법문이 주는 한구절 한구절이 오늘따라 가슴을 애이게 한다.
오늘은 아멘보다는 관세음보살님을 찾고 싶다.
사람의 아집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프고 스산하여 이를 어찌 포기하게 만드나 고민하여 본다.
출처 : 식신제살이란?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