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집에 같이 살고 계신 저희 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78세 되셨습니다.
이 분은 6.25 참전 용사 입니다.
몇 년 전에 상영돘던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아버지와 같이 봤습니다.
그 영화를 참 감동적으로 감상하고, 이런 영화를 참전용사이신 아버지와 같이 본다는 것도 저한테는 영광이라면 큰 영광이었고 또 아버지에게 진한 향수와 감동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였죠.
영화가 끝나고 박수도 간간히 들려 왔고 눈물을 훔치시는 분도 계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촉촉히 젖은 아버지의 눈망울을 보려고 극장 출구에서 아버지와 눈을 마주 쳤습니다. 그러나……
저희 아버지는 별 반응도 없으시고 눈가에 이슬은 고사하고 어떻게 보면 쓴웃음까지 짓고 계신 듯하더군요.
"아버지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영화 잘 만들었죠"
저의 물음에 아버지는
"지 랄하고 있네. 영화란 게 원래 공갈이지만 참 공갈 많이 친데이. 언 넘이 저리 고개 빳빳이 쳐 들고 총 쏜다 카노?"
저희 아버지는 휴전되기 8개월 전에 군에 입대해서 가장 치열했다던 휴전 막바지 서부전선 전투에 임하셨던 분입니다. 바로 영화의 마지막 전투 장면이 아마도 아버지가 참전하신 전투쯤 되겠죠.
영화를 보고 난 뒤, 아버지의 싸늘한 감상평에 저 또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5학년 아들 녀석이 6.25에 대해 물어보기에 할아버지께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6.25의 산 증인이시니 가장 정확한 답변을 해주실거라 했죠.
그리고 저는 아버지께 넌지시 부탁을 했습니다.
"아버지. 애들한테 들려주는 얘기니까 좀 뭐하지만 감동적으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참전한 전투도 아니지만 전 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혼자 흐뭇해 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전투는 어디였어요? 영화에서 보면 밤에 백병전도 하고 그러던데"
뭔가 기억을 되살리시던 아버지
"전투고 지 랄이고 구디 파는거 밖에 기억 안난다"
"구디요?"
"구덩이.. 참호.. 하여간 주먹밥 하나 주고 밤새 구디 파놓면 여기 아니라카고 딴디로 옮겨서 또 가면 또 구디 파라카고. 구디 다 파놓으면 또 잘못 왔다고 옮기고.. 내가 판 구디 다 합치면 지금 지하철 하나는 팠을 끼다."
내심 제가 의도했던 얘기가 아니라 전 조금 당황해서
"아버지 총 쏜 얘기 해달라고요. 전투 얘기요."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으시더니
"구디 안에서 있다가 폭탄 떨구면 가만 쪼그리고 있으면 되고 그담에 북한군이 몰려 올라오면 고개 한번 내밀고 방향 잡고 머리 구디 안에 파묻고 총만 내밀고 쏘는기라 어데로 쏘는 지도 몰라. 그냥 쏘는 기라 6개월 총을 쐈는데 내 총에 맞은 놈이 있는지나 몰라..."
아무리 현실적인 얘기도 좋지만 이런 이야기 하실 때는 흔한 말로 구라가 조금 들어가도 되는데 너무 고지식한 아버지..
전 마지막 히든카드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참전하시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너무나 융통성 없으신 아버지
"밥 먹으러 갔다"
"네?"
"전쟁통에 먹을건 없고 굶어 죽나 총 맞아 죽나 군대가면 밥 준다케서 갔다."
전 생각했습니다.
원고지 10매 내외로 좀 감동적이고 스펙타클한 전쟁 얘기 지어서라도 아버지 한테 써 드려야겠다고...
제가 중3 때로 기억합니다. 윤리 과제 중 하나로 조상님들 중에 위대하신 분들을 조사해오란 과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다 뭐다해서 참고할 자료가 많지만 그 때는 달랑 족보 하나 가지고 찾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는 벼슬을 한 분이 안 계시더군요 그래서 전 16절지 시험지에 딱 두줄 썼습니다.
31대손 - 할아버지 - 농부
32대손 - 아버지 - 6.25 참전용사
사실 이분들이 저에겐 젤 위대한 조상 아니겠습니까..
20점 만점에 5점 주더군요 ㅋㅋㅋ.
비록 아버지가 말씀은 멋 없게 하셨지만 전 아버지의 6.25 참전이 자랑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 그래서 전쟁에서 살아 남은 사람은 더 말이 없어야 하는 기라."