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간명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사주를 신강으로 보고, 조후용신이 병화이고, 경금이 희신이고, 아극자하는 재성운에는 일이 잘 풀릴 것이라 본다" 이런 질의를 받게 되는데 어디서 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답의 범위를 정하기가 곤란하기만 합니다.
우선, 신강이라는 말은 일간이 인성과 비겁으로 하여금 아마도 신왕을 이루었으니 식재관을 능히 다룰 수 있어 식재관운이 기쁘다는 의미의 해석인가 봅니다. 만약 일간이 신약하면 식재관운이 나쁘다는 해석이 될 것이고, 그러하면 중화되는 것이 으뜸이고 또한 조금만 편중이라도 되면 종격을 운운하는 경우를 종종접하게 됩니다.
사주를 접근하고 간명하는 방법론으로 강호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사주 여덟글자에서 일간중심으로 균형을 가름하여 나름 길흉을 예측해보려는 하나의 방법론이긴 하나 단식판단에 불과합니다.
신강 신약에 안주하기 보다는 차라리 한번 더 궁리하셔서 일간이 무엇으로 신왕한지를 살펴보시는 것은 어떤가 싶습니다. 일간이 인성으로 신왕을 이루었을때 식상으로 활동하고 실력발휘로 인한 체력소모를 하는데 있어 보충되어질 수 있다 보시면 됩니다.
또한 인성으로 신왕을 이루었을때 재성은 상식과 지식을 겸비하여 경제적인 벌이활동을 한다는 것인데 차라리 이곳에서 균형을 보시고 재성이 과하면 도포를 쓴 선비님이 물질과 재물을 구하고자 땀내고 살아가고, 인성이 과하면 노동을 기피하고자 작전과 전략을 짜기도 합니다.(물론 상생상극 생화극제라는 논리도 배제한 단식판단입니다)
일간에 있어 천간에 비견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어주는 것은 편관이 있을때 대신 희생해줄 사람이 있다하여 기쁘다하고, 또한 식상을 생하여 내가 해야할 일을 대신 해준다해서 사장님이 되었을때 이때는 나 대신 돈벌어주는 종업원이라 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천간에 비견이 있어 재성을 쟁재하는 경우는 나도 잘 났지만 항시 나보다 조금 더 나은이가 있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나는 일등하기 힘들고 잘해봐야 2등이고 경쟁자속에 들러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천간에 비견이 있어 인성이라는 말은 나와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니 육친으로는 가족이나 형제라고 볼수도 있고, 또한 종교생활이나 같은 고민을 하는 단체나 모임에서의 공동 연구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천간에 비견이 일간을 신강하게 해주기 보다는 천간에 비견은 주체적으로 작용하기 쉬워 오히려 근(根)이나 인성을 나눔으로서 세력을 분산시키는 역활이 우선하니 스스로 일가를 이루기 보다는 가족이나 단체의 힘에 기대는 경우가 더 클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강의 해석은 그져 사건의 동정을 이해하는데 준하는데 확대해서 길흉까지 가름하려는 것은 차라리 동전으로 던져 점치는 것보다 못합니다. 년월의 동정과 일시의 동정에서 선후를 가려 일간의 상황에서 각각의 육신해석은 사는 모양에 불과합니다.
또한, 자축월생은 춥다해서 조후용신을 병화라고 합니다. 조후가 되어서 기쁘고 안되어서 나쁘다고 강호제현님들은 말씀하십니다. 물론 포괄적인 개념에서는 맞다할 수 있으나 이도 한번만 더 궁리하여 절기에 따라 병화의 용도를 가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예로 축월 소설절기 병화는 때에 걸맞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 시절에 맞게 움직이고 활동하게 합니다. 또한 상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미래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려는 긍정적인 의지로 발현됩니다. 만약 없다면 이러한 것에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조후라는 것은 고를조에 기후후짜를 썻는데 이는 날씨나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의 마음가짐의 날씨가 어떠한가를 보는 것인데 축월이면 겨울잠 자는시절이라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벌떡 일어나지 않고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둥, 내가 되겠냐는 둥, 이리재고 저리재다 보니 남들은 결혼해서 처자식이 초등학교가는데 해질무렵이 다 되서야 남들 다 가고 나는 그제사 일어나 움직이려는 것이 병화의 조후입니다.
여튼 병화가 없으면 이러한 때에 맞추어 움직이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기가 쉽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경금이 운에서 올때 좋았다고 해서 경금이 희신이라는 것은 논리에 부합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희신이라는 의미에 대해 좀더 궁리를 해보셔야 합니다.
용신을 생해서 희신의 역활이 다름이고, 격을 생해서 희신이 다름이고, 일간을 생해서 희신이 다름이고, 일간이 설기될때 다시 일간을 생할때가 다름이라 각각에 따른 희신의 역활이 다름이기는 한데 단순히 희신은 든든한 배경과 후원자와도 같습니다.
축월에 경금은 빈 구유통을 채우려는 것과 같아 마치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또한 목이 있으니 그러한 것이지 경금 하나로는 그러한 역활이 나오지 않으며 그동안에 나름 성실히 산것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육친의 덕이 있고 없고를 논한다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나 부모님이 산통을 참으며 낳아 준것이 복이고, 또한 먹어주고 키워준 것이 덕이고, 이웃하는 이가 무지함을 일깨워주려는 것이 인덕인데 자신이 그들의 뜻을 알지 못하고 소통하는 방법론이 부족하여 인덕이 없음에 푸념은 할 수 있으나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복덕을 차는 의지입니다.
인간사는 산다는 것이 큰 행운이고 복덕입니다. 하늘은 때가 되면 해가 뜨고 때가되면 해가 지니 참으로 고맙기가 그지 없습니다. 땅은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려주며 기회를 제공해주니 감사하고, 이웃하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은데 내 의지가 이 모두를 품지 못하는 것은 축월 무토가 자기 안에서 머물라고 하는 한계선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운명을 본다는 것은 숙명을 이해하고 수긍하며 더하여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살피고, 시절에 맞게 행하고 있는 것인지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은 무엇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묻고 답하며 행하는데 시계나 나침판으로 활용되어질때 가치가 있습니다.
출처 : 간명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