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전생과 상관있다?
사실 저는 좀 엽기적입니다. 기이한 소재,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깃거리에 늘 시선이 끌립니다. 전생, 초고대문명, 미래 예측, 판게아 대륙, 심령학, 초끈이론 등 세상 돌아가는 일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엉뚱한 것들에 열광하는 까닭은 어쩌면 늘 뉴스를 쫓고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란 직업에 대한 보상 심리 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엽기 취미에는 숨어있는 도인이나 역술가를 만나 저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귀동냥을 하는 일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 말고도 예상외로 많은 저의 동업자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더군요. 상식과 합리성을 추구해야할 기자가 합리성이 작용하지 않는 세계에 관심을 갖는게 말이 안된다고 하신다면 질책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각종 연구소나 애널리스트, 미래학자 같은 전문가들이 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세상읽기와 미래예측도 상당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호기심을 닫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보낸 전생(前生)
여러분께 고백하건대 최근 용하다고 소문난 라이프 컨설턴트(정확도가 높을 경우 일반 역술가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 두 사람을 잇따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두 사람이 저의 전생과 현재, 미래에 대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은 주역 카드와 사주, 관상을 종합해 운세를 점치는 전문 역술가, 다른 한 사람은 역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책연구소의 책임자였습니다. 직업도, 성별도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으니 우연의 일치로 돌리기에는 뭔가 있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역술가가 되는데 교육기관에서 일정한 코스를 이수하거나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역술가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지요. 사주로 운세를 풀어주는 사람, 쌀을 던져 흩어지는 모양을 보는 사람, 얼굴의 찰색을 보는 사람 등 운명을 읽는 방식도 다양하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전생을 근거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말했습니다. 특히 한 사람은 그저 잠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현재와 과거 미래를 술술 얘기해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저는 전생에 한국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유럽의 어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삶을 마감했는데 이번 생에 어떤 강력한 인연에 끌려 한국 땅에서 태어나게 됐다고 하더군요. 제 자신에 대해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유럽에서 산 적이 있느냐?” “유럽에 관심이 많지 않느냐” “유럽산 골동품들이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느냐”를 물어보았습니다.
하긴 4년9개월을 유럽에서 보냈으니 짧은 기간은 아니지요. 외국인, 특히 유럽인 친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외국인과의 토론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밖으로 볼 때는 사교적이지만 어떤 조직에 속하든 늘 이방인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뿌리 없음에 기인한 것이랍니다. 집안 살림에 도통 관심이 없고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며 자기 확신이 강한 까닭도 저의 잠재 의식속에 남아있는 전생의 기억 때문이라는 설명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전혀 배우지도 않은 불어불문학을 불쑥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타로 카드며 켈트의 십자가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들, 르와르 골짜기의 성(城)들에 그토록 끌렸던 것도 전생의 기억이 저를 끌어당겼던 것일까요?
취향은 전생 기억의 집합?
그러다 보니 문득 집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어느 학자가 폐소공포증, 고공공포증, 대인기피증, 벌레공포증 같은 심리적 증상은 주로 전생의 기억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특정 사물에 대해 이유없는 거부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전생의 기억, 특히 사고로 죽었을 경우 사망 당시의 기억 때문이라는 거지요. 전생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가 수집한 사례 중에는 범죄자를 추적하다가 심장에 총을 맞고 사망한 미국의 경찰관이 딸의 아들로 환생했는데 선천적 심장기형을 가졌다는 섬뜩한 사례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다양한 취향도 잠재의식속에 남아있는 전생의 기억들이 혼합돼 생겨나는게 아닐까요. 모든 콩을 좋아하는데 강낭콩만 싫어한다던지, 코발트 블루가 좋은데 줄무늬를 보면 왠지 섬뜩하다던지, 클래식 중에서도 바하와 비발디에 유독 끌린다던가 하는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는 분들은 한번쯤 그런 취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대개의 경우 개인의 취향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긴 합니다만.
아까 말씀드린 국책연구소의 소장님은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다중인격자의 경우 전생과 그 앞 전생의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한꺼번에 나타나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또 미국의 9.11, 런던의 폭발사고도 십자군 전쟁처럼 한날 한시에 목숨을 잃었던 영혼들이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가 우연히(사실은 강력한 인연에 의해) 한꺼번에 모여 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는군요. 어때요?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