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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와 주역의 관계 |
깡통박사
2017-09-30 (토) 08:33
조회 :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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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의 여러 가지 다양한 술수는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보완성의 근원에는 심오한 사유와 변화의 철학을 담고 있는 주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 관계를 살펴보자.
삼십육계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알듯말듯한 말이 있다. "육육삼십육(六六三十六), 수(數)에 술(術)이 들어있고, 술 가운데 수가 들어있다. 음양(陰陽)은 변화의 원리가 있고, 만물의 기능(機能)은 그러한 변화의 섭리(燮理) 속에서 발생한다. 기능은 저절로 자체적으로 생성이 되지 않으며, 기능이 생성되면 이미 처음의 모습은 사라진다."
이 말의 출전은 주역이다.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역경(易經)》에는 태음(太陰)의 수(數)를 "6"이라고 한다. 6을 서로 곱하면 "36"이 된다. "36계"는 각 계를 압축한 36가지의 표현으로 개념화되었다. 이러한 개념화된 핵심어를 차용(借用)하면 여러 가지 형태의 음모(陰謀)와 위궤(僞詭)를 도출할 수가 있다.
"수(數)"는 양사(量詞)이자 기능의 변화를 헤아리는 개념으로 객관적 실재를 의미하는 일종의 부호이다. "술(術)"은 계모 또는계략을 가리키며, 객관적인 실재에 내재된 복잡하고 은밀한 모략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략의 운용은 객관적인 사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음양(陰陽)'은 객관적인 사물이지만, 조화(調和), 화해(和諧), 인신(引伸) 등의 작용이 있어야 인식할 수가 있다. '기(機)'는 기변(機變) 즉 임기응변, 기모(機謀) 즉 사태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전술, 기우(機遇) 즉 찬스를 포착하는 능력 등을 의미한다. 기(機)는 객관적 사물의 모순돠 대립을 통일하는 규율에 따라서 어떤 기회를 포착하여 모략으 운용할 때 필요하다. 모략(謀略)과 기우(機遇)는 허황된 상상과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은 망상에 의존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
36계의 유래와 의의
'육육삼십육(六六三十六)'은 여러 가지의 계책을 간략하게 줄인 말이다. 36가지의 계책은 명확한 수적(數的)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계책과 계모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36계'라는 명칭은《남제서(南齊書) 왕경칙전(王敬則傳)》에 처음 나타난다. "시중(侍中)은 이렇게 말했다. '단공(檀公)의 삼십육책(三十六策)은 도망가는 것이 최상의 계책이었다'" 여기서 말한 "삼십육책"은 곧 "삼십육계"를 가리킨다. 시중이 말한 단공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책의 문맥과 대화의 정황을 미루어, 아마도 남조(南朝)의 명신(名臣) 단도제(檀道濟)를 지칭하는 것 같다.
단도제는 오늘날 산동성 금향현(金鄕縣)인 고평금향(高平金鄕) 사람으로, 오늘날의 강소성(江蘇省) 진강(鎭江)인 경구(京口)에서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송무제(宋武帝) 유유(劉裕)의 군문(軍門)에 투신하여 점차 가문을 일으켰으며,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공작(公爵)에 봉해졌으므로 단공(檀公)이라 한다. 단도제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위명(威名)을 떨쳤다. 단도제의 주요한 공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5가지가 있다.
1. 유유가 북벌을 할 때 낙양을 수복하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다. 사람들은 단도제가 포로들을 죽여서, 경관(京觀-시체를 封土로 이용하여 높은 분봉을 만든다는 말로서 현란한 무공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을 축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도제는 "죄를 벌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로 오늘이 마지막이다"라 하고, 포로를 모두 석방하여, 중원의 민심을 크게 얻었으므로 "귀자심중(歸者甚衆)"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2. 소제(少帝) 유의부(劉義符)가 지나치게 유희(遊戱)를 좋아하자, 집정(執政) 서이지(徐 之)가 보정대신(輔政大臣)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소제를 폐위시켰다가 나중에 다시 복위시켰다. 이 과정에서 동료 보정대신 사회(謝晦)와 함께 생사가 달린 상황이라 생각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노심초사하였으므로, "침편수숙(寢便睡熟)"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3. 송문제(宋文帝)가 서이지와 부량(傅亮)을 죽이려고, 단도제에게 사회를 책임자로 임명하자는 논의를 했다. 그러나 단도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전에 사회와 함께 북벌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 가지 계책 중에 아홉 가지는 그가 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재략(才略)이 뛰어나고, 군사를 조련하는 것에 밝아서, 적을 대할 때 어지간해서는 어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군(孤軍)을 거느리고도 승리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군대의 일에는 두려움이 없어서는 아지된다고 했습니다. 신은 사회야말로 지혜롭다고 생각했으며, 사회는 신을 용맹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왕명을 받들어 반적을 토벌하러 가면, 조그마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겁을 집어 먹어서, 진을 펼치기도 전에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과연 단도제의 말처럼 사회는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4. 단도제는 도독(都督)으로 원정군을 이끌고, 북위(北魏)를 정벌하고자 산동성에 이르렀는데, 마침 군량(軍糧)이 고갈되어 철병(撤兵)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군량이 부족하므로, 단도제에게 북위에 투항하자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었다. 북위군이 급박하게 핍박해 오자, 단도제의 군대는 안팎으로 곤란을 겪게 되었고, 두려움에 빠져 더욱 전의를 상실했다. 단도제는 사람을 시켜서 밤중에 몰래 모래를 넣은 가마니를 쌓아 두게 하고, 그 위에 남은 쌀을 조금 뿌리라고 지시했다.
날이 밝자 북위군은 적진에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남제군에 군량이 아직 남아 있으므로,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투항자들을 군중이 보는 앞에서 참수했다. 북위군이 더 이상 핍박해오지 않게 되자, 외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남제군은 안정이 되었고, 투항자들이 참수를 당하는 것을 보게 되자, 오로지 살 길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서 내우마저 사라졌다.
단도제는 아군의 군사가 북위군보다 월등히 적었기 때문에, 결국은 전투를 벌이지는 않고서는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모든 군사들에게 갑옷을 입게 하고, 자신은 흰옷을 입고 수레에 올라탕 채로 서서히 포위망으로 다가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목표지점이 다가오자 더욱 천천히 움직이게 하여, 북위군으로 하여금 매복(埋伏_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적이 머뭇거리는 동안 단조제의 전군은 무사히 포위망을 탈출을 할 수가 있었다.
5. 단도제의 위엄과 명성이 나날이 높아지자, 저정에서는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런 말을 하였다. "어찌 사마중달(司馬仲達)을 알지 못하는가?" 삼국시대에 위(魏)를 멸망시키고 진(晉)을 세운 사마의(司馬懿)를 단도제와 비교했던 것이다. 당연히 유씨종실은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송문제가 병이 났을 때, 팽성왕(彭城王) 유의강(劉義康)이 단도제를 속여서 유인하고, 정위(廷尉)에게 그를 체포하여 죽이라고 하였다. 체포를 당했을 때 단도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곧 만리장성이 무너질 것이다" 과연 단도제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북위군은, 말을 몰고 와서 장강(長江)의 물을 마시게 하였다.
이상 다섯 가지 일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모래가마니를 쌓았던 것"과 "흰옷을 입고 수레를 탔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단도제가 사용한 삼십육계 가운데 가장 마지막 계책인 "주위상책(走爲上策)" 즉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계책이다. 왕경칙(王卿則)이 말한 "단공삼십육책(檀公三十六策) 주위상계(走爲上計)"는 이 일을 말하는 것이다. "삼십육책(三十六策)"이라는 말에서 보다시피, 이 밖에도 다른 35가지의 계책이 있다.
언제 어떻게 '삼십육계'가 오늘날처럼 36가지 계책으로 체계화 되었을까? 성어(成語)를 살펴보면, 최소한 송대(宋代) 이전은 아니다. 적어도 그 이전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36계라는일정한 체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송대 이전에도 36계에 포함된 몇 가지의 계모가 존재했다. 나중에 사람들이 이것을 정리하고 새로 보충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삼심육계가 완성된 시기는 명대(明代)로 생각된다.
지금의 36계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 졌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유전(流傳)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끊임없이 정리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므로, 중국고대의 지혜가 결집된 보배임에는 틀림이 없다.
36계는 각각의 성어로 이루어진 일정한 이름이 있으며, 《역경》의 괘가 지닌 뜻으로 그 의의를 삼았다. 역경에는 기수(奇數) 즉 홀수를 "양(陽)"이라 하고, 우수(偶數) 즉 짝수를 "음(陰)"이라 한다. 음괘(陰卦)는 "곤(坤)"을 처음이자 으뜸으로 삼으며, 곤괘의 수는 '6'이다. 괘마다 6개의 효(爻)가 있고, 또 64괘 중에도 음괘는 36개이다. 36계를 "六六三十六"이라 한 것은 이러한 이치 때문이다.
《주역》은 신비로운 색채가 있는 고서(古書)로서, 중요한 경전이기 때문에, 《십삼경(十三經)》 가운데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진다. 한위(漢魏) 시대 이래로, 치국(治國)을 위한 인재를 선발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역대로 관리들이나 지식인들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기본지식이기도 했다.
경전에 주석을 달고 그 뜻을 풀이한 저작들이 대대로 나타났으며, 그 중에서도《주역》에 관한 연구가 으뜸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주해역(注解易)"은 1천여종이 넘는다. 따라서 주(注)와 해석이 각자 달라서 통일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자(仁者)는 인(仁)을 보고, 지자(智者)는 지(智)를 보는 것처럼, 《주역》의 풀이되지 않는 것들도 끊임없이 연구하면 풀리게 될 것이다.
《주역》에는 상수(象數)라는 개념이 있다. 주역의 주석가이자 해설가로서 이름이 높은 고형(高亨)은 이렇게 말한다. "상(象)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괘상(卦象)이다. 괘위(卦位) 즉 팔괘(八卦)와 64괘의 상을 사물에 대입하고, 그 위치와 관련짓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효수(爻數)로서 효의 위치와 차례를 사물의 위치와 차레에 관련짓는 것이다." 따라서 "상수"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인 발전규율을 알 수 있는 일종의 수단이 되며, "상수"를 추리하고 연역하면, 사물의 객관적 규율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이 글에서 말한 "수(數)"의 근본적인 의의이다.
'술(術)'은 책략(策略) 또는 수단(手段)을 지칭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비(韓非)의 말을 인용해 보자. "술(術)이란 가슴속에 감추고 있으면서, 신하를 부리는 수단을 말한다" 한비의 말은 공개적이 아닌 음모라는 뜻이다. 한비는 권(權), 법(法), 세(勢), 술(術)을 서로 결합하여 통치를 하는 것이 전제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한비의 다른 정의를 더 보탠다. "권(權)은 군주만이 가지는 것이다."
"권은 하나 뿐일 경우는 강하지만 둘로 나누면 약해진다."
한비가 말한 이상의 두 마디는 전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의 개념이다. 그는 최고의 통치권력은 군주가 독점을 해야 하며, 군주는 완벽하게 그것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분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줄 필요가 있지만, 항상 그것을 회수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즉 권력의 자루를 꼭 잡고 있어야, 군주적 통치를 실현할 수가 있으며, 국가는 항상 안으로는 군주의 위세를 굳건히 하고, 밖으로는 군주의 권세를 신중히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요구를 한다.
"세(勢)는 왕권의 핵심이다"라는 말은 군주가 권력의 주관적 객관적 조건을 완전하게 장악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세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권(權)'과 '세(勢)'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세를 영혼으로 본다면, 권은 신(神)에 해당된다. 즉 세는 권을 사용하는 능력이다. 권이 있더라도 세를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지혜를 갖추고 있더라도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법(法)이란 도서(圖書)에 기록하여 관부(官府)를 설치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반포(頒布)한 것다"라는 말은, 국가가 강제력을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법이라는 뜻이다. 즉 사회관계를 확정하고, 사람들의 언행을 규범화하며, 통치자의 의지가 전신에 퍼져나간 신경처럼 절대적인 작용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도(道)는 법에서부터 나오며, 국가의 근본이다"라는 말처럼, 법은 계급통치의 근본수단이다.
'술(術)'은 '법'과 달리 공개적이지 않아서, 적용될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이며, 구체적으로 모순을 해결하는 책략과 수단이다. 전제주의 정치체제에서 술과 법이 서로 상충될 때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법을 버리고 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술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이 서로 상충을 할 경우는 법을 빙자하여 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제주의 정치체제에서 술을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최선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대사(大事)를 그르쳤다는 인식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법을 중요한 활용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술은 친족이나 아끼는 사람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도 알 수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술은 위궤와 교활한 수단과 관계가 많다. 이러한 술의 특성 때문에, 36계에는 대부분 술의 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기(機)'라는 영어를 검토해보자. 한대의 허신이 쓴 《설문(說文)》에는 기(機)를 "어떤 일을 일으키는 주체"라고 했다. 기(機)는 본래 화살의 위쪽에 있는 기관인 격발장치를 가리키며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였다.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추요(樞要), 관건(關鍵), 지교(智巧), 흔적, 형세(形勢), Timing 등의 함의(含意)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서이 글에서 말하는 기는 임기응변, 상황에 따른 계모(計謀), 적절한 시기와 찬스 등을 가리키며, 현실적 정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처하는 대응능력을 의미한다.
기는 없는 곳이 없으며, 주관적 판단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정황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이 글에서는 '기'라는 존재를 대단히 중요시하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기를 설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을 깔고 있다. 즉 기는 모략에 비추어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36계를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장 어렵고도 중요한 관건이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모략과 객관적인 상황을 결합하는 규율이다. 객관적 상황과 규율은 실존(being)이며, 계모는 그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다. 계모가 반드시 객관적인 현실을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객관적인 현실과 규율을 감안하여 실행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36계에서 활용하고 있는 계모는 역경의 언어를 응용한 것이다. 따라서 역경의 풍부하고 깊은 내용을 변증하는 것이 삼십육계를 이해하는 관건이 될 것이며, 해결이 되지 못할 경우는 근본규율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몇 가지를 융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성괘인 '八六十四卦'는, 이진법적 수리가 들어있는 괘변이라는개념이 있다. 하나의 괘에는 여섯 개의 효가 있으며, 초효(初爻)가 변하면 일변괘(一變卦), 이효(二爻)가 변하면 양변괘(兩變卦), 삼효(三爻)가 변하면 사변괘(四變卦), 사효(四爻)가 변하면 팔변괘(八變卦), 오효(五爻)가 변하면 십육변괘(十六變卦), 육효(六爻)인 상효(上爻)가 변하면 삽십이면괘(三十二變卦)가 된다. 모두 육십삼변괘(六十三變卦)가 되는 것은 여기에 하나의 불변괘(不變卦0를 더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卦가 64개의 괘로 바뀌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불면괘는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변괘(變卦)는 통면이라고도 한다. 양자는 항상 공존한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우리는 각각의 계에 내재된 모든 것을 볼 수가 있으며, 36계의 계명(計名)이, 예를 들어서 '차도살인(借刀殺人)'이나 타초경사(打草驚蛇), 반객위주(反客爲主)와 같이 항상 불변적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활용될 경우는 각양각색의 정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하며, 계모를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경우, 64괘에 함유된 포괄적인 변화를 모두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역경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을 알 수가 있어야, 삼십육계를 체계화한 사람의 의도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36계의 계모는 특정한 형식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독자에게 고정적인 형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보다는 독자가 객관적인 규율을 발전시키고, 현실을 근거로 하여 일의 '기(機)'를 살펴보아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계모는 독자들의 지식을 늘인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결코 지나치게 이러한 계모에 빠지는 경우는 경계한다. 조금 더 바램이 있다면, 평소에는 계모를 사용하지만, 위급할 때에 생각이 나서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곁들여 있다. "급중생계(急中生計)"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지식의 유무에 따라서 계모를 생각난다는 의미이다.
삼십육계로 들어가는 문 - 삼십육계와 주역의 관계
[데일리안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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