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神이란 무엇인가?
用神의 ‘用’은 ‘쓰인다’는 뜻이며, 관형어이다. ‘쓰이는 神’ 또는 ‘쓰는 神’이란 뜻이다. 神은 오행을 말한다. 그러면 ‘쓰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日干’이다. 사주가 쓰는 것이 아니다. ‘일간이 필요해서 쓰는 것이 용신’이란 말이다.
사주를 조화롭게 해 줘야 일주가 편하다. 그래서 용신을 정하는 것이다. 용신을 위해서 용신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용신은 사주가 정한 것이 아니라, 일주가 편하려고 일주가 정한 일꾼이다. 이 일꾼에게 주인이 종속돼야 한다면 일주가 구태여 용신을 둘 필요가 있겠는가?
왕쇠 판정을 왜 하는가? 그리고 그 왕쇠 판정의 기준을 일간에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年干, 月干, 時干을 기준으로 왕쇠판정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하필이면 日干을 중심으로 왕쇠 판정을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거기서 나온 게 용신일 뿐인데 어째서 용신이 사주의 주인이 되고 일간이 용신의 취향을 따라야 된단 말인가?
일전에도 말했듯이 자평명리학은 일간 중심의 명리학이고, 일간의 추길피흉을 다루는 학문이다. 용신의 추길피흉을 다루는 학문이 아닌 것이다.
즉, 일간이 주인이고 용신은 그 부속물과 같으며 용신은 일주가 부리는 하인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말하면 用神은 하나의 기준이나 잣대이지 최종 목적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간의 길흉을 판정하는 기준이 되는 오행일 뿐이지, 용신이 사주의 길흉을 도맡아 배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운이 흐름에 따라 용신이 강해지거나 허약해지면 길흉이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특히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용신이 약해지는 운이 온다고 해서 일주에게 반드시 흉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주에게 오히려 吉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인가? 바로 用神을 설하는 오행이 喜神이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식신생재’나 ‘상관생재’의 사주가 그렇다.
食傷이 用神인 강왕한 사주는 財星 운에도 발복하게 되어 있다. 만약 用神을 生하는 것만이 반드시 희신이 되야 한다면, 식상생재격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주가 된다.
아래는 역시 천미에 등장하는 사주들이다. 용신을 생하는 비겁이 희신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丙 己 庚 己
寅 亥 午 巳
‘...... 乙丑 운이 되어 운이 북방으로 흐르면서 앞의 병은 모두 다 나았고 甲子와 癸亥의 수운을 만나면서 나이가 들어 더욱 건강해지고 또 첩을 얻어 아들도 얻었으며 재물도 수만 금을 벌었다.’
甲 丙 庚 己
午 午 午 巳
‘火土의 상관생재격이다. 처음 己巳, 戊辰 운에서 화를 설하고 금을 생하니 부모 유산이 풍성했는데, 丁卯 丙寅 운을 지나면서 <토금의 희용신>이 모두 상하여 연이어 화재를 만났고, 또 두 처와 네 아들을 극했고, 가업은 완전히 깨어졌다. 乙丑 운이 되어 북방 습지로 가자 濕土가 불을 어둡게 하고 금을 생조하고 다시 또 합화로 청하게 되어 경영하여 큰 이익을 얻었고, 결혼하여 아들도 얻었으며 다시 집안의 명성을 드날렸는데, 甲子 癸亥는 水運이라 土를 적셔주고 金을 길러주니 재물이 수만 금이나 쌓였는데 만약 이 사주를 비천록마라고 한다면 수운은 매우 불리할 것이다.’
乙 丁 戊 戊
巳 巳 午 申
‘火土상관인데 일주가 극히 왕하니 상관으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기쁘다. 다시 묘하게도 재성을 얻어 쓰니 庚申과 辛酉 대운의 어린 시기에 창업해서 수만 금을 벌었는데, 壬戌에는 다행히도 水가 통근을 하지 않아서 비록 고통은 있었어도 큰 근심은 아니었는데, 癸亥운이 되자 火의 열기를 격하게 하여 재의 기운을 설하니 사망했다.’
丙 丁 乙 壬
午 丑 巳 午
‘정화가 巳月에 나서 주중에 겁재가 왕하고 또 인성까지 있으니 천간 임수는 무근하여 쓰지 못한다. 가장 기쁜 것은 丑土 속에 있는 재성인데 깊이 고에 들어있고 축토는 습토이니 능히 화기를 설하기도 한다. 다만 쟁탈의 바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생하고 생하는 옳음을 얻었으니 이로 인해서 초운의 운이 丙午와 丁未대운이라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나, 반가운 것은 중간의 운이 30년 간 서방의 土金地여서 劫財를 化하여 財星을 생조하니 십여만 금을 벌었다. 그래서 길신이 깊이 들어 있으면 죽을 때까지 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위의 사주들에게서 용신을 생하는 비겁을 희신이라 하지 않고 재성을 희신으로 잡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임철초에겐 천미에 희신의 개념을 단순 논리로써 잘못 적어 두었던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천미 곳곳에 퍼져있는 수많은 식상생재 사주와 신왕하여 식재가 용신이 된 사주 등이 있음을 깜빡했든지 아니면 착각을 했든지 그도 아니면 잘못 알고 있었든지 무슨 연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일주의 희신과 용신의 희신을 구분하는 의도였다면, 그 것은 어느 정도 수긍해줄 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으니, 임철초는 용신과 희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를 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일간 중심의 용희신의 존재 원리를 망각한 채, ‘용신을 생하면 다 희신’이라는 용신 중심의 단순 논리를 펼친 것이다. 그래서 인당이 일개 ‘촌부술사’라 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식상생재 사주와 식재가 용신인 사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천미를 공부하면서 다들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추종자들은 교주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라고 믿겠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래를 보라, 강왕한 사주에 비겁을 희신으로 보고 있는 적천수천미가 위의 사주들 해석과 관련해서 얼마나 모순에 찬 형편없는 저작물인지?
丙 甲 戊 庚
寅 寅 子 寅
‘병화 용신, 겨울의 불이 본체가 허약하니 寅木으로써 희신을 삼고 월의 무토는 능히 수를 제어하고 또 능히 금도 생하니 그래서 한신이 되는데, 수는 구신이 된다.’ 고 하였다.
庚 甲 丁 甲
午 寅 卯 子
‘甲木이 卯月에 나서 지지에 녹인을 만나고 천간에는 비견이 투출되니 왕함이 극에 달했다. 시상에는 경금이 무근하게 있으며 기신이 되었고 월간의 정화가 용신이 되는데, 통휘지기이다. 그래서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아깝게도 <토 한신>이 없으니 운이 壬申의 金水로 흐를 적에 체용이 함께 손상되어 화를 면하기가 불가능했다.’
임철초는 경금을 기신이라 했고 오히려 토를 한신이라 했다.
자월 갑목, 묘월 갑목 이 두 사주가 위의 식상생재 사주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자수 인성이 강한 것이 다르다면 강한 것을 극제하는 토를 쓰면 되는 것이지 왜 유달리 이 두 사주만 일간이 싫어하는 목을 희신으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病’의 개념에 대해서도 똑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用神이 合沖되면 병이 있다고 하게 된다.
子水는 병이 아니다. 용신을 직접적으로 위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한 기신이다. 그리고 일주의 흉은 목이 강함에 있다. 용신의 병은 없다. 경금은 목기를 제어하는 좋은 점이 분명히 있다.그러나 자수 기신을 생하므로 한신이 되는 것이지, 경금이 절대 병이나 기신이 될 수는 없는 사주인 것이다.
그러나 다만, 재성이 왕신을 충극하여 흉이 될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관이 많다면 재성 운이 생관하여 나쁠 경우도 있다. 그래서 희신이란 종잡을 수 없는 오행이며 희신을 정하는 법칙이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사주 상황에 따라서 제각기 달라지는 것이 희신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우는 결코 비겁이 희신이 아니다.
‘화 용신이 강해서 비겁 목운에 큰 흉은 없고 평하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용의는 있으나, 신왕사주에 비겁 木이 희신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고서라고 해서 100% 진리만 수용한 책이 아니란 것이다. 상식 밖의 이론을 펼친 임철초를 ‘촌부술사’라 평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가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후학이 바른 이치를 깨닫고 올바르게 다시 배우면 그만인 것이다.
고인을 밟고 올라서서 이름을 날릴 필요도 없다. 잘 맞추어서 유능한 술사가 돼야지, 이론 백날 잘 펼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당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