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쌍꺼풀 없는 밋밋한 눈이 불만이었던 최모(23ㆍ여)씨. 취업을 앞두고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뜻밖에도 “눈꼬리가 곧게 뻗어있어 취업과 결혼운이 좋으니 눈은 고치지 않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대신 “턱이 약해 재복과 말년운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씨는 “성형은 눈, 코, 입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며 “상담을 받고 나니 턱수술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상성형이 뜨고 있다. 단순히 잘 생긴 외모보다는 호감을 주면서도 ‘운’이 따르는 인상을 선호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서울 강남에만 성형에 관상을 접목한 성형외과가 20여 곳에 이른다.
3월 대학 입학을 앞둔 안모(18)양은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친목 모임에서 “입술이 너무 얇으면 애정운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손을 잡아 끈 것.
의사는 “예전처럼 열이면 열 유명 탤런트처럼 해 달라고 했지만 요새는 어떤 인상이 좋은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관상성형에는 남녀가 따로 없고, 직업 구분도 없다. 올해 신학대를 졸업하는 예비 목회자 신모(29)씨는 날카로운 눈매, 낮은 코 등 험상궂은 외모가 늘 부담이었다.
신씨는 “눈매를 부드럽게 하고 광대뼈를 낮추면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수술을 받았다”며 “이제는 대중 앞에 서는 게 전혀 꺼려지지 않는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이모(44)씨는 지난해 초 서울 강남에서 고급 자동차 정비업을 시작했다. 툭 튀어나온 사각턱이 주는 인상이 나빠서인지 고객을 끌기가 쉽지 않았다.
이씨는 “아는 의사로부터 ‘턱의 형상이 사업운을 방해하는 관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속는 셈 치고 수술을 받았다”며 “그 덕분인지 아닌지 몰라도 이전보다 사업이 나아졌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국내에 관상성형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이다 . 한국인의 얼굴 골격은 광대뼈(양의 기운)와 턱(음의 기운)이 많이 나와 있어서 서양인에 맞춘 황금률을 그대로 따르다가는 음양오행의 조화를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이다.
기존의 미용성형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인 셈이다. 박현 성형외과 원장은 “얼굴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얼굴의 음양오행을 살펴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 관상성형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관상성형을 위한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노력도 남다르다. 사주학과 명리학, 관상학 공부에 열심이다. 관상학과 성형의 상관 관계에 관한 책을 펴낸 의사도 있다. 관상전문가가 있는 성형외과도 적지 않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관상을 보고 있는 역술인 배준범(42)씨는 “아직까지 관상성형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우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사전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믿음이 생긴 손님들은 병원을 찾아 구체적인 상담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성형외과와 점집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도 한다. 서울 신촌에서 사주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수현 씨는 “운세를 보러 오는 손님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관상풀이를 해준다”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손님에게 잘 아는 성형외과들을 소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행복찾기 신경정신과 이창한(40) 원장은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성형에 관대해진데다가 경제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를 주술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관상성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원장은 “그러나 관상성형을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볼 수도 있다”며 “다만 노력한 만큼 얻게 되는 영어공부와 달리 성형수술은 그 결과를 전문의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하므로 수술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아이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