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걸쳐 『주역선해』 번역 출간한 박태섭씨 “주역 본질은 점이 아니라 명상”
주역(周易)’이란 게 뭘까.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점치는 법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니다.
‘주역’은 은나라와 주나라에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점을 쳤던 기록이다. 그런데 그 점치는 책을 공자는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었다. 그리고 주역을 공부한 이들은 “주역은 유학의 정수”라고 말한다. 또 주역을 아는 이들은 “유교의 주역과 불교의 선(禪)이 서로 통한다”고 한다.
‘유학의 정수’라면 ‘동양 사상의 정수’이기도 하다. 도대체 ‘주역’이란 뭘까. 명나라 때 유학과 불학에 통달한 지욱 선사(1599~1655)가 썼던『주역선해(周易禪解)』(한강수, 7만5000원)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재야 학자인 이둔 박태섭(50) 씨가 7년에 걸쳐 작업한 결과다.
941쪽에, 1262개의 주를 다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16일 서울 조계사의 찻집에서 그를 만나 주역을 묻고, 또 선을 물었다.
-‘주역’이란.
“정치학은 권력비판의 학(學)이고, 경제학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학이다. 그렇다면 주역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학이다. 안으로 성인의 마음을 밝히고, 밖으로 치국의 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흔히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 주역은 점치는 책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주역’을 철학화했다. 그게 ‘의리역’이다. 반면 점치는 기능을 발전시킨 것이 ‘상수역’이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사는 걸 중시한다. 그래서 점을 친다. 그게 주역의 ‘소인적 용법’이다. 그러나 주역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이들도 있다. 그것이 주역의 ‘군자적 용법’이다.”
-둘 중 주역의 본질은 어디에 있나.
“주역의 본질은 ‘거울’이다. 자아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 그 말과 행동이 정당한가, 그 말과 행동이 얼마나 도에 맞느냐를 반성하는 거울이다. 반성을 해야만 도덕적 행위가 우러난다. 그런 도덕이 있어야만 천하를 가르칠 수 있다.”
-그 ‘거울’의 구체적인 사용법은.
“먼저 차분하게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나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짚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과 마음을 둘러싼 시·공간적 환경을 64개의 괘에 맞춰 본다.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을 주역의 체계에 맞춰 보는 것이다. 그럼 해당하는 괘가 나오고, 앞으로의 흐름이 나온다.”
-괘를 통해 마음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을 통해 괘를 보는 것인가.
“그렇다. 그래서 주역의 본질은 ‘점’이 아니라 ‘명상’이다. 지금 내 마음을 통해 앞으로의 흐름도 읽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의 명상은 매우 논리적인 명상이다.”
-그런 명상법은 대단히 불교적이고, 선(禪)적이다.
“그렇다. 주역의 핵심은 ‘중용’이다. 중용은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음이다. 거기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이 뭔가. ‘중도’다. 행하되 번뇌 없이 행하는 것이 중도다. 먹되 번뇌 없이 먹는 것이 중도다. 그래서 유가의 중용과 불가의 중도는 일맥상통한다.”
-‘번뇌 없이 행함’의 뜻은.
“탐(貪), 진(瞋), 치(癡). 이 삼독(三毒)이 없다는 뜻이다. 탐은 탐욕, 즉 집착이다. 진은 분노, 곧 배타심이다. 치는 어리석음, 고정관념이다. 이들이 깨달음의 걸림돌이다. 중용에도 걸림돌, 중도에도 걸림돌이다.”
-그럼 주역에선 탐, 진, 치를 어떻게 없애나.
“예지, 즉 미리 앎을 통해서다. 명상을 통해 나의 현실과 삶이 어디로 흐르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인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이걸 볼 때는 감각적인 탐, 감정적인 진, 지적인 치가 제어돼야 한다. 그래야만 논리적인 명상이 가능하다.”
-예지하면 어찌 되나.
“지혜가 나온다. 말을 해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 나아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알게 된다. 서리가 밟히기 시작하면 얼음이 꽁꽁 얼 때가 오고 있음을 깨쳐야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서리를 밟고서도 비키니 수영복을 사러 간다. 탐, 진, 치 때문이다.”
-중용에 닿으면 어찌 되나.
“번뇌가 없어진다. 나의 섭리가 곧 우주의 섭리가 된다. 그래서 개체적 자아가 아닌, 이를 초월한 초자아적 정신에 ‘나’를 두게 된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의식의 확장이 일어난다.”
-주역에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나.
“사람들은 주역에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길 바란다. 그런데 아니다. 다만 주역의 형식을 통해서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보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우주의 섭리를 역 속에서 보려고 한 것일 따름이다.”
-그럼 주역은 불완전한가.
“물론이다. 우주의 섭리와 주역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게 주역의 한계다. 유가에는 ‘군자는 주역에 대해서 깊이 명상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주역의 본질은 ‘명상’이기 때문이다. 그 명상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 곧 ‘우주’를 보는 것이다.”
글=백성호 기자,사진=최금복 인턴기자
출처 :성공의 연금술사 원문보기▶ 글쓴이 : 연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