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명리학]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음양 오행
오늘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해 음양 오행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철학이라 하니 미리 골치 아파하지 말고 읽어보면 그런 대로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철학도 순하고 부드러우니 말이다.
서양 철학사 개론이나 입문 같은 책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은 대개가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고 있다. 이런 구분법은 중국 철학을 공자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필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모두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보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피타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라는 두 사상가이다.
대략 기원전 500년경의 인물인 피타고라스는 저술이 남아있지 않고 다른 학자들의 얘기를 통해 그의 사상이 전해지고 있지만, 조금 뒤에 소개할 엠페도클레스나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널리 미친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만물이 수로 이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우주를 한(限)과 무한(無限)의 두 원리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조화로운 전체(cosmos)ꡑ이며 이 조화와 '형(形)'을 주는 것은 수의 비례라고 했다. 이 수의 비례를 로고스(logos)라고 했는데, 그가 만물이 수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 것은 만물에 내재한 로고스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통찰은 만물에 이(理)가 내재한다고 말하는 동아시아 철학과 상통하는 말이다. 理나 로고스나 모두 우리가 사물을 관찰할 때 인지하게 되는 규칙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규칙성을 피타고라스는 數 또는 로고스라 했던 것이고, 동아시아 철학에서는 理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물에서 어떤 규칙성을 인지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며, 그 점에 있어 옛날의 학문이나 지금의 과학이나 차이가 없다.
피타고라스의 '만물은 수'라는 주장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수'라는 개념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인데, 만물을 추상화된 개념으로 표현하기로는 피타고라스가 인류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가령, 그 이전의 탈레스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물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지 고도의 추상성은 아니다.
여기서 왜 '수'라는 것이 그처럼 추상적인가를 잠깐 얘기해 보자. 가령,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을 합치면 두 사람이 되고, 이것 한 개와 저것 한 개를 합치면 두 개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납득이 가지만, 1 더하기 1 이 2 가 된다는 것은 현대인들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사실은 현대 수학에서도 속시원하게 증명해 내지 못한 어려운 숙제이다. 듣자 하니 그것을 증명하는 책이 있긴 한데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아직 인류는 추상성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추상성 또는 추상적인 사고에 관해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독자들도 고등학교 시절에 미적분을 배우면서 느낀 바 있겠지만, 어떤 수가 가령 '0'에 무한히 수렴할 때 그것을 '0'으로 한다는 것은 지극히 비(非)수학적인 생각이다. '0'에 무한히 수렴한다 해도 그 양은 무한분의 1 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지 '0'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적분은 그럼 면에서 실용을 위한 테크닉일 뿐 수학의 적자(嫡子)는 될 수 없다.
고도의 추상을 다루는 수학에도 이처럼 구린 구석도 많고 애매한 요소도 많다. 사각형의 밑변과 높이를 곱하면 그것이 어째서 넓이가 될 수 있는가? 앞의 두 요소는 길이(長)라는 1차원의 양이고 넓이는 2차원의 양인데, 어떻게 곱한다고 해서 차원이 둔갑할 수 있는가? 여기서 과연 차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등장하는데, 생각하기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퀴즈 문제라고 여기고 다시 본 얘기로 돌아가자.
음양 오행도 처음에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오행은 다섯 가지 물질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가 나중에 추상화되면서 만물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동력인(動力因)으로 제시되었다. 아직도 서구에서는 오행을 다섯 가지 물질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니 그들의 지적 수준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음양 역시 처음에는 해의 길어짐과 짧아짐을 의미하던 것이 나중에 만물에 내재하는 두 가지 대극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 발전했으며, 추상화되었다.
이처럼 피타고라스는 뒷사람들에게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일러주었고, 그로서 수학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사물의 규칙성을 수치화하지 않으면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과학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출발점에서 보면 만물을 數 대신에 理라고 표현했던 동아시아 철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아시아 철학자들은 사물의 또 한가지 측면인 기(氣)를 인지함으로써 서구와는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물을 수치화하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었던 음양오행이라는 강력한 사유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동아시아 세계에서 산술(算術)은 있었으나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수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피타고라스(pythagoras)에 대해 그 이름의 뜻에 대해 잠깐 얘기하기로 한다. 'pytha'는 영어의 father 처럼 그 어원이 아버지라는 뜻이다. '피타'와 '화더',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goras'는 인도말로 선생을 구루(guru)라고 하는데, 바로 그 뜻이다. 피타고라스는 아버지+선생님 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사부(師父) 가 된다. 즉, 피타고라스는 본명이 아니라 제자들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제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그는 만물의 근본이 물이라고 말했던 탈레스와 그 제자에게서 배우고 나중에 수학의 원조로 알려진 피타고라스에게서도 배운 뒤에 자신의 주장을 세운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대략 기원전 490년에서 430년경이었는데, 이는 음양 오행 사상의 초기 관념이 형성되던 시기와도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그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시실리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당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가였다. 또 약물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유전학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아울러 공기가 빈 공간이 아니라 실체를 가지는 사물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내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음양 오행의 '초기' 개념과 대단히 유사한 점이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시를 통해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시편들이 소실되고 일부만 전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그 일부를 옮겨 보았다.
"나는 이 리듬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겠다. 하나의 운동에서는 다수의 것으로부터 통일되어 유일한 존재를 만들고, 다른 운동에 있어서는 통일되어 있는 것을 분해시켜서 다수의 것을 만들어 낸다."
"이 영구적 상호운동은 멈추는 일이 없다. 하나의 운동에서는 만물은 사랑으로 일체가 되고, 다른 운동에서는 만물은 서로 싸우는 적의에 의해 각기 분산한다. 이리하여 다수의 다양한 것에서 단일한 것이 생기고, 단일한 것에서 다수의 다양한 것이 생기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초는 있으나 그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구히 멈추는 일이 없는 교호운동으로 인하여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고 그 순환과정에 있어서도 부동이다."
"과거에 그랬듯이 미래에도 역시 그렇다. 무한한 시간을 통하여 두 가지는 항상 존재한다."
"우리들은 사랑이 싸움에 의해 우주에서 추방됨을 본다. 그러나 싸움이 차츰 증대하여 그 정해진 시기가 차서 영광의 위치를 차지하면, 다시 역전이 시작된다."
이처럼 그는 사물의 변화가 서로 보완함과 동시에 전혀 상반되는 두 개의 힘의 교호작용에 의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통합하는 힘을 '사랑(philia)'이라 부르고, 붕괴시키는 힘을 '미움(neikos)'이라고 불렀다. 즉 그는 서로 교대하는 우주적 밀물과 썰물이라는 리듬으로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 데, 바로 이는 동아시아의 음양 사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그는 이 세상은 네 개의 뿌리(root)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는데, 그 뿌리 되는 것으로서 물, 불, 공기, 흙을 열거했다. 그는 만물이 이 기본 요소들의 혼합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성질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또 만물의 변화는 이 네 가지 뿌리가 앞서 말한 사랑과 미움으로 인해 서로 모이기도 하고 서로 분리되기도 하는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그 예로서 물과 술은 서로 섞이지만,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힘의 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장한 네 개의 뿌리는 오행 사상과 아주 흡사하다. 오행에 대한 초기 생각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단순한 물질적인 개념이었는데, 네 개의 뿌리와 오행과의 차이는 숫자에서 하나가 차이 진다는 것밖에 없다. 나중에 오행은 나무와 불, 흙, 금속, 물이라는 다섯 가지 물질 개념에서 추상화되어 다섯 가지의 형상원리로 발전되어 갔다.
그의 생각을 정리하면,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하고 그것이 네 가지 뿌리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음양 오행의 경우 음양설과 오행설은 처음부터 하나의 사상 체계로 제시되었던 것은 아니었건만, 그런 면에서 엠페도클레스는 대단히 정교하고 종합적인 사상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네 가지 뿌리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재미난 점은, 네 가지 중에서 불을 가장 고귀하고 힘센 것으로 여겨서 으뜸가는 뿌리라고 말했다. 따라서 영혼이나 지성은 모두 우주의 중앙에 있는 불 또는 세계의 영혼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불을 숭상한 그는 전설에 의하면 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19 세기 독일의 위대한 시인 횔덜린은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이라는 미완의 비극을 썼는데, 이 비극은 엠페도클레스가 제신(諸神)과 자연으로부터 이반(離反)해 버린 민중을 이 근원적인 존재인 신성한 만유(萬有)와 다시 한 번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하자,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스스로 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져, 어지럽혀진 질서를 회복하고 만유와의 합일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화산의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모티프는 불교 경전의 일대 환타지아를 보여주는 화엄경의 선재동자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또 만날 수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다시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승업이 도자기를 굽는 불가마로 들어가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름으로서 정화한다는 이 모티프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가 보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에피소드를 하나 보태면서 끝마치고자 한다. 전자기(電磁氣)의 발견에 관한 것이다. 전기의 존재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앞에서도 잠깐 나왔던 그리스의 탈레스였다. 호박(琥珀)을 서로 문지르면 가벼운 물체를 흡인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전기 현상에 관한 최초의 발견인데, 이 호박이 그리스어로 '엘렉트론'이었기에 오늘날의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ꡑ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전기와 자기(磁氣)를 구별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전기와 자기를 명백히 구별한 이는 16세기 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의(侍醫)였던 길버트라는 사람이다. 길버트는 자기 및 지구자기의 현상을 조직적이고 순수 경험적으로 다루어, 지구 자체가 하나의 자석임을 발견하였고 자침이 남북으로 향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의 연구에서 필자가 대단히 재미나게 여기는 점은 자침이 서로 반발하는 현상과 끌어당기는 현상을 앞서 얘기한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으로 설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 식으로 하면 음양을 빌어 전자기를 설명했다는 점이다.
출처 : [김태규 명리학]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음양 오행 - cafe.daum.net/dur6f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