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위 문제 조조(曹操·155~ 220)는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셋째 아들인 조식(曹植)을 편애하여 왕위를 물려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왕위는 둘째 아들인 조비(曹丕)에게 주어졌고 왕위 계승 문제로 감정의 앙금이 쌓여 있던 조비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동생 조식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동생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간청을 받은 터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탕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신하 한 사람이 그렇게 간했다. 조식이 시문(詩文)에 능통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니 일곱 발짝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지으라 해서 만약 그리 못하면 헛소문을 퍼뜨린 죄목을 씌워 죽이라고 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설마 일곱 발짝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는 없겠지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조식은 일곱 발짝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지었고 그 시의 제목이 형제였다. 유명한 칠보시가 그것이다.
煎豆燃豆(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울고 있다.)
本是同根生 (본시 한 뿌리이거늘)
相煎何太急 (어찌 이리도 급하게 삶아대는가)
살벌한 형제·자매 많더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의 이치를 콩과 콩깍지에 비유한 그 시를 접한 조비는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치고 동생을 방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조비는 아주 악인은 아니었나 보다. 동생의 바른 소리를 옳게 받아들이고 가책을 느껴 화해를 이끌어 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는 어떤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형제지간이 너무나 많다. 많지도 않은 부모 유산을 놓고 형제 간에 칼부림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형제 사이에 온갖 흉이나 약점을 미주알고주알 들춰내 가며 총소리 없는 법정 싸움을 벌이는 등 그야말로 콩깍지가 콩을 볶아대는 식의 남보다 못한 형제지간이 수두룩하다.
여자 형제도 마찬가지다. 지독한 동생이 언니에게
고액의 이자놀이를 하는가 하면 동생을 사기성이 농후한 다단계 사업에 끌어넣어 쪽박을 차게 만드는 언니도 있고 개중에는 언니의 애인을 가로채거나 언니의
남편 곧 형부와 부적절한 관계로 기울어지는 막가파 동생도 있다고 들었다. 이쯤 되면 형제가 아니라 웬수의
개념이다.
사주에서 형제는 비견(比肩)과 겁재(劫財)다. 곧 일주와 오행이 같고 음양이 다를 뿐이니 일주와 음양이 같으면 비견이고 음양이 다르면 겁재라 한다. 이 둘은 주위 환경에 따라 일주를 지원하는 다정한 형제가 되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물고를 내고 싶을 만큼 밉상을 떠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일주가 지지에 통근하지 못하여 허약한데 재성(財星)이나 관성(官星)의 세력이 왕성하면 이들은 허약한 일주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이때 비견이나 겁재는 일주를 대신하여 재성 또는 관성의 위협을 전담하는 우군이 되니 운세가 길한 쪽으로 전개되겠지만 만일 비견이나 겁재가 없는 경우에는 허약한 일주가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비견·겁재 원수로 작용하면…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비견이나 겁재가 원수로 작용하는가? 일주가 왕성하여 재성이나 관성이 있어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므로 구태여 형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데도 하릴없이 일주 곁에 기신거리는 상황이다. 그것도 곱게 주는 밥이나 먹고 얌전하게 있으면 미움이 덜할 텐데 이건 뭐 집안 대소사에 온갖 참견을 늘어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주의 재산에 눈독을 들여
기회만 닿으면 가로챌 궁리나 하는 판이니 숫제 미운 털이 박힌 격이다.
사주가 이러하면 형제나 동료 이웃 등이 불청객이다. 보태주는 것 없이 그저 뜯어가려고만 눈이 벌건 식이니 일껏 도움을 준답시고 접근해도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끼치는 쪽으로 이어진다. 동업을 하더라도 항상 손해를 보는 건 형제나 이웃이 아니라 자신이다. 그래서 이런 사주의 임자가 찾아와 상담을 청하면 거두절미하고 손부터 내젓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업을 하면 안 됩니다. 내 말뜻 이해가 됩니까? 혹시 그런 일로 오신 거라면
누구와도 동업은 안 된다는 것만 알고 돌아가시오.”
“어쩌지요? 벌써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런…, 설마 형제끼리 동업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오. 제
고향 친구랑 합니다. 사실 욕심 사나운 우리 형님이나 동생보다 이 친구가 백번 낫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경우 바른 친구니까요.”
얼씨구. 까딱하다간 머잖아 쪽박 차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성이 부실하므로 일주 혼자 먹어도 모자라는 상황인데 불청객인 비견 겁재가 곁에 붙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두 눈 멀거니 뜨고 보따리 도둑맞는 팔자이기 때문이다.
더 어이가 없어진 건 그가 고향 친구와 동업을 하도록 부추긴 게 그의 처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에라이! 그저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골통이라도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아무리 사주팔자를 모른다고 이렇게 섶을 지고 제 발로 불을 향해 걸어 들어갈 수 있나 싶어서다. 그러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으니 타박을 한들 무슨 소용이며 뭐가 달라지겠는가.
“기왕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애써 볼랍니다. 그래서 부탁인데요. 사업이 잘되는 쪽으로 부적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도 정색을 하고 요구하는 바람에 써주긴 했지만 부적이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는 점과 향후 동업을 하면서 조심하고 체크해야 할 대목들을 잔뜩 일러줬지만 꺼림칙한
느낌은 걷히지 않았다.
그러고 일 년이 좀 넘었을까? 똑똑하고 경우 바른 위인이라던 고향 친구가 배신을 때렸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 돈을 빼돌린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친구의 아내까지 가로채어 잠적해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딴 궁리를 하는 쪽으로 뜻이 맞은 아내와 친구가 작당을 하여 사업을 하도록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원래 비견 겁재가 기신이고 재성이 무력하면 지조가 부실한 아내가 남편의 친구나 이웃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는 법이다. 게 잃고 그물마저 잃는 게 바로 이런 팔자다
/공문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