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여자를 만나면?
역학원 강의 첫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원장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강생들 20여 명이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입니다. 여자수강생의 전화입니다. 차가 밀려 지각을 하고 있으니, 과목의 진도를 자기가 올 때까지 나가지 말아달라는 애교 섞인 부탁을 하는 듯 합니다. 그런 부탁을 하는 여자의 뱃심도 대단하고, 그런 부탁을 웃음으로 들어주는 원장의 관용도 대단합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주장이 당당한 여인을 병화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목화토금수 오행중에 화에는 양의 불인 병화가 있고 음의 불인 정화가 있습니다. 병화는 태양 같은 강력한 열기가 있어 적색경보를 느끼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자기 제일주의자이며, 자기 자신이 원칙이며 자기 주장에 당당한 양의 불입니다. 가까이하면 불에 데입니다.
그네를 병화라 부를 만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그네가 주위 사람을 장악하려고 자기 주장이 강할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거부감을 느낍니다. 거부감에 맞서게 되면 충돌이 일어나니 병화 여인이 나오는 날이면 마주치기 싫어서 피하는 여인도 생겨납니다.
병화는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사무실을 차려 영업을 잘하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 지역 부동산 중개소가 운영비 조차 건지기 허덕이지만 병화는 깔깔깔 웃으며 지금 같은 비수기가 바로 돈을 벌 때라고 말합니다.
건설회사에서 재건축 재개발 20여 년 담당하다가 이제 와서 구차스럽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역학을 배우는 내 얼굴에 모닥불이 피는 것은, 좋은 시절에 돈 좀 벌지 그랬느냐는 그 여인의 말이 너무 지당하고 내 일에 묵묵했던 세월이 이제 와서 후회를 해도, 지금 그 시간이 다시 와도 똑같이 무능할 내 자신을 알기에, 나는 그 여인의 즉흥적인 말이 달궈진 인두로 내 가슴을 지져대는 듯 합니다. 무능한 자에게도 자신을 무능하다고 느낄 정도의 눈치는 있게 마련이기에.
역학을 1년 남짓 배운 그 여인은 벌써 복채까지 받으며 남의 사주를 봐주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 실력을 알 수는 없으나 사람들이 한 번 만나 다른 사람을 소개를 할 정도라면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비법이 틀림 없이 있겠지요.
무엇보다 그 여인은 자신 있게 밀어 부치는 성격 탓인지 모릅니다. 사주쟁이에게도 강한 확신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할 때가 있는 데 그 여인은 그 점 아주 강합니다.
남의 사주를 자신 있게 보아줄 실력이 완성되었다면 역학원에 다시 와서 공부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더 배워야 할 자신을 알기에 학원에 나오는 것이겠지요.
자기나 남에게 당당한 여인은 자기 가족이나, 남편 이야기를 절대 안 합니다.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을 합니다. 역학원에서 가르치는 명리학, 육효, 육임까지 마치 탐내는 물건을 꼭 챙겨야 하듯 공부 욕심이 대단합니다.
20여명 수강생 중에서 그 여인의 목소리가 제일 큽니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고, 자기 고집이 분명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팔자 소관이니 아무도 못 말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으로 새기나 이 여인은 입으로 터트리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끼지만 세상살이가 워낙 그런 것이 아닌가요. 자신만만한 태도는 내가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보기만 해도 동반효과를 타서 나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과 내 자신의 처지로는 어림도 없지 하고 느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은 역학을 배워 돈 몇 푼 벌어 생계를 유지할 '쫀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달에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황당하도록 자신 만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고개 숙인 남자들만을 만나다가 이 여인을 만나서 환상적이고 요지경속인 재미를 느낍니다.
여인은 자신에 차있는데 남자들은 고개 숙이고 다니니 세상이 요지경인지 남녀 팔자가 뒤바꼈는지 모르겠군요.
자신에 차 있는 모습은 감염효과가 있습니다. 나도 여인이 꿈꾸는 그 날이 오는 꿈을 꿔봅니다. 꿈, 그것은 이루워지기에 소중하고, 황홀한 착각일 수 있는 희망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꿈을 말하고 그 꿈은 '사스'처럼 전염 효과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