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을 논함에 있어서 서락오선생은 자평진전평주(子平眞詮評註)에서 억부(抑扶)와 병약(病藥)과 조후(調候)와 통관(通關)과 전왕(專旺)으로 나누었는데, 조후와 병약과 통관을 살펴본다.
*조후용신(調候用神)
궁통보감(窮通寶鑑)에서 조후를 강조하고, 자평진전(子平眞詮)에서는 목화상관(木火傷官)과 금수상관(金水傷官)은 절실히 조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고로 금수상관희견관(金水傷官喜見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래에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목화상관(木火傷官)
① ② ③
丙 甲 癸 丙 甲 甲 癸 丙 丙 甲 癸 丙
寅 子 巳 午 子 戌 巳 午 寅 寅 巳 午
첫 번째와 두 번째 명조는 癸水가 설기(洩氣)하는 火를 극제하고 일주를 생해주니 진상관용인격(眞傷官用印格)에 癸水가 용신이나,
세 번째 명조는 癸水의 뿌리가 없으니 진상관용겁격(眞傷官用刦格)에 寅中甲木이 용신입니다.
세 번째 명조는 설기(洩氣)를 다스리는 약(藥)이 없으니 유병무약(有病無藥)입니다. 고로 진상관용겁격(眞傷官用刦格)은 진상관용인격(眞傷官用印格)보다 격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④ ⑤ ⑥
甲 甲 癸 丙 丙 甲 甲 丙 丙 甲 壬 乙
子 子 巳 午 寅 午 午 午 寅 寅 午 卯
네 번째 명조는 가상관격(假傷官格)에 丙火가 용신이고,
다섯 번째의 명조는 종아격(從兒格)이며, 여섯 번째의 명조는 신왕하니 가상관격(假傷官格)에 丙火가 용신입니다.
이 명조들에서 하월(夏月)에 水가 용신인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명조뿐입니다. 그
러나 이 명조들은 조후로 용신을 취한 것이 아니고 사주에 火가 병(病)이니 병을 극제하고 일주를 생하는 인수(印綬)를 취했을 뿐입니다.
인수(印綬)가 용신인데 조후를 겸하였으니 한난조습에 있어서 중화(中和)를 이룬 귀격입니다.
⑦
丙 乙 甲 癸
戌 亥 子 亥
이 명조는 인수(印綬)가 극왕(極旺)하니 인수를 극하는 재(財)가 용신입니다. 고로 재인불애격(財印不碍格), 상관생재격(傷官生財格)에 戌中戊土가 용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후(調候)로 용신을 취하여 丙火를 용신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금수상관희견관(金水傷官喜見官)
① ② ③ ④
丙 庚 戊 庚 丙 庚 戊 庚 庚 庚 戊 庚 丙 庚 戊 庚
戌 子 子 子 戌 申 子 申 辰 辰 子 申 子 子 子 子
첫 번째 명조는 진상관용인격(眞傷官用印格)에 戌中戊土가 용신이고,
두 번째 명조는 시상일위귀격(時上一位貴格)에 丙火가 용신이며,
세 번째 명조는 가상관격(假傷官格)에 子中癸水가 용신이고, 네 번째 명조는 종아격(從兒格)입니다.
두 번째의 명조도 조후(調候)로 용신을 취한 것이 아니고, 용신이 조후를 겸하여 한난조습(寒暖燥濕)에 중화를 이루었으니 용신이 빛날 뿐입니다.
사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중화(中和)인데, 조후는 한난조습(寒暖燥濕)에 있어서만의 중화일 뿐입니다.
조후가 용신인 것이 아니고 용신이 조후를 겸하였을 뿐입니다.
조후(調候)로 용신을 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다만 용신이 조후를 겸하였으면 한난조습에서 중화를 이루니 매우 귀한 사주입니다.
위의 명조 중에 조후가 용신이 된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용신이 조후를 겸하고 있는 경우만 일부 있을 뿐입니다.
궁통보감(窮通寶鑑)에서 ‘木이 하월(夏月)에 생하였으면 절실히 水가 필요하다’는 것은 하월(夏月)에는 설기(洩氣)가 심한데 水가 나타나 그 火를 극제하고 일주를 생하면 귀격(貴格)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일주가 이미 강하면 火가 용신이지 결코 일주를 생하는 인수(印綬)가 용신인 것은 아닙니다.
궁통보감(窮通寶鑑)에서 주장하는 바의 이면(裏面)을 보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명리를 결코 깨우칠 수 없습니다.
위의 명조는 모두 상관격(傷官格)이나 격국이 모두 변화하였는데, 자평진전(子平眞詮)에서 주장하는 바의 이면(裏面)을 보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명리를 결코 깨우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제자들을 위하여 ‘제대로 보는 자평진전(子平眞詮)’과 ‘제대로 보는 궁통보감(窮通寶鑑)’을 쓰게 된 겁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후로 용신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다만 용신이 조후를 겸하면 한난조습에서 중화를 이룰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명(元命)에 나와 있지도 않는 오행을 용신으로 취하거나, 무근(無根)이면서 작용도 하지 못하는 오행을 용신으로 취하는 것은 명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읽고 다시 읽으시면서 조후(調候)에 대하여 성찰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