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1
‘복(福)중에 인연복(因緣福)이 최고다’라는 옛말이 있다.
사람의 인생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 잘 못 만나면 넘어지기도 하지만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살길이 열리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그릇이 큰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큰그릇인가?
그릇이 큰 사람은 1만원을 벌어서 9천원을 쓰는 타입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1천원을 벌어서 1천원을 모은다.
大器와 小器는 1천원을 모은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大器는 9천원을 쓴다는 것이 다르다.
수중에서 나간 9천원은 새끼를 치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 몇 바퀴 돌라보면
이 9천원은 몇 배나 새끼를 친다. 돈을 안 쓰는 사람은 새끼 쳐서 돌아올 돈이 없다.
그러므로 작은 돈만 만지게 된다.
살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운이 좋을 때도 그렇지만 운이 나쁠 때에도 그릇의 크기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각각이다. 큰 그릇은 운이 나쁘면 돈을 떼이지만 그릇이 작은 친구는 장사가 아예 안 된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큰 그릇은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돈을 돌리지만
작은 그릇은 돈을 빌릴 데가 없는 신세가 된다.
그릇의 크기를 좌우하는 변수 가운데 하나는 돈을 쓸 수 있는가의 하는 데 달려있다.
돈을 쓰는 사람은 대가이고 돈을 쓰지 못 하는 사람은 소가이다.
돈은 쓰는 만큼이 자기 돈이다.
재복이 있다는 것은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통장에 수백억 넣어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한 사람은 결과적으로 재복이 없는 팔자다.
돈을 쓴다는 것은 여기서 좋은 일에 베푼다는 의미이다.
- 조용헌 살롱 ‘그릇론(論)’ 중에서
질문이 생긴다.
모름지기 도움이란 어려운 사람을 남 모르게 해야 하는 걸로 배웠는데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주변 사람에게 맘 가는 대로 잘하게 된다.
그게 정의고 현실이고 당위인가? 맞다면 그게 왜 맞는가?
신문 칼럼 #2
“월급쟁이와 경영자의 차이가 뭔 줄 아나?
월급쟁이는 늘 이런 얘기를 하지. 저 사람은 성격이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그런데 왜 성격이 나쁜 사람이 더 잘 나가지? 뭐 이런 거야.
그런데 경영인들은 성격이 착하기만 한 친구는 어디에 쓸까,
또 남과 어울리는 것은 약한데 성격이 독한 친구는 어디에 쓸까, 뭐 이런 걸 고민하지.
그게 큰 차이야” - 중략 -
우리는 앞으로 보다 더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세계화다.
우리는 새로운 것, 불편한 것들과 마주치며 더 많이 웃고, 울어야 할 지 모른다.
세상을 싫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구분할 데 골몰할 게 아니라
누가 무엇을 더 잘 하는지 따져볼 때 우리의 행복이 함께 커질 것이다. /
역사적으로 대국은 내적 역량의 기반 위에서 성장한다고 했는데
그 내적 역량이라는 것이 과연 내부적 역량이란 아무 일 없음을 말하는 것일까?
세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내부적으로 혼돈을 겪지 않았던 강대국은 없었다.
그들은 다 나름의 문제와 고민을 가지고 그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누리고 있다.
그럼 내적 역량은 무엇일까?
아마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정신적,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순수함.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현명함.
자기가 가는 방향에 대한 확신과 사회적 공감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남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포용성.
보장된 공정경쟁제도 등등으로 이루어지는 무언의 사회적 질서말이다.
우리 선인들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이라고 가르쳤다.
가정도 국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계속 번영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신세계가 있어야 한다.
사상가의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상이 어디에서
꽃을 피우느냐가 중요하다. 꽃 핀 자리가 꽃밭이다
조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