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궁합-성궁합-말궁합
한국의 전통 혼례풍습 가운데 "사성(四星)" 또는 "사주단자(四柱單子)"라는 게 있다. 혼담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신랑될 사람의 사주를 편지에 적어 신부 측에 보내는 풍습을 가리켜 "사성 보낸다"라고 표현한다.
만약 신부 측에서 이 사성 받기를 거절하면 신랑 측에서는 파혼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의 사주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궁합을 보기 위해서다. 남녀가 살을 맞대고 살아보기 전에 미리 그 오묘한 화학변화를 예측하자는 것이 궁합이다. 조선시대의 여자는 결혼을 두 번 할 수 없었다. 오직 한번만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전 검색장치로서 상대방의 사주를 통하여 검색하는 방법이 발명되었던 것이다. 궁합이란 무엇인가? 궁합에는 세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하단전(下丹田)의 궁합, 중단전(中丹田)의 궁합, 상단전(上丹田)의 궁합이 그것이다.
먼저 하단전의 궁합을 보자. 하단전이란 인체의 배꼽 아래 부분을 일컫는다. 배꼽 아래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가 여부가 하단전의 궁합이다. 이 부분은 성적인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키워드는 섹스(Sex)다. 궁합(宮合)의 궁(宮)자가 "대궐"이라는 뜻도 있지만, "생식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 당한 형벌을 궁형(宮刑)이라고 하는데, 이는 생식기를 거세당했다는 말이다. 남자는 거세였지만 여자의 궁형은 음부를 유폐시켜 버리는 형벌이었다. 따라서 "궁합"의 직설적인 의미는 "생식기를 합한다"가 된다.
우리 민속에서는 이를 흔히 "속궁합"이라고 표현한다. 성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20대 시절에는 하단전의 궁합에 몰두하게 마련이다. 결혼 상대자도 섹시한 상대를 최우선으로 선호한다. 부모는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지만 결혼을 앞둔 당사자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탓에" 상대방의 외모만 눈에 들어온다. 하단전 궁합의 핵심은 섹스다.
중년에 들어서면 중단전의 궁합이 중요하게 된다. 중단전이란 가슴 부위, 즉 오목가슴 부분을 지칭한다. 중단전의 키워드는 돈(Money)이다. 돈이란 사회적 능력의 총합을 의미한다. 중년에는 돈 많은 파트너를 원한다. 나이가 들면서 섹스에서 돈으로 관심사가 이동한 것이다. "정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는 어느 중년의 고백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를 속물근성이라고 욕하면 안 된다. 씨를 뿌렸으면 여기에다 거름을 주고 발육시켜야 한다. 젊은 시절의 섹스가 씨를 뿌리는 단계라면, 중년의 돈이라는 것은 그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줄기가 나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거름에 해당한다. 거름에서 냄새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름이 없으면 줄기가 자랄 수 없지 않은가.
중단전이 끝나면 상단전으로 옮아간다. 상단전은 이마 부분이다. 상단전의 키워드는 토킹(Talking)이다. 노년이 되면 섹스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가 최상의 파트너다.
이야기가 통한다는 것은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논어』에서는 이념이 같은 동지를 "붕(朋)"이라고 표현하였다. 달 월(月)자가 나란히 서 있다. 달 월자는 추구하는 이데아를 상징한다. 서머싯 몸의 유명한 소설 『달과 6펜스』를 보면 달은 추구하는 이데아를 상징하고, 6펜스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하찮은 것들이다. 6펜스는 버리고 달을 좇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우(友)가 고스톱이나 골프를 같이 치는 수준의 친구라면, 붕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이념적 동지나 도반을 가리킨다.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낙호"는 그러한 친구가 왔을 때 정말로 기쁘다는 말이다.
상단전의 궁합이란 이처럼 서로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와의 만남이다. 상단전은 궁합의 완성단계다. 궁합의 1차원은 섹스이고, 2차원은 머니이고, 3차원은 토킹이다. 점차적인 진화발전단계를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상단전부터 시작해서 중단전으로 소급해 들어가는 커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단전에서 출발하여 중단전을 거쳐 상단전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스와핑(swapping)만 해도 그렇다. 스와핑에 참여한 멤버들은 먹을 만큼 돈도 있고, 배울 만큼 배운 중·상류층이 대다수라고 들었다. 짐작컨대 이들은 하단전도 거치고 중단전도 거친 사람들이다. 지금쯤은 상단전의 궁합으로 쉬엄쉬엄 넘어가야 할 단계다. 그런데도 다시 하단전의 차원으로 리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단전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 왜 다시 하단전이란 말인가! 왜 궁합의 3단계 이론에 역행하고 있단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 스와핑은 하단전 리턴 현상과 다름없다. 그 원인은 우리 사회에 상단전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토킹, 즉 추구해야 할 이데아가 없으니까 다시 일차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의 세가지 징표가 골프·BMW차·룸살롱이다. 주말에는 골프 치고 주중에는 룸살롱 가고, 골프장과 룸살롱을 왔다 갔다 할 때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 문제는 상단전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단학(丹學)에서는 인체의 삼보(三寶)를 정(精)·기(氣)·신(神)으로 본다. 정은 정액으로서 하단전의 보물이다. 기는 중단전의 보물이고, 신은 상단전의 보물이다. 정액이 충만하면 그 다음에 기가 충만해진다. 기가 충만해지면 신이 충만해진다. 이때의 신은 귀신의 신이 아니고, 인간의 신묘한 인식작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반대로 정액을 많이 소비해 버리면 기가 약해지고, 기가 약해지면 이어서 신이 약해진다. 조선중기 이후 한국의 도사들 가운데서 유행하였던 『단학지남(丹學指南)』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정만불사색(精滿不思色), 기만불사식(氣滿不思食), 신만불사수(神滿不思睡)". 번역하면 "정(하단전)이 꽉 차면 섹스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고, 기(중단전)가 꽉 차면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고, 신(상단전)이 꽉 차면 잠자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이다. 불가의 고승들이 최후를 마칠 때 좌탈입망(坐脫入忘)이라는 신통을 보여주고 떠난다. 누워서 죽지 않고 앉은 채로 죽는 현상이다. 오대산의 방한암(方漢岩) 스님이 돌아가실 때도 좌탈입망하였는데, 앉아서 돌아가신 사진이 지금도 전해진다. 이는 상단전이 충만한 "신만불사수"의 경지에 진입하였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도인은 마지막 죽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한 장면 보여주고 가는데 그게 바로 좌탈입망이다. 궁합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신만불사수까지 나간 이유는 상단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보기에 궁합의 종착점은 상단전에 있다. 상단전이 맞는 사람 어디 없는가?
조용헌
현재 원광대학교 동양종교학과에서 사주명리학을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